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장인이라고 하니 머시기 해’
‘나를 장인이라고 하니 머시기 해’
  • 권기상
  • 승인 2013.03.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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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굽던 안동시 남선면 이덕리 이병태 씨

 

지난 2월 2일 오후 도예가로 활동 중인 지인의 소개로 옹기 장인을 찾아 나섰다. 안동에서 옹기를 굽던 장인으로 마지막 생존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새로 난 안동외곽도로를 따라 달려 간곳은 임하면 신덕리 이덕노인회관 앞이었다. 전화 통화로 약속한 장소였지만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신 건 아닐까하고 집을 찾아 나섰다. 골목길을 따라 두 굽이를 돌아 전망 좋은 곳에 양옥집이 있었다. 아담한 자리에 손수 만든 장독대 항아리가 옹기종기 세월을 담고 있었다.

집 앞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병태(76세) 노인은 “얼른 들어 오이소. 날(날씨)이 차이더”하며 우리를 거실로 안내했다. 자그마한 체구에 짧은 백발이 내린 투박한 모습은 영락없는 촌부였다. 남향으로 자리한 거실에는 겨울 햇살이 어지간히도 따습고 눈부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나누기에는 정겨운 자리였다.

생활고로 인한 회한

이 노인은 6.25 피난시절을 겪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진학은 엄두가 나질 않아 18살부터 옹기를 배웠다. 옹기 굽는 일은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아버지가 대를 이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늘 보던 일이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집을 떠나기 전까지 옹기 일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그는 여기저기에서 눈 동냥으로 혼자 독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집안사정이 더욱 어렵게 되자 동생과 함께 옹기를 구우며 가장역할까지 해야만 했다.

세월은 흘러 1980년대, 당시 이덕리에는 10여 가구가 옹기를 제작했다. 이 노인의 이덕옹기는 인근 옹기장사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인근에서 모인 기술자 5명과 동고동락하며 한때의 전성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로 인해 그는 동생들과 식구들을 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점점 쇠퇴해가는 옹기장사는 생활고로 이어졌다.

한때는 도자기를 구워볼까 하는 전업의 마음도 있었지만 과감하게 옹기 일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사용하던 도구와 옹기장이로 생활하며 함께 했던 추억들을 모두 태웠고 지금은 남아있는 흔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뒷마당에 옹기를 굽던 가마터만이 남아 있었다.  

▲가마터였던 곳을 가르키며 지난 시절을 돌이켰다. 

 옹기 일을 내려놓은 후 다시 해 보려고 몇 번을 생각해 보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에 주저 않고 말았다. 그것이 벌써 이십년이나 흘러버렸다. 가끔 가마 한가득 옹기를 채우고 불을 지피던 그때를 생각하면 잠시나마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할 수 있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뭐 할라꼬! 지금 후회하이 뭐 하니껴? 다 쓸데 없는 기라”며 “근데 가끔 생각해보면 조금은 아쉽고 후회스럽더라꼬” 했다.

요즘 그는 농사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가끔 진보에서 옹기 굽는 김무남 후배를 찾아가곤 한다. 진보에서 활동 중인 그는 손 놓지 않은 옹기로 인해 경상북도 인간문화재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옹기 파편들을 들고 옹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 노인.

인터뷰를 마친 후 가마터를 찾았다. 가마터는 높은 열로 인해 붉게 변해 있었다. 약 20평 남짓 크기의 비탈진 가마터 주위로는 깨어진 옹기 부스러기와 파편들이 널브러져 찬바람만 맞고 있었다.

이 노인은 “이제 자식들이 장성해서 외지에 나가버리고 나니 손 놓은 것이 아쉬워 다시 해보고 싶더라”고 했다. 이어서 “무남이를 보면서 엄두를 내보려고 하는데 이걸 이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며 “남들이 장인이라꼬 해서 머시기 하지만 천직으로 알고 굽던 일이라 지금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애. 몇 번 구워보면 알거든”하고 자신했다.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는 연세에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맥을 다시 이어보겠다는 이 노인의 용기가 사뭇 진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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