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은 늘 초심잃지 않고 살아야'
신탁에 의지한 만큼 세상 이롭게
'무당은 늘 초심잃지 않고 살아야'
신탁에 의지한 만큼 세상 이롭게
  • 읊은이:송옥순/글쓴이:최성달
  • 승인 2014.12.3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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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안동제비원성주풀이에 얽힌 나의 인생' 別曲>(5)
[읊은이:송옥순/글쓴이:최성달]

성주굿을 할 때, ‘성주의 본이 어디메뇨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 이라는 성주풀이를 노래한다. 이렇듯 예로부터 안동 제비원은 민족신앙의 본향으로 일컬어져 왔다. 최근 사단법인 안동제비원성주풀이 보존회 송옥순 회장은 2012년 안동제비원성주풀이를 전국최초로 완창하는 공연을 성공시켰다. 성주신앙의 체계적인 보존과 계승은 물론이고 현대인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송옥순 여사. 전통문화 유산을 온몸으로 계승·체현하고 있는 인간 송옥순의 삶의 이력을 경북문화콘텐츠진흥원의 기획으로 최성달 작가가 구술 받고 정리해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6. 큰 무당이란

내가 생각하는 큰무당은 큰굿을 할 줄 알고 본풀이에 능해야 하며 어려움을 딛고 入巫(입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전국을 다니며 관청에서 주관하는 행사에서부터 마을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안녕과 복을 구하는 일에 신명 바치는 것을 무한한 자부심으로 여긴다. 많은 이들 가운데 무속과 무당이 하는 일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무속을 행하는 무당의 잘못이 크다. 신의 대의와 신탁을 전하는 무당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사로운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탁을 활용하는 것은 혹세무민이다. 많은 무당이 사람 구실 못하는 것도 신탁을 제대로 전하지 않거나 자신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에 신의 권능을 악용하기 때문에 성직자 대접을 못 받는 것이다.

신의 힘으로 신비한 이적을 행하는 힘이 주어진 무당의 올바른 자세는 너그러운 마음씨와 맑은 정신이다. 성심으로 국가와 민족과 공동체와 어려움에 처한 개인을 구하고 보살피는 일에 주어진 사명과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 타인도 살고 무당도 사는 길이다. 모두가 사는 길로 가지 않고 혼자만 잘 사는 길로 가는 것은 죄악이다. 신의 거룩한 사명을 수탁 받는 자가 그 명령을 거역하고도 잘 살 수가 있겠는가? 결국은 자신을 진흙탕의 수렁으로 밀어 넣은 업을 짓는 것이다.

무당은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한다. 얼마나 큰 고초를 받고 무당의 길로 들어섰는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고난을 겪다가 신을 받아들이고서 무당이 되었다는 것은 큰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당이 되기 전과 무당이 되고 난 이후의 인간은 확연한 다른 인간이다. 신령을 몸에 지닌 표상으로서의 무당은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일반인과는 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숙명은 태초부터 무당에게 주어진 유전자다. 우리가 잘 아는 건국신화는 하나같이 이러한 무속의 양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웅녀가 사람이 되는 과정 또한 그러한 예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곰이(곰을 숭상하는 마을의 처녀)백일동안 햇빛 들어오지 않은 동굴에서 숙과 마늘만 먹고 백일을 견뎌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인간승리의 코드로 읽는다. 이 뜻은 한 인간의 자기완성을 보여주는 강렬한 실천의지의 표상이다. 웅녀가 천신의 아들인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의미는 나만 생각하는 곰마을의 처녀가 너와 우리 그리고 나아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홍익인간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또 이것을 한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원대한 포부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무녀가 되겠다는 큰 뜻으로 화답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렇듯 무당의 본령이란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당이 신의 내력을 신구약(골계+살)에 걸쳐 두루두루 구연하지 못한다면 무당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서사무가를 할 줄 모르는 무당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무당의 본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고작 해봐야 주술무가가 전부다. 살이 더해지지 않은 족보 없는 골계로 돈 벌이에만 급급하다 보니 무당이 욕을 먹는 것이다.

7. 본풀이와 공수

풀이란 주술행위를 내포하고 있기는 하나 본령은 이야기로 풀이하는 것이다. 즉 무당이 말이나 노래로써 서술한다는 의미니까 언어행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 신에 관한 언어적 서술이 풀이인 것이다. 따라서 본풀이라는 말은 신의 내력과 역사 즉 근본을 푼다는 뜻이다. 무속은 생성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본풀이가 주된 핵심을 이루고 있다. 신들에 의해 이야기 되고 신들에 의해 전해진 것이 신의 역사고 족보며 내력인 것이다. 이것을 무당이 신탁에 의해 즉, 신을 대리해서 인간에게 대신 전하는 것이 공수다. 무당은 접신을 통해 신의 말을 옮긴다. 그러니까 공수는 다시 말해 신의 말인 것이다. 굿을 할 때 무당은 탈 영혼 상태가 된다. 이 무열에서 무당은 즉흥적인 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따라서 내용도 다양하다.

신이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옮기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르고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어떤 무당은 천계여행을 줄줄 뱉어 내기도 하고 또 어떤 무당은 지옥의 모습을 실재처럼 재연하기도 한다, 따라서 본풀이를 한다는 것은 태초에 신의 내력을 접신을 통해 즉흥적으로 뱉어낸 무당의 詩作(시작)이 전승의 형식으로 뿌리내린 것을 재연한다는 의미다. 맨 처음 이러한 신의 내력을 설파한 무당이 신과 어울려 이룩한 신비의 세계가 신화가 되었고 이것을 후배 무당이 굿을 할 때 공수를 통해 재연하는 것이 본풀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100% 영웅의 신화창조나 건국신호와 연관을 맺고 있다.

이렇듯 신화창조라는 것이 대개 영웅에 관한 이야기고 보면 영웅은 곧 신으로 숭배된 인물이기도 하다.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곰 신앙의 주체이며 환웅은 천신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태어난 단군은 제사장 그러니까 무당이다. 무녀가 굿을 할 때 갓을 쓰는 것은 이러한 제사장의 혈통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행위다. 비록 여자지만 왕과 신의 계보를 이었으니 칼을 차고 갓을 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몽고계통 부족 가운데 지금도 곰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고 숭배하는 믿음이 이어지고 있다.

신라 건국신화인 혁거세 탄생비화도 마찬가지다. 보통사람과 다른 탄생비화를 갖고 있다. 이로써 영웅은 한 나라를 건국할 수 있는 역량을 애초부터 부여받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과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 고려를 건국을 왕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또한 이러한 신화와 무속이 접목된 영웅담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 같이 무속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따라서 무당은 이것을 굿으로 풀어낼 때 공수로 신의 이야기 즉 본풀이를 하는 것이다. 이때 공수와 본풀이는 실과 바늘처럼 한 몸이며 신과 재의와 신화와의 연관성은 상고대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이어져온 우리 무속의 전승 맥락이기도 하다. 특히 그러한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속신화 성주풀이와 성주지신밟기, 바리데기 그리고 駕洛國記(가락국기)신화다.


8. 안동 제비원이 갖는 의미

제비원은 지리상으로 안동시 이천동에 속해 있다. 안동시청에서 영주방면으로 3km가량 떨어진 한티재 너머에 있다. 이곳은 민족종교의 개념으로는 성지에 해당한다.

옥황상제의 맏 제자인 성주신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강신한 후 나무 끝에 의지하는 시련을 겪으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야말로 눈비 3년, 흑비 3년, 돌비 3년 등 도합 9년 세월을 성주근본을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자신이 뿌리내릴만한 곳이 없었다.

이곳 제비원에 좌정하여 터전을 잡을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인데 이 기간은 천상에서 지은 죄를 속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따라서 성주신이 제비원을 자신의 근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천신 계열인 성주신이 하늘에서 지은 죄가 소멸하고 자신의 세계를 열어갔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 있다. 성주신이 맨 처음 인간에게 집 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하는 데 거기에 쓰인 나무가 제비원에서 그전부터 있는 소나무였다는 것이다.

신단수처럼 환웅이 천상에서 내려올 때 가져 온 나무가 아니고, 예전부터 제비원에서 자라고 있던 소나무 솔씨를 전국으로 뿌려서 그 나무가 자라 집 짓는 대목을 생산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중해가 올리브 문화고 일본이 편백 문화고 러시아가 자작나무문화인 것처럼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문화가 소나무문화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문화가 소나무 문화라는 것은 명백하다. 소나무의 쓰임이라는 것이 어디에 국한되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소나무에 나서 소나무에서 죽는다고 말한다. 소나무로 대들보 삼은 집에서 태어나 살다 마지막에도 소나무 관에 의지해 땅 속에 묻힌다.

이것만이 아니다. 솔가지는 방을 데우는 군불로 사용했고, 밥 짓는 데 이용했다. 연한 소나무 순과 뿌리에서 나오는 귀한 약재인 지치와 복령은 술로 담금주를 만들어서 먹었다. 이뿐이랴. 송진 기름으로 붉을 밝혔고 구황 때는 껍질을 벗겨 연명했으며 마른 나무는 가구를 만들어 장식했다.

선비의 표상이기도 했던 소나무는 우리 한국인이 정신을 향유하는 데도 최고의 대상이었다. 늘 소나무처럼 곧고 푸르게 살기를 갈망했으며 소나무 사이로 비취는 달의 정경을 풍경의 으뜸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나는 성주굿에서 방안에 부정을 몰아낼 때는 반드시 동쪽으로 뻗은 솔가지를 사용하고 금줄에도 반드시 솔가지를 끼운다. 그리고 성주내림을 할 때도 그 집 대주에게 성주목으로 소나무를 잡게 하는 데 성주신이 강신하면 소나무 가지를 잡은 대주의 손과 몸이 떨린다. 이로써 강신을 확인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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