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탐방 ‘같이 가볼까’ ⑨- 합시다! 러브, 묵계에서
문화공간탐방 ‘같이 가볼까’ ⑨- 합시다! 러브, 묵계에서
  • 신준영(이육사문학관 사무차장)
  • 승인 2021.06.02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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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오리라 믿어요.

그땐 우리 저 다리 위에서 손잡아요.

어디로 가려고도

오려고도 말고

오래 멈춰 서서 늙은 감나무,

환한 감이나 마냥 올려다보아요.

만휴정(ⓒ백소애) 

만휴정

만휴정 외다리 앞에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다리 위에 선 사람은 혼자이거나 둘,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 모습을 정자 뒤 늙은 감나무가 머리에 붉은 감 몇 개를 등불처럼 매달고 조용히 밝히고 있다.

만휴정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김태리와 이병헌이 주연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최근에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한적하던 마을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었고 대형 관광버스가 좁은 다리로 연결된 하천을 건너와 사람들을 한 차례씩 부려놓기도 한다.

얼음은 얼었고 첫눈이 아직 오시지 않은 12월 하루,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를 찾았다. 만휴정과 묵계서원, 묵계종택을 오가며 짧은 겨울 햇살에 그간 가둬두었던 몸을 내어놓기로 한 날이었다. 만휴정 입구 주차장에 세워진 곰 모양 안내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기본·실천·배려’라는 글귀가 적힌 마스크를 쓴 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고 있었다. “마카다 마스크 했니껴?” 마스크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무거워지는 마음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마을 주민이 어디서 왔냐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만휴정에 대한 자부심과 묵계서원 뒷산이 알을 품은 닭의 모양인 금계포란형의 풍수인 것을 거듭 강조했다. 만휴정이 유명세를 타서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불편함은 없냐고 물었더니 불편하기는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적하던 마을에 사람들 발길이 잦아지는 건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 산길을 조금 오르면 산곡 사이에 웅장한 계곡이 있고 넓은 반석 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만난다. 이곳에 동남향으로 만휴정이 자리 잡고 있다. 만휴정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위치한 정자로 1986년에 경북 문화재자료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문신, 보백당 김계행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별장으로 폭포와 계류, 산림경관 등이 조화를 이루는 명승지로 유명하다.

김계행은 30대 젊은 시절부터 길안 묵계의 풍광에 심취하였는데, 71세 되던 해 송암松巖의 폭포 위에 “만년에 휴식을 취하다.”는 뜻으로 만휴정晩休亭이라 이름 짓고 벼슬에서 완전히 물러난 후에는 은거하면서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았다고 한다.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정면은 3칸, 측면은 2칸이다. 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는데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모습이 변형되어 일부만 조선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근간에는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는데 영화 미인도(2008)와 사도(2014), 드라마 공주의 남자(2011), 조선총잡이(2014), 왕은 사랑한다(2017), 미스터 션샤인(2018) 등이 만휴정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얼음 속으로 흐르는 폭포수 소리를 뒤로 하고 만휴정에서 내려와 강 건너 언덕에 자리한 묵계서원으로 향했다. 안내 표지판을 따라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서낭당숲길을 오르면 묵계서원에 이른다. 일전에 묵계서원 읍청루를 무대로 음악회가 열려 다녀온 적이 있었다.

 

묵계서원

묵계서원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선생과 응계凝溪 옥고玉沽 선생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조선 숙종 13년(1687)에 창건되었다.

보백당 선생은 조선 초기 성종 때 부제학을 지낸 명신이며 응계 선생은 세종 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바 있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훼철되기 전의 경내 건물로는 청덕사, 강당인 입교당을 비롯하여 극기재·읍청루 ·진덕문·신문·주사 등이 있었다. 고종 6년(1869) 사당은 없어지고 강당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1925년 도내 유림이 협력하여 강당 등 일부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해 왔다. 1988년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와 진덕문, 동재 건물 등을 복원하였으나 주사는 서원이 훼철될 때 헐리지 않고 남은 것이다. 묵계서원은 안동김씨 묵계종택과 함께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차한잔 묵계'

묵계서원 주사 건물 앞에는 ‘차한잔 묵계’라는 입간판을 세운 ‘카페 만휴정’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묘하게 어우러진 찻집이었다. 주사는 서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던 곳으로 묵계서원 왼쪽에 위치해 있다. ‘ㅁ’자형 건물로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는 대청마루가, 좌우에는 마루와 광 마루방, 방 등이 연결되어 있다. 12월 한낮의 햇볕이 난로보다 따뜻한 남문 앞 아궁이가 있던 자리에 앉아 오래 차를 마셨다. 서원 마당의 키 큰 모과나무도 만휴정 늙은 감나무처럼 오래 되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직 남은 몇 개의 모과들이 짧은 겨울 햇살 아래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겨울 한낮에는 다글다글한 햇살에

나를 내어놓고 구울 것, 은근히 졸일 것

지글지글 자글자글을 지나 다 버리고

조용히 가벼워질 것

하얗게 내려앉을 것

묵계종택(ⓒ백소애) 

묵계종택

안동김씨 묵계종택은 묵계서원에서 멀지 않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종택은 강 건너 상리에 있었으나, 화재로 전소되고 잠시 고난리로 우거하였다가 1700년대에 현재의 곳으로 옮겼으며, 한국전쟁으로 일부가 소실되어 전란 후에 현재의 건물로 복원되었다. 묵계종택은 정침과 사랑채인 보백당,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6칸의 ㅁ자형으로 돌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사랑채에는 용계당龍溪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백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두리기둥을 사용하였고, 우물마루를 깐 4칸 대청과 2칸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백당이란 현판은 김계행 선생의 자호로 평소 선생께서 생활철학이 담긴 시구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우리집에는 보물이란 없으니, 보물이 있다면 오직 청백뿐이다”에서 취한 것이라 한다.

그 옆에는 1909년 보백당 선생의 부조전不祧典의 칙령을 받고, 지역 유림과 자손들에 의하여 세워진 불천위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묵계종택은 묵계서원과 함께 1980년 지방 민속자료 제1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만휴정과 묵계서원, 묵계종택은 현재 경북미래문화재단에서 위탁 받아 고택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고 현장운영과 관리는 놀몸문화연구소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성업 중이다. 고택 숙박, 천연염색, 한지 등불을 들고 하는 산책을 비롯해 한옥놀이터와 의상 대여 등의 체험이 가능하다.

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 적힌 문구가 유난히 반짝였다. 카페 만휴정에서 ‘차 한잔 묵계’, 묵계종택에서 ‘하룻밤 묵계’ 옛것과 새것이 묘하게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곳, 이만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말해 볼까 싶다.

“합시다 러브, 묵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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