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한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를 위한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 김신기철
  • 승인 2014.07.09 2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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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김신기철 (안동시민사회포럼 시민사업팀장)
▲ 김신기철(안동시민사회포럼 시민사업팀장)

세월호 사건에 이어 무장탈영 사건까지 연일 대형사고가 일어나 여러 날 마음 편히 보낸 적이 없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데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어디 하나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단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나면 범죄 때문에 걱정해야 하고, 입시 제도가 바뀌면 입시 때문에 걱정해야 하고, 군대에서 사고 나면, 경제가 어려워지면, 집값이 올라가면,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면......

얼마 전 아동보호 단체에서 배포해준 아이들 행동 지침에 승강기 앞에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탑승하지 말라, 슈퍼 주인이 아이스크림을 주면 거절하고 돌아서라 하는 등 잘 모르는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승강기 앞에 모르는 어른이 있으면 제일 먼저 인사를 해야 하고, 동네 슈퍼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주면 감사 할 줄 아는 세상이 아니라 잘 모르면 위험한 사람, 과잉 친절은 범죄로 의심받는 세상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를 위한 공동체 정신이 점점 잊혀 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금도 곧 바로 언급하겠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라는 말을 거의 습관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 모이면 자식 자랑이 빠질 수 없다. “우리 애가 1등을 했지 뭐에요”, 아이들은 자기 동네 자랑에 열중이다. “우리 동네가 더 좋아” 국어사전의 뜻을 보면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이고 그 쓰임새는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는‘우리 어머니’, ‘우리 신랑’, ‘우리 아기’, ‘우리 동네’, ‘우리 학교’와 같이 ‘우리’를 쓸 수 있다.

문법적 해석을 떠나 더 좋은 해석을 해보자면 우리는 곧 너와 나 이고 우리 애는 너와 나의 아이이며, 우리 동네는 너와 나의 동네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있어 너와 나의 일이 따로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바로 우리 일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아이, 내 가족, 내 집만 괜찮으면 놀란 가슴 한 번 쓰다듬고는 곧 잘 돌아서버린 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입으로는 우리를 곧 잘 말하면서도 나만 생각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세월호의 아이들은 죽고 난 뒤에야 온 국민이 미안해하는 우리 아이들이 되었고, 무장 탈영한 병사는 우리 안에서 함께 하지 못해 결국 사달을 내고야 말았다.

자연계에서 가장 연약했던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우리로서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협동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이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왔다. 그러나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기능적으로 숙달된 개체가 적자 생존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협동의 본능적 유전자는 점점 소멸하고 있다. 경제문제가 삶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경쟁이 당연한 인간 생존의 도구로 자리 잡다보니 요즘 사람들은 왜 함께 잘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잊고 사는 듯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 아니라 진정한 우리임을 어른들부터 인식하고 아이들에게까지 가르쳐야 한다. 잘못된 언행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내 아이만 저렇지 않으면 된다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일로 생각하고 아이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함께 관심 가져야 하고, 길을 혼자 건너는 꼬마 아이의 손을 자연스럽게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을의 어려운 일들을 방관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의 일로 알고 함께 나설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관주도형 운동으로 꾸준히 제시는 되고 있지만 주민 스스로 인식하고 일어서는 생활운동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당연시됐던 이런 생활의 가치들이 이제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고, 따로 특별하게 언급을 해야 하는 규범적 가치가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한 명 한 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너와 내가 따로 아닌 우리로서 살아갈 수 있는 그래서 어느 누구의 아이라도 마을 안에서 위험에 방임되지 않도록 우리가 먼저 관심 가져야 한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함께 관심을 가지고 막을 수 있고, 입시 제도가 바뀌면 내 아이만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입시 제도에 함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사는 법을 배운 아이들이 군대에서 진정한 전우애를 키울 것이고, 경제가 어려워져도 사회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관심이 단 한명이라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우리를 배운 아이들이 커서 더 좋은 세상이 될 날을 기분 좋게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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