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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경북인시론] 김희철 (경북인뉴스 편집위원)
2015년 11월 16일 (월) 13:15:21 김희철 kbadyks@gmail.com

   

♦ 김희철 (경북인뉴스 편집위원)

지난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확정 고시되었다. 그동안 까다롭고 복잡한 검사 항목을 통과해야 했던 학계에서는 지나친 정부 개입이라며 교과서 검인정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다른 선진국처럼 다양한 역사적 시각과 내용을 담을 수 있도록 완화할 것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국정화 발표는 학계나 일반 사회의 기대 수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조치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OECD 국가에서는 역사교과서를 정부가 주도하는 나라가 전무한 상황이며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기반이 극도로 열악하거나 특수한 상황에 있는 방글라데시나 캄보디아,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나 시행하는 제도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지난 3일 황교안 총리는 “전국 고등학교의 절대다수가 편향된 역사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다”고 발표했다. 즉 친일성향과 독재미화 등 역사 왜곡이 심각하다고 알려진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99.9%의 교과서는 좌편향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국가관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둘로 갈라져 ‘역사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었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 교수들은 교과서 ‘집필거부(執筆拒否)’를 선언하며 역사학자 99.9%를 빨갱이로 몰고 있다고 항의하고 거리에서는 연일 찬성과 반대로 나뉜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에서 올바른 역사관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수정하는 한편 민주화 과정은 저평가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과정에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비밀 TF팀을 운영하다 발각되는가 하면 여당에서는 잘못된 교과서로 북한의 주체사상을 가르친다고 홍보하다 급히 철수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또 국정화 교과서 집필진으로 거론된 인사가 성희롱사건으로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야당은 국정화 반대법안을 입법 예고하고 있어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가뜩이나 불경기로 힘들어 하는 국민들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역사’는 그만큼 어렵고 민감한 문제이다. 어떤 역사학자는 ‘저울의 중심과 같다’고도 하고 어떤 사학자는 ‘사실전달에서 벗어나 기술하는 사관의 관점이 어떠한가가 중요하다’고도 한다. 일제하에서 일본학자들에게 교육받은 국내 역사학자들은 해방 이후에도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절대시 해왔고 단재 신채호(조선상고사), 안동의 이원태(배달족강역형세도)나 동산 류인식(대동사)과 같은 분들은 민족사관(民族史觀)을 교육했다.

특히 1917년 어려운 시기에 저술된 류인식 선생의 ‘대동사(大東史)’는 총11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고대사를 망라하고 있어 잃어버린 민족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결국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고 균형된 시각과 사관의 관점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인데 쉬운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를 한쪽 눈으로 볼 것을 강요한다거나 권력으로 독점하려 든다면 무엇보다 다양성(多樣性)이 요구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역사는 문제점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흔히 우리는 조선사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한 왕조가 500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극히 드문 사례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럼 이처럼 오래도록 국가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며 오늘날과 같은 난제(難題)들을 선조들은 어떻게 풀어왔는지, 그 지혜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조선후기 관리들의 부패와 양반계급의 독점구조, 그리고 서인 노론들의 장기집권으로 백성들의 민란(民亂)이 끊이지 않는 등 내적 한계가 커져가고 서양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비하지 못함으로 인해 조선왕조는 무너졌으나 그나마 조선왕조가 5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중요한 점 몇 가지를 짚어보면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절묘한 조화를 들 수 있다.

위정자들의 폭정, 관리들의 부패, 외침 등은 왕조가 무너질 때 마다 나타나는 현상으로 꼽힌다. 조선왕조는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하여 왕권을 견제하였는데 그중 대표적 장치가 ‘사초(史草)’이다. 왕도(王道)를 망각한 임금이 나올지라도 역사만큼은 온전히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아울러 임금에게 ‘직언(直言)’을 담당하는 정언관(正言官)을 두게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백성의 말, 즉 ‘언로(言路)’를 막지 않았다. 지방의 선비들은 공론(公論)의 장에서 뜻을 모으고 그 뜻을 왕에게 상소(上疏)했다. 이것이 조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지난 1993년 10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조사단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검토하면서 대표적 왕조국가는 물론 세계 어느 곳에도 유래가 없는 역사서를 보게 되었고 그 우수함에 놀라워했다. 1392년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간 1,893권 888책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에도 놀랐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천문, 지리 등을 망라하고 있는데다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나아가 임금의 잘잘못과 신하의 어질고 그렇지 못한 내용, 현실정치의 선악을 사관(史官)의 눈으로 기록하고 있어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역사서를 한국의 선조들이 남겼다는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실록의 탄생은 절대왕권이라 하더라도 ‘역사(歷史)’만은 후대에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성군인 세종대왕도 선대 태종의 기록이 몹시 궁금하여 몇 차례 사초를 보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후대 왕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초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최고 권력자조차 초미의 관심사였던 ‘사초’는 연산군(燕山君)대에 이르러 수많은 선비들이 목숨을 잃는 피비린내 나는 사화(士禍)의 도화선(導火線)이 되었다. 무오(戊午)년(연산군 4년)에 점필재 김종직이 세조가 단종을 폐위한 불의를 항우(項羽)가 초(楚)나라 의제(義帝)를 폐한 것에 비유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쓰고 이것이 사초에 기록되었는데 훈구파 이극돈이 이를 밀고하면서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시작되었다. 폭군으로 변한 연산군은 무오사화에 이어 폐비윤씨의 복위문제로 또 한번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킨다. 안동의 농암 이현보 선생은 갑자사화 당시 정언관으로 연산군의 부도덕함을 직언했다가 귀향길에 오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퇴계 이황 선생의 처조부였던 화산 권주 선생은 결국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는 참화를 겪어야 했다.

수많은 선비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폭군 연산군이 남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人君所畏者, 史而已)”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정8,9품 하급직 사관이 기록한 ‘역사’가 두려웠던 연산군, 그는 사관의 목숨은 거둘 수는 있었으나 그들이 기록한 ‘역사’는 지우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실록에 그 기초자료를 제공했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함께 인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자칫 역사를 기록하는 제도를 독점하고 내용을 권력의 눈과 잣대로 규정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나의 생각은 올바른 역사관이고 나와 다른 생각은 그릇된 역사관이라고 여기는 편협(偏狹)된 사고는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는 현재 국민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삶을 자유로이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위정자들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선조들의 역사의식을 통해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의 입을 막으려 들거나 사관의 눈을 규정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는 역사학자들의 학문적 영역으로 남겨야 하며 더욱이 국가 리더는 이러한 국민들의 직언(直言)을 가볍게 듣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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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로
(220.XXX.XXX.30)
2015-11-17 12:06:01
최고의 글 감사합니다.
왜놈들이 조선역사를 폄훼하고 잇지만, 조선이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죠. 최고의 글 감사합니다.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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