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주민투표 운동은 또 하나의 축제”
“안동 주민투표 운동은 또 하나의 축제”
  • 허승규 (연세大 학생)
  • 승인 2015.09.24 1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투표 운동은 임란공원사업 반대를 넘어서서,
안동의 전반적인 정치문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
► 허승규 (연세大 학생)

지난 9월 16일 오전 10시 안동시청 브리핑실에서 임란역사문화공원사업반대 주민투표추진위원회(이하 임반추)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웃고을 영덕에서도 핵발전소 반대 주민투표가 추진되고 있다. 작년에 삼척에서도 핵발전소 반대 주민투표가 열렸고, 압도적인 반대로 지역민들의 의사가 드러나기도 하였다. 특히 삼척의 경우, 핵발전소에 대한 최초의 주민투표였다는 의의가 있다. 전국적 뉴스거리인 주민투표가 고향 안동에서 열린다니 흥미롭다.

임란역사문화공원 사업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주민투표 운동이 지니는 의의가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원리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가야할 길이 머나먼 북한조차도, 국호에 ‘민주주의’를 천명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구호로서의 민주주의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차별이 줄어들고, 자유와 평등이 증진되며,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이 참여의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개개인의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한다.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초래하지만, 민주주의에서 갈등은 엔진이다. 갈등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갈등을 인정하고, 그것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주의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벌어지는 공론장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모든 시민이 광장에 나가서 토론할 수 없다면, 자신을 대변할 결사체가 필요하다. 현대 민주 정치에서 정당이 그러한 기능을 담당한다. 어쩌다가 하는 ‘투표’ 행위만으로는 시민을 관객에 머물게 한다. 일상과 생활에서 시민들이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지방자치와 주민참여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론, 정당, 자치, 참여를 비롯한 여러 요소가 맞물려서 ‘민주주의’라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정치체제가 굴러간다.

그런데 안동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번 사안의 경우, 지역민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접할 수가 있었는가? 지역 언론이 고군분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은 사안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각종 소문들은 난무하지만, 제대로 된 공청회나 토론회를 비롯한 공적인 논의의 장을 접하기는 쉽지가 않다. 또한, 안동은 일당독점구조이다. 시의회는 새누리당 의원과 새누리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만 존재한다. 이번 사안에 대한 시의회의 찬반 구도는 새누리당이냐, 아니냐는 구도와는 다르지만, 지역 일당에 대한 경쟁 정당이 전무한 상태에서 제도권 내의 견제와 토론은 맥이 빠진다. 정치제도와 일반시민을 연결하는 매개가 정당의 역할인데, 안동 새누리당과 다른 정당이 정당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제1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1야당은 전국적으론 집안싸움에 매몰되었고, 안동에서는 싸움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공적인 의사 결정 구조가 취약하면, 갈등은 ‘공적’이 아닌 ‘사적’해결을 선호한다. 쉽게 말해서, 소수의 힘 있는 이들이, 공적인 과정을 우회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정당과 언론과 같은 공적인 기능이 취약하면, 문중과 같은 1차적인 연고 집단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임란공원뿐만 아닌 안동 지역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원리이기도 하다. 주요 선거에서도 정책과 비전에 대해서 입장이 나뉘기 보다는, 1차원적인 ‘성씨’에 따라 정치세력이 갈리고 경쟁을 한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지속되었을 경우에 대다수의 ‘잡성’들은 지역 사회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가 된다. 필자는 ‘허가’라는 이유만으로 안동에선 뭘 해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성씨’라는 요소가 개인의 꿈과 희망을 발목 잡는 사회는 현대는 물론, 근대 사회도 아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간판은 너무나도 역설적이지 않은가? 씨족 사회가 한국 정신문화의 표준인가? 한국은 삼국시대에 머물러 있단 말인가?

안동 주민투표 운동은 단순히 임란공원 사업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안동의 전반적인 정치문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지역 일당 독점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지역의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키는 운동이기도 하다. 무능한 제1야당 대신에 시민들이 들고 나선 것이다. 청년의 눈에서 바라보면, 대통령도 나서서 청년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 이전에 의구심이 드는 사업을 강행하는 집행부와 시의회에 답답함을 표한다.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 이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미덕을 잃어가는 유력 문중에 대한 지역 사회의 반발이다.

안동의 유림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서 싸웠다. 한국 독립 운동의 성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이름을 반성하는 ‘정명(正名)’운동이다.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유력 후보들도 주민 투표 운동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 해당 문중들은 당연히 지역 사회의 물음에 답변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작용은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논쟁을 통해서 지역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주민들이 ‘가문적 자존감’을 넘어서 ‘안동’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적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면, 이러한 논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안동 주민투표 운동은 또 하나의 축제이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과 추석이 다가온다. 추석 밥상에서, 탈춤 축제장에서 주민투표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조상님을 찾아도 안 되고, 후손들에게 뭐라고 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것은 문재인도, 박근혜도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다. 종편 방송을 볼 게 아니라, 안동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