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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세대의 마지막 기록가치 모을 때다
[경북인칼럼] 유경상 (본지 발행인)
2015년 02월 23일 (월) 19:29:08 유경상 (경북인신문 발행인) andongsori@naver.com

최근 사십대 말에 다다른 남자 네 명이 모여 복식탁구를 치고, 술자리를 가졌다. 건강이유로 당분간 금주 중이라, 소주잔에 물을 부어놓고 이바구를 한참 하던 중, 서로 간에 기억에 남는 영화를 읊조렸다. ‘벤허’, ‘글래디에이터’, ‘박하사탕’, ‘백야’, ‘아웃오브아프리카’.... 영화제목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데, 동년배 한 명이 “지금까지 본 영화가 약 4천편이다”고 고백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고수 앞에서 무슨 자랑을 할 수 있으랴. 엇비슷한 남자 동년배끼리의 영화에 관한 추억은 거개가 도토리키재기 수준이다.

그날 이후 기억에 남는 여러 영화 중 딱 한 편만 보자고 생각하며, <흐르는 강물처럼>을 감상했다. 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을까, 스스로 궁금증이 일었는데 화면의 첫 도입단계에서 그 의문이 쉽게 풀린다. 며칠 동안 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던 어떤 생각의 줄기와 잇닿아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손이 움직였던 것이다.

영화 시작은 이렇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노먼!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언젠가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쓰거라. 그래야 우리가 겪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단다.’ 이 문구가 화면 위를 흐른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다가 은퇴한 ‘노먼 매클린’이라는 화자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사랑했던 가족과 함께 살았던 고향인 미국 몬태나주 미줄라에서의 생활을 추억하기 시작한다. 송어가 많이 잡히는 아름다운 블랙풋 강의 협곡에서 펼쳐지는 세 부자의 플라이 낚시의 환상적인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영화는 고향을 떠나 시카고대학에서 평생 영문학자로 살았던 노먼 매클린이 70세에 쓴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었다. 이 책은 1976년 출간돼 이듬해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은 이 자전적 소설을 1992년에 영화로 제작했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은 그렇게 오랫동안 관람객의 뇌리에 영상의 이미지와 함께 감동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특히 기억을 반추하는 주인공의 남동생으로 출연한 브래드 피트의(폴 매클린 역) 젊은 날 얼굴도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다시 감상을 하는 과정에서 눈길이 가 닿는 게 이전과는 달라졌다. 대학교수를 은퇴한 노먼 매클린이 일흔 살이라는 할아버지가 되어서 이 자전적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자전적이면서도 가족과 함께 살며 성장했던 ‘지역’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에 눈길이 더 간다. 소설과 영화의 원래 텍스트는 바로 몬태나주 어느 특정 대지의 산과 강, 마을과 도시였다. 그리고 노먼의 가족과 동생인 폴, 그들의 이웃공동체로 압축될 수 있다. 영상의 도입부분에는 수많은 사진자료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1900년 초 어느 소도시의 풍경들이다. 교회당, 채목장, 소풍, 꼬마들, 깊고도 드넓은 대지, 단란한 가족....

이를 우리의 삶으로 이동해 반추해 보면 어느 은빛세대이든, 누구든지 근현대사의 거센 소용돌이를 지나며 살았다는 점에 착안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은빛세대의 머리 속에는 소중한 스토리가 기억으로 체화돼 있다는 것을 상기해 낼 수 있다. 그런데 이렇듯 소중하고도 가치가 높은 인생의 경험과 지혜, 수많은 스토리를 어느 누구나 글로 술술 풀어 쓸 수 없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글을 모르는 사람도 자기 기억을 구술로 풀어내게 하고, 녹음과 녹화를 통해 기록물로 만드는 구술자료화 사업이 요구되어 진다. 사람의 기억력은 나이와 반비례하는 만큼 어느 순간에는 그 기억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다. 그런 만큼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절박함이 크다는 것이다.

만약 은빛세대의 구술자료화 사업이 진행된다면 어떻게 재미를 더하고 관심을 높일 수 있을까? 두 가지의 방법을 생각해 본다. 대중적 잡지나 언론에 연재를 하는 것, 그리고 단행본으로 예쁘게 엮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관청이 한다면 딱딱해질 것이고, 민간이 한다면 재정적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은 민과 관이 함께
   
▲유경상 (본지 발행인)
연차적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작업에는 글짓기에 재능이 있는 지역의 젊은 세대의 대필작업이 함께 진행돼야 할 것이다. 이 자체로도 지역사회 내부의 단절돼 가는 세대간의 대화와 소통의 창구역할을 선도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나온 생애와 지역사회에 대한 기억들을 진지하게 더듬으며 들여다보는 은빛 세대의 회고 모습과, 이들의 어제의 기억을 젊은 세대가 귀담아 들으며 경청하고 있는 장면. 마지막 활자세대들끼리의 자랑스러운 기록물을 공유자산으로 남겨 준다면 그 시도자체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희망을 만들어내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며, 최고의 자산으로 가치매김되어 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또 하나의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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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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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배
(218.XXX.XXX.155)
2015-03-02 17:55:13
기억 속으로?
좋은 발상에 한표~~^^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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