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할매 소나무’와 ‘할매 할배의 날’의 인연
‘할배·할매 소나무’와 ‘할매 할배의 날’의 인연
  • 김용준 기자
  • 승인 2015.04.09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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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공경·효친정신, 솔씨처럼 퍼져 큰나무·큰집 되길
[경북인 칼럼] 김용준(경북인신문 본부장)

▲김용준(경북인신문 본부장)
오는 가을이면 대구 산격동 경북도청사가 경북 안동 풍천면·예천 호명면의 경계지로 이전을 해 온다. 안동 쪽에서 바라보면 이곳은 산과 들, 그 사이로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감아 돌아가는 넉넉한 강이 흐르고 있어 신도청을 끌어안을 수 있는 지세가 충분한 곳이다.

안상학 시인은 도청이전이 발표된 직후 도청이전지 탐방기를 통해 ‘평화의 시기에는 자신을 갈고 닦고, 위기의 시대에는 맨주먹으로 떨쳐 일어나는 선비정신의 기운이 느껴지는 산이 검무산(劍無山)’이라고 노래했었다. 그 검무산 바로 아래가 옛 ‘갈전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새경북의 천년반석을 세우기 위해 부모가 허리를 졸라매고 자식 위해 희생하듯, 이 마을주민은 수백 년 정든 고향땅을 떠났다.

현재 도청신청사 공사가 한창 마무리 중인데, 사라진 옛마을 입구 정면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다. 갈전 1리 본동 마을 들머리에 축대를 쌓아 보호 중인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100미터 옆 들판 가운데 또 한 그루 소나무가 서 있다.

마을노인들은 일명 ‘할배나무’와 ‘할매나무’라고 부르고 있으며 두 그루 수령을 400~500년으로 추정한다. 이 중 할매나무에 관련된 유래설화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말뚝을 박아 이것이 소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이런 설화가 언젠가부터 마을공동체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고, 마을사람들은 할매, 할배소나무가 신목이라고 여겼기에 매년 동신제를 지내왔다.

그런데 최근 할매나무가 고사(枯死)를 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고 한다. 새로 시집 오듯 새 소나무를 한 그루 심어놓았지만 뭔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조상대대로 지켜온 마을 터전을 신도청사 위해 선선히 포기했지만 눈물을 머금으며 떠날 수밖에 없었던 할매·할배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듯해서다.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고향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경상북도의 본체, 본령을 지켜온 할매 할배들 또한 경북지역을 지켜온 근현대의 산증인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침 지난해 경상북도가 ‘할매 할배의 날’을 조례(제3584호)로 제정했다. 이에 우연치고는 신도청사가 자리 잡게 될 이 터 위에 수백 년 넘은 할매·할배 소나무가 있었다는 인연이 참으로 기이하고도 신기하다고 볼 수 있다.

등 굽은 소나무처럼 산야를 지키듯 고향과 선산을 지키며 우리 경상북도를 지켜온 은빛세대는 정말 우리 시대가 제시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고 살아오신 분들이다. 이 조례가 존경을 받아 마땅한 경북의 은빛세대들의 지킴이가 될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산야에는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함께 산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해보면 이 또한 상스러운 징조로 보인다. 옛 선비들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기개를 흠모했다. 더욱이 안동은 우리나라 소나무 즉, 솔씨의 근본이자 본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제비원 성주의 본향이 되는 그 배경에는 낙락장송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하회마을 만세송, 백운정 개호송, 도산서원의 노송, 북후 김삿갓송은 세파에 시달리지만 어른을 공경하며 이웃과 넉넉하면서도 인정스러운 전통을 이어가는 안동의 정신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곧 이전하는 경상북도가 어르신을 공경하는 효를 장려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려고 조례를 만들었고, 새롭게 개청하게 될 신도청사 앞에 두 할매·할배 소나무가 수백년 간 이 터전을 지켜왔다니 놀랍고 조화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솔씨의 향이 새처럼 바람처럼 퍼져 그 씨앗이 큰 나무가 되고 경북의 큰 집이 될 것으로 보여 진다. 경상북도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효제인충(孝悌仁忠)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전국의 본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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