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공원(詩碑公園) 유감’
‘시비공원(詩碑公園) 유감’
  • 김원길(시인, 지례창작예술촌장)
  • 승인 2015.05.20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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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인 시비는 세우지 않는게 불문율
문예부흥 예산은 좋은 작품 쓰는데 지원해야
[특별기고] 김원길 (시인·지례창작예술촌장)

안동에 시비가 여럿 세워지고 있다. 5년 전(2010년) 안동 예총에서 기획하여 안동예술의 전당 뒤 벚꽃 길에 우리 고장 출신 시인들의 시비를 1년에 하나씩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문학의 거리를 만든다는 취지이다. 예산은 예총이 안동시로부터 받아서 안동문협이 주관하여 시인을 선정하고 공사를 시행하고 예산을 집행하여 왔다.

선정 기준은 안동출신 현대시인 중에 작고한 분을 우선하며 생존한 분이라도 문학적 성과를 자타가 인정하는 분을 안동문협이 추천하여 결정하여 왔다. 첫 해엔 이육사, 둘째 해엔 권정생, 셋째 해엔 김종길, 그리고 한 해 건너 올 해엔 유안진의 시비가 세워질 예정이다. 이육사와 권정생은 작고한 분이고 김종길과 유안진은 생존한 분이지만 문학적 업적과 나이로 보아 자격에 이론이 없었다.

원래 시비는 시인이 살아 있을 때 세우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생존한 사람의 묘비를 세우지 않듯이 당사자가 살아있을 경우엔 본인이 원하든 않든 간에 금석(金石)에 그 어떠한 것도 새겨선 안 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왜냐하면 지은이가 나중에 그 글을 고치고 싶어도 금석에 새겨진 이상 다시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시인은 그의 시를 빗돌에 새기기 직전에 틀리게 쓴 걸 발견하고 가까스로 고쳤던 것이다. 만약 그가 그걸 고치지 못한 채 빗돌을 세웠더라면 영원히 비난을 면할래야 면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책에 실린 글, 시화전에 낸 글, 도자기에 쓴 글은 그나마 없애거나 고칠 수가 있다. 그러나 금석에 새긴 글을 지우거나 고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그들이 나이가 많다하나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죽기 전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그 시인이 노년에 불미스런 일로 세상에 비난을 살 일을 한다면 그의 시비는 쳐다보기도 싫은 애물단지가 되고 그 시비를 세운 사람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니 말이다.

작품이 우수하여 자타가 흡족해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본인도 만인이 쳐다보는 자리에 어줍지 못한 시비를 세워 놓고 부끄러워서 어떻게 그 거리를 지나다닐 것인가?

그런데 언제부턴가 개인이 스스로 자기의 시비를 세우고 있음을 본다. ‘언제부턴가’라는 말은 시비를 세운 자가 문인들 몰래 슬그머니 시비를 세웠기 때문이다. 누구는 자기 고향 마을 입구에, 누구는 자기 직장의 화단에 세운 것이 뒤늦게 알려져 비난이 비등했다. 왜냐하면 거기 새겨져 있는 시가 전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시에 감동하여 베끼거나 사진을 찍어 가는 정도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왜 돈 들여 시비를 세워 놓고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구설에 오르내려야 하나?

유명해지고 싶으면 사랑 받고 존경 받을 일을 해야지 빗돌 세우기를 먼저 한다고 대단한 인물이 되는 게 절대 아니다. 특히 안동은 예로부터 나 잘난 척하지 않기로 이름난 곳이 아닌가?

전라도에 가면 시비공원이라는 게 있다. 지역 출신 시인들을 생사불문하고 총망라해서 갖가지 모양의 돌과 글씨로 시비를 세워 두고 관광객에게 구경 시키고자 지자체가 조성한 공원이다. 나는 가끔 전라도엘 가면 가람이나 석정이나 미당의 시비를 보러 가긴 했어도 시비공원에는 가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 거긴 아직 설익은 작품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 시인의 시비가 있다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 갈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이런 사업이 성공하려면 일단 거기 새겨진 시가 좋아야하고 그 시인이 존경 받는 인사여야 한다. 그러자면 당연히 다수의 호응이 있어야하고 엄격한 심사규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당국은 유명하지 않은 시인의 시비도 예산이 있다고 해서 꼭 세워야 하나? 작품이 좋지 않아서 사람들이 외면할 게 뻔한 작품도 시민의 세금으로 빗돌에 새겨서 세워야하나? 시민의 세금으로 시비를 세우는 것이니 시의회의 동의 여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문학의 성공은 좋은 작품,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데 있는 것이지 시비가 서 있느냐 아니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할 것이다. 문인의 약력을 보라. 몇 년도에 무슨 책, 무슨 작품을 썼는가는 기록 되어도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고 없고는 약력에 올린 걸 보지 못했다. 문학의 성공여부는 작가가 죽고 최소한 50년 후에 후인들이 그의 작품을 기리느냐 않느냐에 맡겨 놓아야한다. 만약 후인들이 선배의 시비를 세우고자 할 때 그가 생전에 손수 자기 시비를 세운 사람이라면 무엇하러 또 세워 줄 것인가?

우리 선배 문인들이 가장 경계한 것은 매문과 매명이었다. 돈을 받고 유력자를 미화하여 자서전 써 주는 것, 글은 안 쓰고 감투만 좇아 날밤을 새우는 것들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글은 뒷전이고 문학단체의 장이 되고자하는 사람, 작품 한 편 안 쓰면서 문예지를 발행하여 신인을 모집하여 예비문인을 상대로 책장사하는 사람도 있지 않는가! 그런 자들은 거개가 돈도 벌고 이름도 날렸지만 작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들 시인이 참으로 중시해야할 것은 시집의 출판이어야 한다. 8백만 원으로 한 편의 시를 돌에 새기기보다 죽기 전에 그만한 돈으로 시 전집을 내는 게 중요하다. 변변한 작품 하나 없는 사람이 자기 시비를 세우려고 안달하는 꼴은 목불인견이다. 시인이 훌륭하면 후인들이 그를 기려서 언젠가 세워 주게 마련 아닌가!

△김원길(시인,지례창작예술촌장)
지방자치단체는 시집 출판보다 시비공원을 만드는 게 전시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문인을 이용해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사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진정한 문예부흥 정책은 그 예산으로 문인이 좋은 작품을 쓰고, 죽기 전에 전집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속적 허영으로 말미암아 이름을 외려 망치는, 타락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당국이 문인들의 동의 없이 자기 판단으로 수준 미달의 작품으로 시비공원을 만들면 돈이 있는 시인은 자비로 자기 시비를 여기저기 세워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 뻔하다. 당국은 도시미관을 위해 이의 난립을 방지하는 조례를 만들고 꼴불견의 빗돌을 철거하는 예산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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