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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안동을 묻거든 ‘나무를 보라’ 말하라!
[기록되지 않은 안동의 근현대 산책② -웅부공원편]
나무는 사람보다 더 역사적이고...
2013년 09월 05일 (목) 10:12:34 정홍식(대구경북지역정책연구소장) kbinin@gmail.com

오늘의 기록은 내일의 역사입니다!
국가와 행정기관에 의한 공공기록물이든 지역과 민에 의한 민간기록물이든 소중한 우리의 역사며 유산입니다. 특히 공공기록물의 경우는 지난 1999년 제정된 관계 법령에 근거해 국가기록원이 수집·보존하고 있지만, 지역 차원의 민간기록물 수집·보존은 여전히 민간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에 경북인신문은 근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민간에 흩어져 있는 안동 지역사의 증거적 가치나 영구보존 가치가 있는 기록물의 수집·보존운동 일환으로 안동 근현대사를 기획 연재합니다.
안동문화권의 근대사진, 필름, 영상 및 음성 증언들이 있으신 독자 여러분의 많은 제보를 기다립니다. T. 054)857-2083~4

 

나무와 더불어 사는 사람은 나무를 닮아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오랜 시간 견딘 것들은 모두 저마다 견뎌 온 시간만큼의 감동이 있다. 특히 세월 지날수록 더 의연하고 당당해 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여기 늙을수록 더 아름다워져 가는 생명이 있다. 가만히 보지 않으면 곁에 있어도 알 수 없는 것! 그래도 여전히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간을 박제시키며 기억을 역사해 가는 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산 채로 썩어가는 가지에는 이끼가 공존하고, 썩은 그 가지조차 온전히 품어 그늘을 내어주며 사람의 역사를 증언해 내는 것!

도회지에서는 그 익명성과 분주함 때문에 존재감도 공존법도 잃어버린다. 그래도 나무는 묵묵히 그들의 삶을 품고 산다. 그래서 나무는 어쩌면 사람보다 더 역사적이고 건물보다 더 사실적이다. 그런 나무가 굳이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 하지 않은들 어떠랴? 가만히 손대보면 그 거칠고 딱딱한 껍질 속에서 모든 기억들이 전해져 오지 않는가?

그렇게 나무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나무를 닮아 간다. 문득 길가 나무에 드러난 결을 바라본다. 그리고 거기서 하마나 패였을지 모를 우리 시대의 결을 찾아 한참을 눈감아 본다.

   
▲ 웅부공원 내 수령 800년 안동부 신목

800년 세월, 안동부 신목(安東府 神木)

누가 나에게 안동의 정체성에 대해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800년 세월 한 곳에 서 있는 안동부 신목(安東府 神木)을 보라”고 한다. 고려와 조선조에는 대도호부(현재의 도청)였고, 구한말까지도 경북도의 동북부 일대 17개 군을 관할했으며, 시·군이 통합되던 1995년까지 웅부안동을 자랑하던 군청이 있었던 역사의 산실 동부동의 웅부공원!

그 곳에 가면 수령 800년을 자랑하면서도 1981년에 이르러 겨우 경북도 보호수로 지정된 아주 소박한 느티나무 한그루를 만난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이곳엔 안동 부사(군수)가 부임하는 첫날과 퇴임하는 마지막 날에는 늘 이 신목에 신고하는 관례가 생겼고 이는 시장직선제가 도입된 현재까지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국 어디어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의전을 받는다.

“시장이 신목 앞에 서면 의전담당 직원은 가장 큰 목소리로 국태민안을 기원드릴 것을 당부하고 단체장은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 꿇고 기원 드린 후 비로소 간부들과 상견례를 나누고 업무를 수행한다”고 김휘동 전 시장은 회고한다.

이 노거수(老巨樹)가 안동부 관사 뒤뜰에 자리 잡은 사연도 재미있다. 당시 안동부 성내에는 젊은 청년들이 요절하여 과부가 득실거렸는데 그 까닭은 물길이 연관된 옛 지명 영가(永嘉)에서 연유한다고 하여 물길을 바꾸고 성내 곳곳에 목숨 수(壽)자 형으로 큰 나무를 심어 고을 수령이 그 나무를 섬기며 제사토록 했다는 기록이 이조실록에 있다. 1930년경에 조사·보고된 『한국의 지리풍수』에도 언급되어 있는 걸로 보아 아마 그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그 옛날엔 이 곳 웅부공원으로도 큰 강물줄기가 흘렀다고 하니 분명 이 신목 역시 목숨 수(壽)자 형으로 심겨졌던 그 나무 중 하나일 것이다.

   
▲ 임청각 앞 회화나무

일각에서는 지난 2008년, 누군가에 의해 절단된 임청각 앞 도로 중앙에 서 있던 수령 300년의 회화나무 역시 목숨 수(壽)자 형으로 심겨진 나무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혹한의 식민시대에도 꼿꼿이 서 있었고, 1971년부터 시작된 안동댐 건설과 진입로 개설시에도 공사조차 비켜가게 하며 도로 한 복판에 서슬퍼렇게 서 있던 그 나무가 변을 당했을 때 안동시민이면 누구나 안타깝고 슬퍼했다.

이렇듯 국가지정의 천연기념물도 아니고 여타의 노거수처럼 웅장한 위용을 갖추지도 않은 이 신목에게 고을 수령조차 기꺼이 몸을 낮출 줄 아는 하심(下心)의 자세! 그리고 그 관례와 전통을 아직까지도 계승하고 흔하며 보잘 것 없는 나무들조차 소중한 삶의 일부로 여길 줄 아는 정신!

이것이 바로 안동의 정체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안동에 오면 누구나 안동의 신목 그 곳에 서서 자신을 먼저 낮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거대한 노거수들이 자리잡고 있던 안동군청사 앞 전경

사라진 또 하나의 명물, 걱정나무!

이 곳 군청사 앞 신작로 길에는 걱정나무라는 별호를 품은 거대한 노거수 한그루가 또 서 있었다. 이 삼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군청과 더불어 경찰서, 법원, 지청, 소방서, 세무서, 전신전화국, 담배인삼공사에 이르기까지 관내의 모든 관공서가 집결해 있던 안동행정의 심장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제강점기 때부터 그 나무 밑에는 유난히 많은 촌부들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있곤 했는데 이들은 안동재판소나 안동지청 검사분국으로 소환, 구속, 재판 등 송사에 연루된 자들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수심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곤 해서 걱정나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해방과 전쟁 이후에도 그 걱정나무는 여전히 그 곳에 서서 소환당한 촌부, 촌로들의 수심을 걸어두는 나무로 자리 지키고 있었다는데 언제쯤 무슨 이유로 종적을 감췄는지 기록이 없다.

총 든 경찰이 정문을 지키던 그 시절의 경찰서가 1982년에 이전했고 그 터에 지금의 한양아파트가 들어섰으며 1995년에 군청이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그 어떤 기록도 없이 그저 토박이 촌로들의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역사가 슬프다. 자기 뜻대로 행해도 결코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70세 종심(從心)의 그 촌로들마저 세상을 달리 하면 이 소중한 역사들은 또 어느 기억들로 찾아 떠돌까?

   
안동소방서는 1965년에 개소하여 1977년에 이곳에 청사를 준공했다가 1999년에 강변의 현 위치로 이전했다.

 

   
안동경찰서는 1945년 개설되어 6.25당시 폭격으로 전소되었다가 1955년에 재신축 후 1982년에 현재의 당북동으로 이전했다.

 

   
법원은 1909년 안동구재판소로 설립되어 1914년에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1947년 안동지원으로 개칭되어 이 곳에 있다가 2003년에 현재의 강남동으로 이전. 검찰청 역시 1896년에 안동재판소로 개소되어 1909년 대구지방재판소 안동구재판소 검사국 1912년 대구지방 법원 안동지청 검사분국으로 개칭되었다가 1948년 지금의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으로 변경되어 법원과 함께 2003년에 강남동으로 이전했다.

나무에 스며든 역사, 안동에서는 나무와 말을 하라!

사실 안동의 역사는 나무가 고스란히 말해준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길안 용계리의 은행나무(700년), 녹전 사신리의 느티나무(600년), 와룡 주하리의 뚝향나무(600년), 임동 대곡리의 굴참나무(500년), 길안 송사리의 소태나무(400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이다. 여기에 하회마을의 만송정 숲과 남후 광음리의 구리 측백나무 자생지가 합해져 총 7본이다.

그러나 안동은 굳이 천연기념물이 아니어도 저마다의 사연으로 세월을 덧칠해가며 묵묵히 자리 지켜 온 나무들이 더 사랑받는다.

조정의 높은 벼슬보다 초야의 실천적 유림들을 더 존경해 온 지역 풍토와 궤적을 같이 하는 것일까? 하회마을의 삼신당 느티나무(600년)가 그렇고 봉정사의 은행나무(470년)와 도산서원의 왕버들나무(450년)가 그렇다. 안기동 석수암의 향나무(400년)와 학자수나무라 일컫는 풍천 가일의 회화나무(300년)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 그렇게 총 175 그루의 보호수를 소장한 안동은 역사나무박물관 그 자체이다.

오랜 세월 한자리에 뿌리 내리고 그 영욕의 시대들을 고스란히 지켜봤을 안동의 노거수들!
일제 강점기에는 잡다한 민간신앙지로 천대를 받았을 것이다. 전쟁의 명분도 모르는 인민군과 국군 어린 병사들의 눈물도 닦아 주었을 것이다. 한 생 다하고 황천길 떠나는 상여 앞에서는 함께 울어도 줬을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고단했던 모든 삶을 고스란히 보듬고 우리 곁에 있는데 굳이 천연기념물이 아니면 어떠랴?

보이지 않는 뿌리는 여전히 모든 세월을 감싸고 겉으로 드러난 장대함과 웅장함보다 더 깊고 상상할 수 없을 넉넉함으로 우리를 품고 있지 않은가! 귀 대고 가만히 들으면 그 나무에게도 심장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안동에서는 나무에게 안부를 묻고 그 나무와 더불어 사는 이들의 안부와 그 나무가 허락한 시간의 안부를 물으며 공존하면서 살아간다.

   
▲ 봉정사 은행나무

 

   
▲ 석수암 향나무

 

   
▲ 잘리어진 임청각 회화나무

 

   
▲ 주하리 뚝향나무

웅부공원! 안동의 옛 심장!

그 회한의 시간 뒤로 하고 웅부공원 중앙에 서니 한 눈에 조망이 들어온다. 옛 관아의 모습을 본 뜬 동헌인 영가헌과 문루인 대동루 그리고 상원사 동종을 재현한 종각! 공원 이름만큼이나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쉽사리 이곳에 마음을 주지 못한다. 역사적 근거에 의한 관아 복원이 아니니 안동의 옛 것이라는 연대감이 없고, 세월이 스며들어 있지 않으니 문화재적 가치도 없을뿐더러 건축학적 미학조차 느껴지지 않는데 어찌 쉬이 마음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영가헌과 대동루의 명칭조차 2006년 당시 시민공모로 이름 지어진 것이다.

안동향토지(저자 송지향)에 따르면 “도호부 청사였던 관아는 옛 군청과 소방서 자리에 있었고 부사의 집무실인 동헌은 건물에 유리를 끼우는 등 보수를 해 일제 중기 무렵까지도 군청사 그대로 썼다”고 한다.

“군청 앞에는 폐문루(閉門樓)가 있었고, 왕명을 받들고 내려오는 관원을 유숙시키고 접대하는 객사는 지금의 태사묘(太師廟) 앞에 있었는데, 그 앞에는 또 큰 규모의 관풍루(觀風樓)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도성에는 늪과 연못이 많았는데 지금의 옥정동 안동예식장 자리와 안동문화원 일대도 옛 연못이었다”고 한다.

또한 “군청사 오른쪽에는 수령 200년 넘는 홰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를 해칠 경우에 군청에 화가 생긴다고 해 청사 신축시 건물 벽이 이 나무에 닿지 않도록 축조했다”고 하니 지금 대동루와 종각 사이의 노거수를 일컫는 듯하다.

그래도 1919년, 이 곳에선 3,00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군민들이 모여 3.1 만세운동을 펼쳤고 30여 명이 순국했던 자랑스러운 애국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유적지를 호화스럽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만이 결코 복원이 아니다. 복원이란 그 곳에 남아 있는 흙, 나무, 벽돌 한 장에도 생명을 불어 넣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과 더불어 호흡하는 일이다.

어쩌면 그때 군 청사를 철거하지 않고 그 건축물 그대로 보존해 근대사박물관을 개관하고 독립운동의 성지를 기릴 작은 표지석 하나라도 세웠더라면 이 밋밋함과 이질감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의 몫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사란 때가 되면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어 주는 것! “내가 저항하지 않았으니 너희 또한 순리로 받아들이라”고 나무가 말을 건네는 듯하다. 이런 맘 아는지 모르는지 늙은 개 한 마리 어디선가 나타나 쳐다보며 지나간다. 팔월의 끝자락이 속없이 무너져 간다.

   
▲ 하회마을 삼신당나무

 

   
▲ 도산서원 왕버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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