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안동-말똥굴레꽃을 아시나요_안동 사투리와 문학
문학 속 안동-말똥굴레꽃을 아시나요_안동 사투리와 문학
  • 안상학(시인)
  • 승인 2021.06.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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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굴레꽃(ⓒ안상학)

코로나19로 여럿이 어울리는 자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5인 이하 모임 가능’은 여러 가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자주 만나 술잔 기울이던 사람들조차 얼굴을 잊을 지경이다. 최근 가까운 동네에 있는 어느 태권도장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최악으로 급변했다. 그 동네에 적을 두고 있는 친한 형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이 동네는 어디 코 내밀 데도 읎네. 코로나 구데이야. 조용해지거든 두부 몇 모 끊어서 막걸리 해 짊어지고 함 찾아갈끄마.”

구데이, 안부 전화했다가 얻어들은 안동 사투리 한 마디가 하루 종일 입속에 맴돌았다. 사람에 따라서는 구디이라고도 하는 구데이는 구덩이를 말한다. 겨울이 오면 무며 배추를 저장하기 위해 구덩이를 판다. 무구덩이에는 무가 꽉 들어찬다. 무꾸구데이다. 배추구덩이에는 배추가 그득하다. 배추구데이다. 그 구데이는 생활 속에서 특정한 곳에 특정한 것이 가득, 그득, 빼곡 차있거나 넘치는 형상을 말하는 관용어로도 쓰인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구데이. 덕분에 이 글을 시작하는 글감을 찾은 셈이다.

구데이의 주인공은 마침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할 글을 쓴 이의 아버지다. 글쓴이는 그의 맏딸이다. 번역문학가 권가람. 그는 최근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 소설가 자우메 카브레의 『나는 고백한다』(민음사, 2020)를 번역, 출간했다. 세 권짜리다.

이 책은 인간의 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이다. 중세 스페인 종교 재판, 홀로코스트를 넘나들며 히틀러, 프랑코 등의 인물을 통해 악의 본질을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 자신도 스페인의 소수민족인 카탈루냐 사람이다. 공용어인 스페인어로 쓰지 않고 카탈루냐어로 썼다. 권가람은 국내 유일의 카탈루냐어 번역가다. 영문판이나 스페인어판을 중역하지 않고 카탈루냐어를 직접 번역했다. 언어 고유의 정서를 그대로 번역하고 싶은 의욕의 결과물이다. 그는 작품 해설에서 언어에 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팔루바 신부는 인간은 국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서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곧 한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란 단순한 음성적 정보가 아닌 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이며 하나의 세계라고 말하는 카브레의 언어적 태도와 맞닿아 있다. (같은 책, 3권 400쪽)

스페인 안에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카탈루냐의 일원으로 카탈루냐 언어를 쓰며 살아가는 작가의 언어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보다도 언어가 삶의 근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카탈루냐 민족의 정체성은 언어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나는 안동 사투리를 쓰는 안동 사람이다. 안동 사투리는 현실 생활 속에서 많이 사라졌다. 나는 안동 사람끼리 만날 때는 의식적으로 안동 사투리를 구사하려고 노력한다. 또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안동 사투리가 자연스럽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쓸 때면 사투리가 제격이라는 생각을 한다. 정서 속에 녹아있는 언어로 써야 제맛이 난다.

말똥굴레꽃을 아는가. 경북 청송 사람 이오덕은 “민들레꽃을 경북 지방에서는 말똥굴레꽃이라고 하는데, 말똥굴레가 봄이 와서 말똥, 소똥을 열심히 뭉쳐 굴리고 있는 길가에서 피는 꽃이니 얼마나 잘 어울리는 이름인가.”(『우리글 바로쓰기 1』(한길사, 2007, 273쪽)라고 예

찬한 바 있다. 그의 절친한 문우인 작가 권정생은 소설 『한티재 하늘』(지식산업사, 1998)에서 봄 풍경을 묘사할 때 말똥굴레꽃을 자주 등장시켰다.

길섶으로는 냉이꽃과 말똥굴레가 피고 산자락으로는 이밥꽃과 아그배꽃이 피었다.(1권 54쪽)

길퍼덕에 말똥굴레가 배싯배싯 피었고, 발에 땀이 나서 어벅다리 짚신이 자꾸 벗겨졌다.(1권 180쪽)

거렁뚝으로 노란 말똥굴레가 몽실몽실 피어나고 논뚝가에 장다리 꽃이 핀다.(2권 11쪽)

오렛도레에 말똥굴레가 피고 나생이꽃이 피도록 장득이한텐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2권 117쪽)

말똥굴레꽃은 말똥, 소똥들이 고샅길에 똥바가지별[북두칠성]처럼 찍혀 있고, 말똥굴레[소똥구리]가 열심히 경단을 굴리고 있는 곁자리에 피는 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에서도 쓰는 말이다. 권정생은 이 소설에서 작심하고 안동 사투리를 유감없이 그려냈다. 대사뿐만 아니라 지문에서도 대놓고 썼다. 안동 사투리의 보고다. 어림잡아 6,000 어휘가 들어차 있다.

 

이 소설에는 구수한 안동 사투리로 하는 옛날이야기 한 대목이 나온다. 똥바가지별 이야기다. 옛날에 짚신쟁이 할바이하고 수꾸떡장사 할머이가 살았그덩. 할바이는 짚신을 삼아 팔고 할마이는 수꾸떡 맨들어 팔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살았제. 할방네한테는 아들이 일곱이 있었는데 모두 모두 사이좋게 살았제. 그런데 어는게 여름에 억수비가 쏟아져가주 온 시상이 물바다 다가 돼뿌랬그덩. 할방네 식구들은 큰물에 막카 둥둥 떠내려가 가주 산지사방 흩어졌제. 비가 근치고 물이 줄어들어 보니까 짚신쟁이 할바이는 강건너 동짝에 있고 수꾸떡장사 할마이는 강물 서쪽에 있었제. 그래, 할바이가 강물을 건너 할마이한테 갈라카이 물이 너무 깊어 건네가지 못했그덩. 그래서 아들 일곱이 똥바가지로 강물을 퍼낼라꼬 밤이나 낮이나 쉴 틈 없이 물을 퍼도 그게 어디 가당치도 않제. 그르다가 그르다가 할방네는 모두 죽어 하늘에 올라갔거든. 아들 일곱은 똥바가지가 되어 안죽도 강물을 퍼내고 할바이하고 할마이는 그냥 동쪽으로 서쪽으로 헤어져 산단다. 그래서 하늘에 옥황상제님이 하도 불쌍해 까막까치한테 칠석날 밤에 다리를 놓아 주게 했제. 요새도 칠석날만 되마 까막까치들이 강물에 다리를 놓아 주고 할바이하고 할마이는 일 년 동안 부지런히 짚신 삼고 수꾸떡 맨들어 기다리다가 그날 하리만 만낸단다.(2권 131~2쪽)

짚신쟁이 할바이와와 수꾸떡장사 할머이가 물난리를 만나 강 이쪽저쪽 헤어지게 된다. 아들 일곱 형제가 똥바가지로 물을 퍼내보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가족이 다죽어 하늘로 간다. 거기서도 할바이와 할머이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각자 생업에 힘쓰며 서로를 그리워한다. 아들 일곱 형제는 똥바가지별이 되어 부지런히 은하수 물을 퍼내고 있다. 감동한 옥황상제가 선심 쓰듯이 칠석날 하루만 까막까치 다리를 놓아준다는 이야기다. 견우직녀 이야기가 황혼로맨스로 바뀌었지만 해학과 구수한 사투리가 제맛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숱한 생이별과 잘 어우러져 감동을 자아내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권정생은 사투리를 문학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다. 그런 그도 등단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에서는 사투리를 피했다. 그의 등단작이자 출세작인 「강아지똥」을 표준말로 쓸 수밖에 없었다. 말똥굴레꽃이 아니고 민들레꽃이다. ‘강아지 똥’ 속에서 핀 민들레꽃을 그는 얼마나 말똥굴레꽃이라고 하고 싶었을까. 『몽실 언니』도 사투리로 집필을 시작했으나 결국 표준말로 고쳐 쓸 수밖에 없는 굴욕을 당했다. 사투리를 제거하던 무식한 시대가 문학에 드리운 상처다. 생전에 나는 권정생에게 『몽실 언니』의 사투리 본을 권한 적이 있었다. 다 늦은 이야기다. 『한티재 하늘』은 그의 한풀이였던 셈이다.

 

이육사 시인의 작품에도 안동 사투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시 「초가」의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간/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소리에 반해/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술래 짠 두 위에 모메꽃이 피었”다는 부분이다. 봄기운에 마음이 빼앗긴 처녀들의 홍조 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술래 짠’은 술래놀이 할 때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동작을 부끄러울 때 얼굴을 가리는 동작에 비유한 것이고, ‘모메꽃’은 메꽃의 안동 사투리다. 연분홍색이다. 메꽃을 꺾어든 손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일 수도 있고, 홍조 띤 두 뺨의 색깔에서 메꽃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이다.

언젠가 이육사의 산문 「청란몽」을 읽다가 빙그레 웃음지은 일이 있다. “뜰 앞에는 조롱들 속에서 빛깔 다른 새들이 시스마금 낯 설은 손님을 마저 알은체를”를 한다는 문장의 ‘시스마금’이라는 낱말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너무도 익숙하게 써온 사투리다. 마치 친숙한 이웃집 아저씨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운 감정과, 같은 안동사람이라는 묘한 유대감을 느꼈다. ‘시스마금’은 ‘시시마꿈’으로도 발음하며 ‘제각각’이라는 뜻이다. 비슷한 말로는 ‘삐삔내로’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 쓰기도 하는데 주로 ‘뿔뿔이’라는 뜻에 가까울 때 쓴다.

 

사투리 한 마디가 강력하게 다가온 시는 경주 사람 박목월 시인의 ‘뭐락카노’다. ‘뭐라고 말하나’라는 뜻의 사투리다. 아우와 사별하면서 슬픔의 모든 언어를 이 한마디에 녹여냈다. 믿을 수 없는 슬픔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체념이 버무려진 절절한 시어다. 아우와 평소 대화하던 방식 그대로 끌어들인 정서의 현장 언어다. 이 한 마디가 시를 열고 닫는다. 강렬하다.

뭍에 나와 사는 제주 친구들을 보면서 사투리의 생명력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들은 평소 대화를 표준말로 한다. 그러다가 고향 사람과 전화를 할 때면 당장 제주사투리 모드로 급전환한다. 삶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고향, 고향 사람을 시로 쓸 때 어찌 정서적 언어를 얹지 않을 수 있겠는가. 표준말에 눈치 볼 일 없다. 내 시에 안동 사투리를 시어로 쓰기 시작한 것은 백석도 백석이지만 권정생의 영향이 크다. 『한티재 하늘』을 읽고부터다. 졸시 「아배 생각」에서 아버지와 주고받는 대사는 다 안동 사투리로 썼다. 아배, 어매, 할배, 할매도 어려서 쓰던 말이다. 삶의 언어를 시에 못 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

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 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 「아배 생각」, 『아배 생각』(애지, 2008, 18쪽), 전문

 

우리 아배는 입담이 좋기로 유명했다. 흥이 넘치는 노래도 수준급이었으며, 온몸으로 갖가지 악기소리도 곧잘 냈다. 어떤 좌중이라도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가히 추종을 불허했다. 마을에서는 여름 추수, 가을 추수가 끝나면 관광버스 대절해서 놀러간다. 그런데 우리 아배가 사정이 생겨서 불참하면 행사 자체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만다. 마을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안씨 없으믄 무슨 재미로 노노”하며 장탄식이 늘어진다. 나는 아배로부터 직접화법을 쓰는 꾸지람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시에서처럼 늘 우회적으로 나무란다. 듣는 사람이 알아서 듣고 알아서 해석해야 한다.

이 시의 아배는 아들과 같이 지내고 싶은 심정을 은근슬쩍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 이 시의 대화는 있는 그대로를 옮겨 쓴 것이다. 다만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만 고쳐 쓴 것이다. 원래는 “그케, 내 말이 그 말이따”였는데 아무리 봐도 독자들이 문맥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 같아서 변형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대로 쓸 걸 그랬나싶다.

 

어려서 형성된 정서는 변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려서 쓰던 말이어야 그 정서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아배, 아부지, 하고 부르다가 아빠, 아버지, 아버님이라고 고쳐 불러야 할 때 드는 그 낭패감이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나는 아직도 누나야, 하고 부를 때 여간만 어색한 것이 아니다. 누야, 누부야, 하고 부를 때 제맛이 난다. 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낸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에는 안동 사투리를 살린 시 「안동식혜」, 「간고등어」, 「안동 헛제삿밥」 등 세편이 실려 있다. 주로 음식 시다. 어려서 먹던 음식과 또 함께 떠오르는 사람을 풀어내는 데는 그때 썼던 언어가 제격이 아니겠는가. 안 쓸 일이 없다.

일찍이 어매 없이 자란 나는 당연히 우리 집 식혜 맛을 알지 못해서 어쩌다 고것이 땡기는 겨울날이면 내 그리움은 구름재 너머 맏어매 집을 기웃거리곤 하는데, 그 어느 맵찬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러 큰집 가는 길에도 여느차례 음식보다 먼저 떠오르곤 하던 식혜

차례 음식상 물리고 나면 한 보시기 담겨 나오던 고것, 살얼음 사각대는 맑고 발그레 싹싹한, 생강과 고춧가루와 엿지름을 한데 훌 버무려 걸러 짜낸 물에 뽀얀 찹쌀과 노리끼리한 차좁쌀로 쪄낸 밥알 사이사이 깍둑썰기를 한 무꾸 조각들이 서성이는, 그 위에 채를 친 밤과 땅콩 몇낱 고명으로 올린, 고소, 시원, 달콤, 매콤, 얼콤한 그 맛은 대개 부뚜막 외진 곳이나 뒤란 축뚜막 위에서 얼거니 녹거니 하며 종래에는 새콤한 맛까지 드는 것으로 설날부터 보름까지 날매동 다른 맛의 깊이를 더해 갔는데, 세배 다니는 집집매동 맛도 생김새도 하나같이 달랐는데 세월은 턱없이 흘러 겨울을 건너는 중 어쩌다 낯선 타관을 떠돌거나, 고향에 있어도 쓸쓸하고 차가운 밤이면 문득 떠오르곤 하는데, 기중 생각나기로는 구름재 너머 맏어매 집 부뚜막이나 뒤란 축뚜막에 자리 잡은 것으로, 마음은 벌써 달큰한 항아리 곁을 어리대곤 하는데, 그래도고것과 같이 떠오르는 손맛의 주인이 어매가 아니고 맏어매여서 다행한 일이라고 골백번 생각하며 그리움을 제우 달래나 보는 것인데, 고것 참.

‒ 「안동 식혜」,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 걷는사람, 2020, 22~3쪽), 전문

 

붉으죽죽한 안동 식혜는 낯선 사람들에겐 우선 보기에도 꺼림칙하다. 특히 호남 사람들의 평은 가혹할 정도다. 음식 찌꺼기가 담긴 잔반통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김치찌개와 막걸리를 먹은 토사물 같다고도 했다. 안동 사람들에겐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인데 말이다. 이렇듯 음식은 정서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대뜸 낯선 음식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안동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음식도 잘 없다. 안동 사투리도 마찬가지다. 안동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정겨운 말은 없는 것이다.

내면화된 정서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어찌 시 속에 음식과 사투리와 사람을 버무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어는 그 세계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무기다.

몽골말똥굴레(ⓒ안상학)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말똥굴레꽃」이라는 한 편의 시를 아래와 같이 따로 썼다. 말똥굴레와 말똥굴레꽃과 똥바가지별을 한데 훌 버무려 쓴 것이다. 안동 사투리는 앞으로도 내 시에 하나하나 호출해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할 숙제요 의무요 숙명이다.

지나간 시절의 어느 흔한 봄날

소똥 말똥들이 똥바가지별처럼 찍혀 있는 고샅길에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치 태양을 굴리는 듯

소똥 말똥 경단을 굴리는 말똥굴레들이 있었다

그 곁에는 어김없이 흰, 흰노랑으로 피어 있던 말똥굴레꽃

지금은 소똥도 말똥도 말똥굴레도 사라진 고샅길

권정생은 사투리를 문학 속에 그려내야 한다는 게 지론

이었지만, 결국 등단작 「강아지똥」을 쓸 때도 말똥굴레꽃

은 못 쓰고 민들레꽃이라고 썼고, 사투리로 쓰던 『몽실

언니』도 외압에 못 이겨 중도에 결국 표준말로 고쳐 쓸

수밖에 없는 굴욕을 당했다. 그 뒤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작심하고 소설 『한티재 하늘』에선 사투리를 천지빽까리

로 썼다. 말똥굴레꽃은 봄날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네 군

데나 나온다. 반분은 푼 셈이다.

말똥굴레야 말똥굴레꽃아

말똥굴레꽃아 말똥굴레야

몇 해 전 국립생태원은 몽골 고비에서 말똥굴레 수백 마

리를 수입하여 경북 영양에 있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곤

충사육장에서 길렀다. 증식한 후 맞춤한 서식지에 투입

하여 복원할 계획이었다는데, 그 새끼의 새끼의 새끼들

은 어느 봄날, 어느 고샅길에서 말똥굴레꽃 응원을 받으

며 태양을 굴리고 있을까

올 봄에도 말똥굴레꽃은 지천으로 피어날 것이다

좋아하는 말똥도 소똥도 말똥굴레도 없이

심심하기 짝이 없는, 개심심한 봄날을 살아갈 것이다

이름이 무색하게도 살다갈 것이다

말똥굴레도 말똥굴레꽃이라는 이름도 사라진 고샅길에서

민들레야, 민들레야, 귀에 따다구가 앉도록 듣다가는

홀연 훨훨 홀홀 자리를 뜰 것이다 날아갈 것이다

 

올봄에도 민들레꽃, 아니, 말똥굴레꽃은 지천으로 피어날 것이다. 하지만 말똥굴레꽃은 이제 심심하기 짝이없게 피었다 지는 신세가 되었다. 좋아하는 말똥, 소똥도 이젠 없고, 또 같이 놀던 말똥굴레도 멸종되어서 무슨 재미로 말똥굴레라는 이름을 달고 사나. 경북 영양 어디에서는 몽골에서 수입한 말똥굴레를 이 땅에 복원하려고 사람이나 곤충이나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데, 또 하나의 멸종위기 종인 사투리를 대하는 마음만 같아서 안쓰럽기 짝이 없는 시절이다.

문학, 특히 시에 있어서 지역성은 언어다. 어려서 쓰던 사투리에는 지역정서와 습속,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것이 사투리로 시를 써야하는 까닭이다.

 

* 이 기사는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계간지 『기록창고』 10호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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