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이를 독일로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난 친구 꽃가게에 들러 러브체인을 하나 구입했다. 그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도 보았다.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무심하게 버려두어서도 안 된다.”고 너무도 어렵고 애매한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면서 그날부터 그 아인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우선 화분 위까지 충분히 말랐을 때 아주 많이 듬뿍 물을 주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주절주절 그 아이를 향해 이런저런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친구에게 하듯이, 어떤 날은 사랑하는 그이이게 하듯이 그렇게 날마다 내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처음 몇 주는 자리를 옮기고 내 물주기 방식에 적응을 못하나 걱정이 되게 곯아가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새싹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몇 줄기씩 새로운 하트들이 드문드문 고개를 내밀었다. 너무도 신기하고 좋아서 더 열심히 말을 걸고, 적당한 시간에 물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 사랑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길게길게 하트들을 늘어뜨리는 그 아이를 보면서 난 자신감을 얻었고, 이런저런 화분들을 하나 둘 집안으로 들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어쩌면 나도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희망 한 자락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희망이란 메마른 마음을 적셔주는 봄비가 되기도 하고, 현실이 되지 못해 가슴을 쥐어짜는 한파가 되기도 하는 것.......그러면서도 러브체인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늘 꿈꿨고, 꿈꾸지 않는 것보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역시 더 행복했다. 때로는 너무 많은 물을 주어서, 어느 때는 너무 오래 물을 주지 않아서 죽여야 했던 마음을 조금은 컨트롤 할 수 있었던 건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고,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어쨌든 그것은 우울하던 일상을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일이었고, 그 이후에 우리 집에 들어온 아이들도 아무 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하나도 죽지 않았고 따라서 빈 화분도 생기지 않았으며 얼마 전에는 화분갈이도 직접 해 주었다.
그런데 러브체인 그 아이가 너무 많이 자라서 책장 꼭대기에 올려놓아도 바닥에 닿을 지경이 되었다. 하루는 그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쉼 없이 새 하트를 만들어내는 그 아이에게 너무 분발만 하라고 한 것이 아닌지......조그만 화분에서 2년 가까이 살아내기가 얼마나 팍팍했을지....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화분갈이를 같이 해주려고 친구한테 물으니 러브체인은 화분을 갈아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고 너무 길면 조금 잘라주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며칠을 망설였다. 힘들게 자라준 그 아이를 어떻게 잘라낸단 말인가? 하는 미안함과 결국 잘라내지 않고는 지킬 수 없는 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을 오락가락하다가 러브체인을 베란다도 데리고 나갔다.
“니가 미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아주 작은 흙의 양분으로 이만큼 이쁘고 멋지게 자라 준 너를 위해서...니가 덜 힘들기를 바래서 그러는 거야. 이해해 줄 거지?” 그 아이에게 내 맘을 오래도록 설명하고 적당하고 아름다운 길이로 잘라주었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이 지난 지금 화분에선 더 많은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그 아이도 내 마음을 안 것이다. 내가 잘라 낸 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차피 마음을 거두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러브체인을 키우고, 키운 그 아이 한 부분을 잘라내면서 또 한 뼘 더 자신감이 생긴다. 어쩌면 나 죽기 전에 정말로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그런 꿈을 꾸게 되는 어느 멋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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