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일할 심부름꾼 뽑는게 선거다'
'즐겁게 일할 심부름꾼 뽑는게 선거다'
  • 정순임
  • 승인 2014.03.06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래된 미래, 경전에서 길을 찾다
[기고-삶의창] 정순임(한문고전번역가)

오래된 미래 - 經典에서 길을 찾다

도지사 예비후보 등록에 이어 시장, 광역의원 예비후보자들이 등록했다. 도지사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는 뉴스를 들은 날, 지인들한테 “예비후보 등록하는 데는 돈도 안 드는데 나도 등록이나 하고 본 후보 등록할 때까지 정치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나 실컷 하고 다닐까?” 했었던 기억이 난다.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한 이야기에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 빨리 가자” 해주었다. 전부 “에이, 말도 안 돼” 했으면 자못 상처 입었을텐데 참 괜찮은 친구들이다. 어쨌든 6.4 지방 선거가 세달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는 나와는 무관하니 선거 한 철 잘 얻어먹고 아무나 뽑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면서 맹자(孟子 梁惠王 章句)속으로 길을 찾아 나선다.

“맹자께서 양혜왕을 뵈셨는데 왕이 못가에 있다가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현자(賢者)들도 이런 것을 즐거워하십니까?(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顧鴻鴈麋鹿, 曰, “賢者亦樂此乎?”) 풍광 좋은 못 가에서 온갖 짐승들과 아름다운 화초를 즐기는 자신의 모습이 맹자에게 독재자란 인상을 심어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현자라는 징험을 맹자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던 것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왕은 현자도 이런 것들을 즐기냐고 물었다.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현자인 뒤에야 이것을 즐거워할 수 있으니, 어질지 못한 자는 비록 이것을 가지고 있더라도 즐거워하지 못합니다.(孟子對曰, “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 不樂也.) 과연 맹자다운 답이다.

이어 맹자는 『시경(詩經)』「대아 영대편(大雅 靈臺篇)」을 인용한다. ‘영대를 처음으로 경영하여 이것을 헤아리고 도모하시니, 서민들이 와서 일하는지라 하루가 못되어 완성되었도다. 짓는 일을 급히 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서민들은 아들이 아버지 일에 달려오듯이 하는 도다. 왕이 영유에 계시니 사슴들이 그 곳에 가만히 엎드려 있도다, 사슴들이 윤기가 흐르고 백조는 깨끗하도다, 왕이 영소에 계시니 아! 연못에 가득히 고기들이 뛰어논다.(經始靈臺, 經之營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經始勿亟, 庶民子來. 王在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沼, 於牣魚躍.) 문왕은 대체 어떤 사람, 어떤 정치인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자못 그가 궁금해지는 날이다.

“문왕이 백성들의 힘을 이용하여 대를 만들고 못을 만들었으나 백성들이 그것을 즐거워하여 그 대를 영대라 이름하고 그 연못을 영소라 하여 문왕이 사슴과 고기와 자라를 소유함을 좋아하였으니 옛사람들이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겼기 때문에 능히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文王以民力爲臺爲沼, 而民歡樂之, 謂其臺曰靈臺, 謂其沼曰靈沼, 樂其有糜鹿魚鼈 古之人與民偕樂, 故能樂也.)” 맹자의 대답은 수천 년을 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대를 만들고 연못을 만들려고 몰려든 백성들이 문왕의 일을 아버지의 일처럼 여겼다는 대목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자식을 굶기고, 길거리로 내몰아 추위에 떨게 하고,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하는 아버지라면 자식은 그 아비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 자살율 1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며칠 전 60대 엄마와 30대 두 딸이 동반 자살했다. 월세와 세금을 담은 봉투에 “정말 죄송합니다.”란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나섰다. 어제 생활고를 비관한 30대가 4살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죽었다. 가혹행위를 당하다 자살한 병사의 조의금 270만원을 여단장이 가로챘다. 이것이 지금 시대의 현 주소다. 거대해지다 못해 괴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정순임-한문고전번역가
그런데도 어떤 국민들은 여전히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인 줄 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체제를 두고 나눈 분류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독재주의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독재가 진행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주인이 될 자격이 없고 절대로 주인이 될 수도 없다. 집중된 거대 자본을 가지고 국민들의 목숨 줄을 장악하고 있는, 방송과 언론을 손아귀에 쥐고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는 한 줌도 안 되는 그들에게서 국민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정치는 술자리 안주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다. 고라니와 사슴이 뛰어노는 영대(靈臺)와 물고기가 평화로이 노니는 영소(靈沼)를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다. 그 안에서 우리와 더불어 함께 즐거워할 줄 아는 심부름꾼을 뽑는 일 또한 우리들의 몫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가진 국민, 우리가 스스로 현자(賢者)가 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