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어린이문학관에 관한 단상
권정생 어린이문학관에 관한 단상
  • 이임태 (전 한국일보 기자)
  • 승인 2015.01.27 01: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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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무지와 안동 문화계의 무관심에 화가 난다
[이슈 돋보기] 이임태(전 한국일보 기자)

신경림 시인의 스테디셀러 ‘시인을 찾아서’를 읽다가 얼굴이 화끈거린 것은 17년 전이다. 이 책은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고향과 유적을 답사한 뒤 현장성을 바탕으로 그들의 시세계와 삶을 돌아본 산문집으로, 그 탁월한 재해석은 문학청년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런데 안동사람으로서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전남 강진에서 영랑(김윤식, 모란이 피기까지는) 생가를 물었더니 유치원생도 아는 반면, 경북 안동에서 육사생가를 물었더니 알 만한 사람도 고개를 젓더라는 대목에서였다. 심지어 당시 안동의 인사들은 지명이 같은 도산면 원천(源川)리와 녹전면 원천(元川)리도 구별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안동시의 무지와 안동 문화계의 무관심에 화가 나 있었다.

신경림 시인의 지적으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안동시의 문화적 안목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최근 불거진 ‘권정생 동화나라’의 불편한 사달을 보면 외람되게도 안동시는 17년 전의 무지와 미숙함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권정생 동화나라는 폐교로 남아있던 옛 일직남부초등학교에 예산 31억원을 들여 건립, 지난해 8월 개관했다. 그러나 예산규모에 비해 조악한 시설과 부실한 콘텐츠로 갖은 의혹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폐교 리모델링 공사를 맡았던 업체가 전 안동시의회의장 소유라는 점이 부실의혹을 더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개연성 있는 의혹이라면 이를 밝힐 의무는 수사기관에 있고, 따라서 나는 시설의 부실 따위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권정생 동화나라가 위대한 아동문학가로 추앙받는 고 권정생 선생의 문학관 격이라면, 실시설계 단계부터 선생의 유지(遺志)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작품세계를 더 가치 있게 하기 위한 담론이 있어야 했다.

2개월 전 전남 벌교 지역을 여행하면서 위대한 문학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각성과 교훈,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부대효과에 새삼 놀랐다. 알다시피 벌교는 읍내 전 지역이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돼있다. 아름다운 풍경이 무색하게 벌교는 사실 일제에 의해 계획된 도시로, 전남내륙의 물자를 수탈했던 뼈아픈 역사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주인공 염상구의 철다리와 남도여관, 현부자네 집, 태백산맥문학관으로 이어지는 장소들은 처절한 민족상잔, 허무한 이념대립의 살아있는 현장이어서 여행객의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벌교는 스토리로 연결돼 살아 숨 쉬면서 여행객들을 맞고 있었다.

고 권정생 선생의 많은 작품 중 대표적이라 할 ‘몽실언니’는 전후소설이자 성장동화로서, 한국전쟁 전후의 처참한 가난, 그 속에서도 기어이 소멸되지 않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작품이다. 몽실이를 통해 굴곡진 현대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각성할 수 있는 이 작품의 무대는 바로 권 선생의 생가가 있는 일직이다. 일직면 일대 전체는 태백산맥의 벌교와 같이 몽실언니의 배경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 이임태(전 한국일보 기자)
선생의 생가와 빌뱅이 언덕, 종치던 교회, 동화나라를 스토리텔링으로 연계하고, 살아있는 작품 속 현장으로 만들기 위한 본질적 고민,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더해줄 거시적 설계는 불가능한 일일까. 몽실언니가 아니더라도 순백의 마음을 담은 강아지똥, 엄마까투리 등 후인들이 잇고 확대할 수 있는 선생의 작품세계와 정신은 얼마든지 크고 넓다.

시설이 열악하고 부실하다, 인근 청송군의 객주문학관과 비교해 처진다는 등의 지엽말단적 지적을 넘어서서 본질적 고민을 할 때다. 문학관 하나도 제대로 못 짓는 안동시에 기대하자는 게 아니다. 지역 문화계가 진실한 고민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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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민 2015-02-21 23:46:06
정확한 지적이며 의미있는 논의,,, 콘텐츠 생산주체인 사람, 전략적 경영방안 등 보다 치밀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할 시점인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