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게 공천폐지론은 바둑판의 꽃놀이패
국회의원에게 공천폐지론은 바둑판의 꽃놀이패
  • 정홍식
  • 승인 2013.11.20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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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인시론] 정홍식(대구경북 지역정책연구소장)

꽃놀이패라는 바둑용어가 있다. 한 쪽은 져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으나 다른 한쪽은 반드시 이겨야만 큰 피해를 모면할 수 있는 패. 쉽게 말하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이기면 더 좋고 져도 그만인 패이다. 11월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서 내년 지방선거 바람도 불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지난 대선의 여야 공약이었던 기초단위 정당공천 폐지여부가 하마평으로 나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돌아가는 낌새가 수상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전당원 투표를 통해 당론으로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를 정한 바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의원들은 여전히 반발하며 공천제 유지를 고수하는 형국이다. 새누리당 역시 지난 8월 말까지 정당공천제 존폐 여부와 관련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정식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출마를 준비하는 후보자들과 유권자들만 혼란스럽다.

단언컨대 이 문제는 어쩌면 이백 여개가 넘는다는 국회의원들의 특권 중 가장 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기득권과 직결된 사안이기에 애시당초 꿈도 꾸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폐지 반론에 대한 핑계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우선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참여를 금지하는 것은 복수정당제와 정당민주주의를 보장하는 헌법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 도지사, 도의원 등 다른 선거에서는 허용되는 정당공천제를 유독 기초단위 선거에서만 배제시키는 것은 평등의 원리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논리적 반론이 가능하다. 어디 그 뿐인가? 공천에서 여성할당제가 없어짐으로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여성유권자들을 아주 쉽게 자극할 수 있는 핑계거리이다. 공천제가 폐지되면 정당의 후보자 검증과정이 생략되어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지방 토호세력들이 득세하게 되고, 또 인지도 높은 현역 단체장과 현역의원들이 기득권을 고스란히 차지하게 된다는 핑계도 통할 수 있다.

꼼수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민주당에서는 이미 지난 7월 당론으로 확정한 터라 이를 매개로 서서히 새누리당을 압박하며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꼬일 대로 꼬인 이 정국에서 대화창구가 열릴 리 없다. 안되면 안 되는대로 새누리당에 책임전가하면 그만이니 이보다 좋은 꽃놀이패가 어디 있겠는가? 새누리당은 새누리당대로 시간만 떼우다가 대선불복만 일삼는 민주당 탓에 선거법 개정이 불가했다 하면 그만이다. 한발 양보해 박근혜 대통령 입장을 감안해서 기초의원의 공천만 폐지하는 물타기 전법으로 돌아서도 민주당에 밑지지 않는 꽃놀이패 장사이다.

이런 논란들 속에서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시간만 속절없이 흐른다. 만산홍엽을 이루던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곧 다가 온다. 그러다 연말이 지나고 또 새해가 시작될 것이다. 국회에서는 이미 치룬 국감 마무리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계류 중인 법안과 새해 예산안 심사 등을 두고 또 다시 지리한 수 싸움이 전개될 것이다. 국정원, 국방부 등 정부기관의 대선 개입 사건도 여전히 흑백을 못 가릴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과 사초 실종 및 유출사건을 둘러싼 여․야간 대립국면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전개될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사건과 내란음모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검찰조직의 내홍 소식도 간간히 우리의 중심을 흐트러 놓을 것이다.

이렇듯 양당의 존폐가 걸린 사면초가의 됫박형 사활패싸움에서 누가 먼저 감히 통 큰 양보를 통해 기꺼이 한 수 접어줄 수 있겠는가? 이렇듯 피 튀기며 전개되는 대국판에서 어느 국수의 절묘한 한 수가 극적인 대화 국면을 조성하며 공천제 폐지를 합의해 낼 수 있겠는가? 설령 정치쇄신특위가 구성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내천제 또는 정당표방제의 얄팍한 꼼수는 또 숨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국회의원들에게 공천폐지는 그저 구경만 하며 즐기면 되는 꽃놀이패와 다름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철없이 응수타진한 우리는 포석부터가 패착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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