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천지에 나 아닌 것이 없다!
이 세상 천지에 나 아닌 것이 없다!
  • 이위발
  • 승인 2013.05.11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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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에세이>이위발(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시인)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숲길이나 들길을 걸어 보십시오. 뜀박질하면 나 자신만 보이고, 걷다가 서면 자연의 소리가 들립니다. 서 있다가 앉으면 작은 우주가 들려주는 소곤거림에 벅찬 감동이 밀려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이런 문구를 접하면서 꿈을 꿉니다. 고향이나 시골을 동경의 대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희망하기도 합니다. 전원생활을 그리워하고 귀농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이런 주제는 사람과 자연이 교감할 수 있는 친환경 기업 이미지 카피로도 등장합니다.

이제 힐링은 도시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로서 자연 치유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작용하고 있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친환경적인 분야에 더욱더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옛말에 “하늘과 땅은 나와 같은 근본을 가지고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은 나와 한 몸(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천지와 나는 같은 뿌리요 만물은 한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것이 ‘나 아닌 것이 없다’는 말과도 같은 뜻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일심동체로 본 옛 말을 다시한번 상기시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자연은 말없이 늘 우리 옆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자연은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습니다. 먹고, 먹히며, 톱니바퀴 돌 듯 돌아가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생명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빈틈없는 생존전략의 결과입니다.

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실 생태계 문제는 먹고 먹히는 논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먹이며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관계 안에 놓여 있습니다. 만물은 한 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물의 고통을 느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물이나 식물은 인간을 먹이고 병을 치료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을 먹을 수 없다는 논의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먹이고 치료해 주거나, 사랑을 나누는 상생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올 봄에도 저희 집을 제일 먼저 방문한 손님이 거미입니다. 방안이나 밖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거미입니다.
“방안에 사는 거미들은 아침 일찍 기어 나오면 그 집에서는 그날 반가운 소식을 듣는다고 기뻐한 것은 우리 고장의 풍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들 가운데 누가 여행을 했을 때나 객지에 있을 때면 늘 아침 거미가 기어 나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신 말씀을 우리가 제법 장성할 때야 알았습니다.”
육사 선생의 수필에 나오는 거미에 대한 일화 한 토막입니다. 유년시절 저의 어머니에게도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그리고 마당으로 나가면 딱정벌레, 사슴벌레, 무당벌레, 애호랑나비, 꽃하늘소, 바구미, 큰 흰줄나비들이 유채꽃, 영산홍, 석류꽃, 라일락꽃, 산수유, 철쭉꽃 주변에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많은 곤충들은 평생 동안 특정 식물만을 찾아 먹는다고 합니다. 잎 살만 먹는 녀석, 즙만 먹는 녀석, 썩은 나무만 먹는 녀석, 꽃가루나 굴만 먹는 녀석, 각자 좋아하는 부위만 선택해서 먹습니다. 만일 모든 종류의 곤충이 모든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면, 식물은 사라질 수도 있고, 식물을 먹는 곤충 또한 먹이가 바닥나 연쇄적으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명하게도 곤충들은 식물 먹이를 정해놓고 각자의 입맛에 맞게 부위를 달리해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도 살고, 곤충도 식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곤충들의 지혜가 존경스럽고 위대할 뿐입니다.

생존본능인 풀 한 포기에서 일어나는 곤충의 인생 역정은 사람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다를 바 없습니다. 대를 잇기 위해 배우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성장하기 위해 억척스럽게 먹고, 거친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생존전략을 세우는 등 그들의 한 살이는 드라마틱하기도 합니다.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가지 않은 길>입니다. 이 시에 감동을 받아 사람들이 자주 가는 길이 아닌 낯선 길을 선택한 어느 곤충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사랑하고 지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여름밤을 아름답게 비행하던 반딧불이었습니다.

“반딧불을 보면서 별도 아닌 곤충이 왜 별똥을 쌀까? 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빛이 어느 부분에서 새어 나올까? 불빛에 연한 몸이 화상을 입지는 않을까? 도대체 불빛은 왜 내는 것일까? 불빛을 내는 연료는 무엇일까? 그 연료가 다 닳아 없어지면 죽게 되는 것일까? 그들끼리는 불빛으로 대화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그는 호기심 가득한 반딧불의 수수께끼들이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 궁금증이 꿈이 되었고, 결국 그 꿈을 이루어낸 그는 유명한 곤충학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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