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향기가 아직도 그리운가'
'피의 향기가 아직도 그리운가'
  • 경북인
  • 승인 2010.07.02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설> 전쟁발발 60해를 맞는 대한민국

동족상잔(同族相殘) 오욕의 역사가 60해를 지나고 있다. 기나긴 일제 피압박의 수치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무장항일투쟁의 처절한 끈을 놓지 않았던 우리의 의지가 얽혀 해방의 역사를 새로 썼고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희망으로 들떴던 그 시절, 그러나 새벽은 길지 않았다.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희망은 폐허가 되어 버렸다.

미국이든 소련이든 어느 한 진영에 줄서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기에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건국(建國) 절차를 밟았고 세계지배의 강대국 논리는 한반도의 허리에 아물지 않을 38선을 선혈이 낭자하도록 잔인하게 그어 버렸다. 그리고 4.3제주항쟁과 여순병란(兵亂)으로 이어지며 백두대간을 피로 물들인 전쟁은 시작되었고 결국 240만의 억울한 죽음을 잉태한 6.25로 이어졌다.

전쟁 60주년을 맞아 각종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전쟁기념비와 추모탑이 있는 곳이면 전사자들을 추모하고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모였다.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적 행사에서 참전군인 단체의 행사까지 그리고 각급학교와 시민사회단체의 행사도 마련됐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처참한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토대가 되는 일이며 다음 세대에게는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알려 전쟁의 재발을 막아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우리들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TV와 아침이면 담을 넘는 신문들의 구성이 이상하다. 동족상잔의 아픈 역사를 피아(彼我)로만 규정하고 일방적 역사판단으로 끌고 가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한국전쟁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가위질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남과 북에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부터 벌여온 민족사적 가치판단의 문제고 운명결정을 위한 대립이었기에 과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정의는 적용될 수 없다. 모두가 아픈 전쟁이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지원한 많은 안타까운 희생을 기리고 추모함은 당연하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포화 속으로’도 이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어딘지 느낌이 다르다.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이 전하려는 민족적 휴머니즘과 역사적 고민의 부재가 읽힌다. 똑 같이 6.25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받는 메시지는 너무도 판이하다. 아픔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영화가 주는 씁쓸한 뉘앙스지만 그냥 넘기기엔 목에 걸리는 대목이다.

지난 25일, 언론이 전하는 임진각 풍경은 서글프기만 하다. 보수우파 단체인 국민행동본부와 몇몇 탈북자 단체들이 모여 대북전단을 날렸다. 가스풍선에는 ‘6.15연방제 폭침시키자’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이들은 이날 날린 전단을 ‘북을 향한 공중어뢰’, ‘민간이 행하는 북침통일’이라 자랑스럽게 규정했다고 한다. 임진각은 통일의 염원을 상징하는 곳이다. 누각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경의선 입간판이 걸려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이다.

6.25전쟁 60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치명적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쌍방이 수백만의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유엔군의 주력으로 개입한 미군 희생자도 5만을 넘었다고 한다. 안타깝고 가슴 미어지는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짚어야 할 부분이 또 있다. 전쟁 60주년을 맞아 학도병 이야기에 묻히고 천안함사건에 우익단체들의 삐라뿌리기에 묻히고 또 월드컵에 묻혔지만 지울 수없는 역사가 있다.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그것이다.

제주4.3 양민학살,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처럼 어느 정도 진실이 알려진 경우도 있지만 수많은 억울하고 처참한 죽음의 역사는 아직도 음습한 땅 속에 묻혀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가까운 우리 경북지역만 하더라도 경산코발트광산, 문경 석달동, 예천 산상리 등 슬픈 역사가 지천이다. 수감자였다는 이유로, 자의든 타의든 보도연맹에 가입되었다는 이유로 또는 입산한 이들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로 처참하게 살해된 수천의 주검들은 우리의 아픈 6.25전쟁사와는 무관한 것인가.

공교롭게도 전쟁 60주년이 된 이달 말이면 이들 사건의 진상규명과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하던 ‘진실ㆍ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그 활동을 마친다. 더 이상의 연장활동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 이 정부의 판단으로 보인다. 유해발굴이 진행되던 광산 동굴과 이름 없는 산귀퉁이에는 또 다시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침묵의 세월이 진행될 것이다. 유족과 목격자들의 몸은 또 늙고 세월을 이기지 못해 이 악물고 눈을 감게 될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16강을 달성했다. 경기가 시작된 이래 비가 오는 날에도 야심한 새벽시간에도 붉은 티셔츠를 입은 국민들이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응원을 펼쳤다. 그들의 붉은악마 유니폼에는 ‘Be the Reds'라고 적혀있다. 이쯤이면 우리 젊은이들은 냉전적 레드컴플렉스 정도는 극복했다고 할 수도 있을 법하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든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백발의 전쟁세대들도 별다른 반대가 없는 것을 보면 또한 재미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성숙해져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성숙한 모습을 일찍이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소아적 전쟁놀이에 광분하고 있는 집단이 남아있는 듯하다. 해방 이후 시작해 전쟁을 겪으며 우후죽순으로 자라난 전쟁의 광기, 이념도 철학도 아닌 피비린내에 반응하는 상어떼와 같은 광기를 이제는 접어야 한다. 가스통을 지고 모형권총을 옆구리에 차고 성조기를 휘날리며 전시작전권환수 반대, 전쟁불사를 외치는 모습은 흑백 다규멘터리영화가 아닌 고화질 천연색 TV에서는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