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벽 앞에서 느낀 절망을 일상의 설렘으로
차벽 앞에서 느낀 절망을 일상의 설렘으로
  • 허승규 (연세大 학생)
  • 승인 2015.06.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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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Q의 청년칼럼] 허승규(연세대 학생, 녹색당)
△ 허승규 (연세大 학생)

의경도 인간이라는 인간적 호소가 국가의 폭력을 은폐 하는 게 아니라 의경도 인간이기 때문에 국가의 폭력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개인의 아픔이 치유되려면 사적인 공간을 넘어서 공론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도 모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광장만이 정치적 공간으로 남는다면 대통령이 물러나고 녹색당이 정권을 잡아도 별반 달라질 건 없다. 오히려 정치와 권력을 다루는 것에 훈련되지 않은 자들이 공권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결과는 재앙일 수가 있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다른 이와 소통하고 정치를 마주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이 무엇인지, 다른 이와 갈등을 평화적으로 다루는 법을 배운 적이 있는가?

삶이 고단한 부모님들은 우리보고 공무원이 되라고 한다. 좋은 간판을 따라고 한다. 학원에서 우리는 시민이 되기 전에 입시와 경쟁과 생존을 배웠다. 누군가는 억눌린 채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대학 와서 거리에서 산다. 학점 관리를 열심히 하고 토익 점수를 올리거나 집회에서 세상에 저항하고, 학생회를 하면서 학교와 열심히 싸운다.

결국 취업을 앞두고 모두들 세상의 벽에 절망할 뿐이다. 정치적 냉소와 혐오는 커질 뿐이고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집회를 나갔던 경험은 술자리 안주거리가 될 뿐이고, 반대로 순응적인 대학생활을 했던 이들은 욕구불만을 지닌 채 말이다.

우리는 행정의 대상으로만, 시장의 소비자, 노동자로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타인과 소통하고 정치적 담소를 나누고 소소한 변화를 내가 서있는 곳에서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일상의 정치는 없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서민일지언정 시민이 아니다.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행정의 대상이다. 최소한 투표를 통해 누군가를 뽑을 정도의 권한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선택지는 그다지 없다. 1번 아니면 2번이다.

나는 유가족의 상처를 보았고, 상처를 지닌 수많은 시민들을 보았다. 애써 밝은 표정의 유가족의 언니 혹은 누나와 인사를 했다. 광주에서 올라온 오랜 친구를 만났다. 거기서 만나니까 슬펐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욕을 먹는 경찰 소대장의 서러움을 보았다. 지하철 입구를 막는 답답한 공권력 이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서러운 하급 경찰공무원이 보였다.

시민과 시민이 상처를 마주한다. 욕설과 분노가 오고간다. 답답하거나 안타깝다는 한탄에 머물고 싶지 않다. 노동자, 경찰관, 유가족, 시민, 대학생, 장애인, 직장인, 청소년, 다양한 이들이 시민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이 바뀌어야 하고, 국가와 개인을 연결하는 정당이 강해져야 한다.

다양한 불만들이 개인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수다를 나눌 만한 공간들이 많아져야 한다. 정말 바꾸고 싶으면 직접적인 행동을 넘어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을 하고, 커피 한두 잔을 아껴서 뜻이 맞는 공익단체에 후원을 하고, 관심 있는 강연에 가서 질문을 해보자. 비슷한 생각을 지닌 친구와 무엇인가를 기획해보자. 놀러가자. 생각이 다른 친구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보자.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소소한 변화를 만들어가면서 차벽 앞에서 느낀 절망이 아닌 일상의 설렘을 느껴야 한다.

부디 아픔과 상처가 냉소와 분노에서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 상처와 분노가 부셔져 열려, 공감과 평화의 힘으로 바꾸어 갔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제 집회에 갔던 많은 시민들의 정치적 냉소와 절망이 깊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나는 어제 근무했던 경찰 공무원들과 의무경찰 대원들이 시민들에 대한 냉소와 절망이 깊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의 아픔과 상처가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넘어서 국가와 사회가 좀 더 책임과 공감을 나눌 수 있도록 변화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위 칼럼은 바름협동조합 격월간지 링커에 게재된 내용을 재수록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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