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산에서 쭉 빠진 '미녀'를 만나다
아기산에서 쭉 빠진 '미녀'를 만나다
  • 임기현
  • 승인 2009.04.12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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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에 바람날 뻔한 산행이야기

▲ 아기산 오솔길은 호젓해서 좋습니다. 오르고 내리는 동안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집니다.

모처럼 벗들과 봄바람도 쐬고 일상에 지친 심신도 단련할 겸 단촐한 산행을 하기로 하고 찾아간 곳이 '아기산'이었습니다. 그다지 높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기에 지역에서도 크게 알려진 산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아기산에서 '쭉 빠진 미녀'를 만났다는 사실은 다시 생각해도 즐겁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그 쭉 빠진 팔등신 미녀를 만난 건 지난 토요일 오후였습니다.동창생과 한 해 후배 이렇게 셋이서 경북 안동에서 30분 거리인 임동면에 위치한 아기산으로 향했습니다. 등산로 초입에는 '봉황사(鳳凰寺)'라는 신라시대의 고찰이 있고 대웅전 뒷길로 이어진 오솔길이 아기산으로 오르는 북쪽 등산로 시작입니다. 

▲ 아름다운 여체를 빼어닮은 미녀목, 자태가 가히 팔등신 미녀입니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흐르다 영남으로 굽이든 큰 줄기에 영양 일월산이 있고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안동까지 내려온 작은 줄기에 제법 우뚝 솟은 산이 바로 해발 591m의 아기산(鵝岐山)입니다. 처음에는 이름이 어린아이 아기인줄 알았는데, 조선조 이조참판을 지낸 류복기 선생의 호 기봉(岐峰)과 후손들이 기봉 선생의 고사를 지낸 사당 이름 아기당(峨岐堂)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이 호젓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 정상에는 자그마한 돌단이 쌓여있었는데 매년 초 이 곳은 발디딜 틈이 없다고 합니다. 멀리 포항 호미곶으로 아니면 울진 해맞이 공원으로 가지 못하는 시민들이 일출을 보려고 모여드는 곳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정상에서 내려다 보니 안동과 청송, 멀리 영양과 일월산이 그리고 멀게는 영주 저 너머 소백산 줄기도 뿌옇게 눈에 들어옵니다. 안동을 둘러싸고 있는 안동호와 임동호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도 장관입니다. 

아기산의 남사면을 타고 내려오는 오솔길마다 진달래는 이미 지천이고 곱게 불어오는 산바람이 연신 저고리자락 같은 꽃잎을 간지르고 있었습니다. 봄바람에 동네 처녀들 바람난다는 것이 이런 동화같은 봄풍경과 몽환적인 기운 때문은 아닌가 하고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산행이 마무리가 되어가는데, 마지막 오솔길 끝자락에서 그 아름다운 미녀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무릎을 살포시 구부르기도 하고 펴기도 하면서 농익은 몸매를 과시

▲ 보는 각도에 따라 미녀목은 무릎을 살포시 구부르기도 하고 펴기도 하면서 농익은 몸매를 과시합니다.
사람이 물구나무를 서 있는 듯한 자세, 그러나 육감적으로 흐르는 엉덩이 선과 살짝 구부려 포즈를 취한 듯한 무릎까지, 완벽한 팔등신을 자랑하고 있는 그녀는 바로 '미녀목'이었습니다. 수령은 200년 가까이 되어 보이고 높이는 20m 정도로 꽤 큰 소나무인데 그 옆에는 미녀목(美如木)이라는 안내판까지 붙어 있습니다.

일행들은 이 미녀목 앞에서 처음부터 즐거워라 박장대소했습니다. "똑 같다 똑 같다"하면서 낄낄거리고 "어디 어디"하며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다른 등산객들은 거의 보이지 않은지라 우리끼리 큰 소리로 "이야~"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나이 사십이 훌쩍 넘은 사람들이 꼭 어린 고등학생들 같이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신기해서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살펴보니 점입가경입니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천상 아름다운 여체를 빼어닮았는데 그 자태가 다 달라 보입니다. 가지런히 무릅을 모으고 차렷자세로 서있기도 하고 옆으로 돌아가면 어느새 무릅을 살짝 세우며 멋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미녀'가 맞았습니다.

안내문에는 "등산객의 입과 입으로 아름다운(美) 여자와 같다(如)고 해서 특별히 고명된 것으로..."라면서 별다른 유래는 설명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 등산로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름을 지은 모양이었습니다. 아마도 아기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이 미녀목 앞에서 우리처럼 즐거워하고 한참을 쉬어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쉬엄쉬엄 2시간 가까이 산을 오르고 내리며 팍팍했던 다리도 가뿐해졌습니다. 미녀목을 감상하고 다시 처음 출발지점인 봉황사로 내려오는 동안에도 미녀목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발을 옮겼습니다. "늘그막에 바람날 뻔 했네"하면서. 참으로 유쾌한 주말 산행이었습니다. 

▲ 정상에서 '미녀목'까지 이어진 오솔길 옆으로 진달래가 지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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