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그립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그립다!
  • 이위발
  • 승인 2012.08.31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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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세이>이위발(시인,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문학관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봤던 광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던진 첫마디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영상실에서 해설을 마치고 난 뒤 육사 선생의 영상을 틀어주었습니다. 막이 올라가고 난 뒤 관람객들 중에 한 사람이 나가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왜 저렇게 우실까?’하는 궁금증이 생겨 그 사람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왜 눈물을 흘리시는지?...”
그 사람은 서슴없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나중에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보니 어느 대학교의 법대교수였습니다. 그때서야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습니다. 한 지식인으로 살아가면서 그동안 육사 선생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을 겁니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지식만 알고 있었던 그로서는 영상을 통해 육사 선생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에 감정이 북받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자식을 둔 부모로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부끄러움이 감성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부끄러움의 눈물을 보면서 저도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기억이 그립습니다. 요즈음 사회 병리 현상 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타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입니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 저지르는 살인이나 폭력,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왕따’ 현상이나,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정치권의 대립과 분열, 권력형 비리, 도덕적 상실감은 서로가 자기 부끄러움을 의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타협이 있을 리 없고, 치고받고 또 당하고 보복하는 악순환만 되풀이 될 뿐입니다.

옛말에 “부끄러움은 모든 도덕의 원천”이라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이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결핍으로부터 생겨나는 도덕적 정서입니다. 이것을 부끄러움이라는 감성으로 떠 올리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일 때 마음이 움직이는 태도입니다. 자신의 결핍을 결핍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을 충족시키고자하는 노력의 시작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만이 모든 죄악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옳고 그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할 정도로 부끄러움의 기능이 상실된 사람들입니다.
맹자가 말했습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자함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로움이고, 공경하는 마음은 예를 표하는 것이며, 시비를 따지는 마음은 지혜로움이다”라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은 누구나 타고나는 의로움의 감정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부끄러움을 감춘다고 해서 사라지지도 않지만,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싸운다고 해서 그 힘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없애려거나 무시해도 다시 나타나는 것이 부끄러움입니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바로 부끄러움입니다.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 잘못한 일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미덕입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이 감정을 가꾸고 관리해야 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끄러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로 잡아 나가는 것이 우리들이 지금 해야 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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