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유학에 길을 묻다
오래된 미래, 유학에 길을 묻다
  • 정순임(한문고전번역가)
  • 승인 2014.01.28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안동에 산다. 그리고 한문학을 공부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다. 하필 왜 유학이냐고 말

 ▲정순임(한문고전번역가)
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줄 안다. 일제 강점기라는 외부 상황에 의해 한 순간에 절단된 과거의 기억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유학이 골치 아픈 학문이 아니라, 박제되어 죽어버린 학문이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어떻게 부활하고 어떻게 아름답게 정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유학이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들을 보완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줄 오래된 보물단지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뭘 모르는 사람들이 그 보물단지에 쓸 데 없는 것들을 섞어 담았다 해도 보물단지가 가진 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는 없다.

맹자께서 양혜왕을 뵈시니 왕께서 말씀하셨다. “노인께서는 천리를 멀리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은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또한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孟子見梁惠王 王曰?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양혜왕 장구 상(梁惠王 章句 上)에 실려 있는 첫 번째 구절이다. 한문학을 한다고 하지만 ‘어설프게 후루룩....’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공부밑천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들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예이다. 고등학교 때 봤던 성문종합영어를 펼치면 처음 서너 장만 나달나달해진 것과 똑같은 의미라고 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언제 내가 이 구절을 처음으로 봤느냐 하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는 양혜왕은 엄청 멋있는 왕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라의 이익을 걱정하는 것이 왕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뭐 거기에다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을 가져다 토를 다는 맹자라는 사람은 고리타분한 지식인쯤으로 보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본의 악다구니 속에서 자라고 자본가의 논리를 배웠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란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경제 구조이다. 자본이 이익을 만나 자본을 낳고 그 자본이 더 큰 이익을 좆아 거대 자본을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 구조이니 이익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핵심이다. 평생 그 논리 속에서 공부를 배운 나라는 사람이 왕이 내 나라의 이익을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일 수는 없다.

“왕께서 나라의 이익만을 생각하시면 대부들은 어찌하면 내 집이 이로울까 생각하며, 선비나 백성들은 제 한 몸의 이익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 모두가 서로의 이익만을 취하게 된다면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진실로 의리를 뒤로 미루고 이익만을 앞세운다면 모든 것을 다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아직 어질면서 그 부모를 버린 사람은 없으며 의로우면서 임금을 뒷전으로 여긴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인의만을 말씀하실 것이지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王曰何以利吾國 大夫曰何以利吾家 士庶人曰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 而國危矣.....苟爲後義而先利不奪 不?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 "

실로 명쾌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선생님들은 종종 양혜왕 장구만 이해하면 맹자는 다 배운 거나 다름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공부를 한 지 십년을 훨씬 넘기고서야 그 말뜻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달기로 대통을 이으신 분은 통진당 해산, 전교조 해체 등, 연일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소탕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만 고민했기 때문이리라. 그분에게 대통의 길을 선물한 여당과 자긍심이 지나친 보수들은 연일 종북세력이니 빨갱이니 하는 말들로 진보의 길을 막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까 골몰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내 집안과 내 일신을 이롭게 할까 열나게 고민했기 때문일 것이다. 맹자께서 걱정하신대로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또는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니라 민주주의 공화국의 주인이며 모든 권력을 가진 국민이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행사하는 권력이란 국민들이 잠시 위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 1조에 명기되어 있는 내용이다. 역시 책이든 법이든 첫 문장만 잘 이해하면 다 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설프지만 내가 가진 유학에 대한 생각과 맹자께서 하신 말씀을 한 자락 간신히 적고 나니 뱀발(蛇足)이 달고 싶어진다. 유학은 죽어버린 사상이 아니고 지금부터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학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 진실로 다시 유학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글을 읽으신 분들과 오늘 그 오래된 미래 한 자락 나눠 가지고, 기회가 있다면 또 무언가 교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