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를 따라 떠난 바다낚시 관람기
어부를 따라 떠난 바다낚시 관람기
  • 정순임
  • 승인 2013.04.25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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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정순임 한문고전 번역가

학교 앞 냇가에서 초망을 치던 아이는 아버지 같은 손을 가진 중년이 되었고, 트렁크에 수많은 낚시도구를 싣고 가끔씩 어부가 되어 산다. 어쩔 수 없어 독거소녀(?)로 살아가는 나와는 달리 여전히 혼자인 것이 너무도 편하고 좋다는 어부는 내가 따라나선 것이 탐탁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치를 밥 말아먹은 컨셉으로 조르고 졸라 차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바다낚시, 난생처음 하게 될 경험에 마음이 저 먼저 바다로 달려간다.

4월 하고도 하순인 주말, 봄비가 내리나 하고 나선 길에 눈이 날린다. 내리자마자 녹아내려 흔적이 없어진 시내와 달리 청송을 지나 영양으로 들어가는 국도는 겨울이다. 한창 피어오른 복숭아꽃은 눈발을 처음 만났는지 얼굴을 붉히고 서있다. 먼 산 은사시나무 여린 새순에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봄에 집을 나와 한 시간 남짓 달려 겨울에 도착하고 보니 감탄사를 내 뱉지 않을 수가 없다. 자연이 아니라면 누구라서 이런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단 말인가? 어줍잖은 글쟁이는 그것을 표현할 재주가 없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눈은 비로 바뀌었고, 바람은 쉴새없이 불어댄다. ‘이런데 어떻게 낚시를 하지’ 어설픈 관람객의 우려와는 달리 어부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자리를 잡는다. 능숙하게 낚싯대를 조립하고 찌를 달고 낚싯줄 끝에 바늘을 매단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너무도 진지한 모습이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프로의 모습은 아름답다. 서로를 기대고 켜켜이 쌓인 테트라포트 위에서 어부는 낚싯대를 내린다.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고기잡이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는 아낙의 심정으로 지평선을 바라본다. 생명이 탄생한 최초의 장소여서 인지 바다는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그리움을 깨운다.

“그런데 낚시하면서 무슨 생각해?” 어부의 뒷모습에다 질문을 던진다. “고기 잡을 생각하지, 찌만 바라봐, 낚시하면서 인생이 어떻고 생각한다는 거 다 거짓말이야.” 한다. 낚시를 책으로 배운 나같은 사람은 당연히 낚시꾼의 인생과 고뇌를 담고 그곳에 서있어야 한다고 믿었는데 역시 내공이 있는 어부는 뭔가 다르다. “고기 이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니까 휴식이 되는 거지.” 뒤돌아 한마디 더하고 어부는 또 찌만 바라보고 있다. 한 시간, 두 시간, 끊임없이 미끼를 갈아 끼우고 낚싯대를 던진다. 고기가 잡혔다. 우와! 탄성이 다 나오기도 전에 어부는 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낸다. 망상어란다. 돔을 기다리던 어부에게는 필요 없는 고기인 것이다. -사실 난 조금 아까웠다.-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림은 계속되고, 왼쪽 귀밑에서 흔들리던 바람은 얼굴 정면을 향해 방향을 바꾸었다.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부는 지겨운 내색이 전혀 없다. ‘저 아이가 원래 저렇게 진득한 사람이었나.’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그 때 낚시 바늘이 어딘가에 걸렸나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낚싯대를 구출해낸 어부는 상처 입은 낚싯줄을 끊어내고 새로운 바늘을 단다. 끊어낸 낚싯줄은 손에다 감아 잘게잘게 잘라서 흩어버린다. 거기에 걸려 상처 입을지도 모르는 갈매기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투박한 손으로 능숙하게 해내는 섬세한 작업은 그가 가끔 어부가 되어 살아온 세월을 말해준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가 돈을 주고 가라고 해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비는 내리고 바람은 매섭고 테트라포트는 너무 높아 일어설 수도 없다. 바다도 언제나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만났던 그 얼굴이 아니다. 저녁이 되면서 파도의 기세는 더욱 거세진다. 어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끼를 따 먹고 도망가 버린 물고기를 원망하지 않고, 파도를 밀어 보내는 바다를 욕하지도 않는다. 낚싯대를 던지고 기다리는 일만이 자신의 몫임을 아는 것이다.

어부는 찌만 열심히 바라보았고 나는 내 인생을 생각했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낚싯대를 던지고 내가 원하는 그것을 낚기 위해 노력했던 나도 어쩌면 어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그리 녹녹치가 않아서 낚싯줄이 끊기고 낚싯대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인생에만 왜 이런 일들이 준비되어 있냐고 원망하며 살았다. 어부는 있는 그대로의 바다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테트라포트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의 뒷모습은 어느 사이 바다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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