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기억하라>
<열정을 기억하라>
  • 공감
  • 승인 2009.04.01 1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 시절의 이상과 열정과 신념’

“인류가 진보하려면 무비판적인 태도를 버리고, 이성적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믿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 박사는 자신이 살면서 누리는 행복에 대해 고민하다가 스물한 살에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 서른 살까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그 이후의 삶은 봉사하는 데 바치기로 했다.

그는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 교수 겸 교회 목사가 되어 안정된 삶의 행로에 들어섰다. 하지만 스물아홉 살에 그는 아프리카에 선교 봉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언론 기사를 읽고 서른 살부터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사가 되어 서른아홉에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 랑바레네로 가서 평생을 봉사하며 살았다. 1952년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슈바이처는 왜 봉사에 일생을 바쳤을까? 그 까닭은 그의 자서전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열정을 기억하라>는 그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기 전까지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의 삶을 이야기한다.

위의 인용문은 그에게 의미있는 삶의 출발점이자 모든 생각과 행동의 근원이 되었다. 즉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과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보았기에 그는 선과 악, 풍요와 가난 등 모든 것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반 위에 자신의 삶을 세웠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다지 부족할 것 없이 사는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정당한 것인가에 의문을 가졌다. 그가 보기에 세상에는 자신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 덕분에 행복한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우리는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좇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슈바이처는 책의 말미에서 몇 가지 인생 교훈을 들려준다.

첫 번째는 바로 “감사를 표현하라”이다. 그것도 제때 감사해야 한다. 뒤 늦게 감사해봤자 소용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서에 나오는 일화를 들려준다. 예수에게서 치유를 받은 나병 환자 열 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은 집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중요한 일을 처리한 다음 예수에게 감사하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예수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들이 자기 볼일을 다 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사이에 예수는 죽고 말았다. 오직 한 사람만이 감사하는 마음을 곧 바로 표현했다.

중국 송(宋)나라 유학자 주자(朱子)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다. 주자는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기 쉬운 후회 열 가지를 설파한 주자십회(朱子十悔)에서 첫 번째로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를 들었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감사의 효도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봤자 소용없다고 했다. 두 번째인 불친가족소후회(不親家族疏後悔)와 마지막 열 번째인 부접빈객거후회(不接賓客去後悔) 또한 감사의 타이밍을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가까이 있을 때 감사하며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후회하고, 자기를 만나러 일부러 찾아온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후회하기 마련이다. 요약하자면, 있을 때 잘하란 말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나 감사에 인색한 편이다. 서양 사람들은 생활 예절이긴 하지만 무엇에 대해서든 누구에게나 쉽게 감사를 표현한다. 유럽에 가면 “생큐(영국)”, “당케(독일)”, “메르시(프랑스)”, “그라시아스(스페인)”, “그라치에(이탈리아)” 같은 말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듣게 되는데, 사실 질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감사를 표현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일본 사람들만 해도 우리보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쉽게 말한다. 남들에게 싸가지(싹수) 없다고 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볼 일이다.

슈바이처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 베푼 보살핌과, 나로 인한 고통을 참아준 것에 대해 미처 감사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는 저린 가슴을 안고 종종 그분들 묘소 앞에 서서 살아생전에 해야 했던 말을 조용히 쏟아놓는다.”

“나는 어렸을 때 가졌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싱싱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다.”

20년 전에 미국의 카운슬러인 로버트 풀검이 펴낸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지만 내용인 즉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리가 잊고 살았던 지당한 인생 진리를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는 강요하듯 가르치지만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가치들을 되찾아주었기 때문이다. 책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나눠가져라”, “타인을 때리지 말라”, “타인을 다치게 하면 사과하라”, “내 것이 아니면 가지지 말라” 등등 어른이 되면서 쉽게 잊어버리는 것들 투성이다.

슈바이처는 이렇게 말한다. “본능적으로 나는 이른바 성인(成人)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대개 ‘성인’이란 적당히 타협할 만큼 사리를 분별할 줄 알게 된 사람을 가리킨다.” 언뜻 읽으면 슈바이처가 좀 철부지처럼 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어른이 된 인간들이  ‘성숙’이라는 말에 기대어 저지르는 온갖 악(惡)을 거부한다. 어린 시절에 지녔던 소중한 생각과 신념을 하나하나 포기함으로써 ‘성인’이라는 부조리한 존재가 되는 것에 반대한다.

이것은 비단 도덕적인 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슈바이처는 나이 들면서 점점 사그라지는 이상과 열정 또한 어린 시절처럼 싱싱하게 유지할 것을 주문한다. 실제로 로버트 풀검과 슈바이처가 말한 ‘어린 시절의 이상과 열정과 신념’을 지킨 사람들은 대개 건강하게 오래 살기도 했다.

슈바이처는 90세에, 헬렌 켈러는 88세에, 마더 데레사 수녀는 87세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행복은 결코 혼자서 이룰 수도 없고 혼자서 모두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적 가치를 지키며 더불어 살아야만 행복할 수 있다.

슈바이처는 말한다.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서 선과 진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열정을 앗아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슬픈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삶이라는 제단에 믿음과 열정을 제물로 바쳐서는 안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