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쫄쫄 빨아라, 비디오 갖다댄다”
“야야. 쫄쫄 빨아라, 비디오 갖다댄다”
  • 배오직 기자
  • 승인 2010.12.23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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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읍 서미리’ 길쌈하는 마을

 

 

삼 삼고. 베 날고. 베 매고. 베 짜고... 사람이 흙에서 기운을 얻어 흙 파먹고 살다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 육신과 한 몸 되어 관속에서 나명들명 내외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베옷. 그 매섭다던 겨울 풍산들 바람이 구제역으로 무색해 지던 지난 16일 오후, 구석티기 골, 「풍산읍 서미리」 베 짜는 마을을 찾았다. 서미리 마을 이장 우하석(67) 어르신 댁.

 

푸세먹인 명베옷 입고 긴긴 겨울밤, 들개방엔 넉넉한 제사음식
“옛 어른들이 그데요. 집안에서 베 짜는 소리, 글 읽는 소리가 들리면 그 집안은 흥한다고. 그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닐낍니다. 우리 자슥들은 가방끈이 질지는 안 해도 서울가 잘 살고 내도 이제꺼정 탈 없이 베짜는 거 보면”


모시밭(苧田) 근처 이송천에서 40년 전 이곳 서미리 우씨 가문으로 시집와 지금껏 베 짜는 일에 일신해 온 이장 댁 안주인 (이)‘송천댁’ 김순희(62) 할매가 야물딱지게 반겨 맞았다. 중국산 삼베하고 차이를 묻자 곧 방언이 터졌다.
“까시렁하고 노르스름한 것이 찰기가 잘 나고 그쪽 꺼는 히죽주그리한 것이 거뭇한 점도 있고 여대면(여기) 삼도 아이죠”


노력에 비해 값이 너무 없어 베 짜는 젊은 아낙들이 없는 판에 중국산 삼베가 포의 고장인 안동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쪽 나라 물건이 모두 안 좋기는 할리껴. 우리도 어쩌다보면 불량스러운게 나오기는 하지. 근데 우리는 껍데기 하나는 지대로 빼끼지. 그래야 보드라운 옷이 나오거든”

 

설명에 의하면 중국산 베를 ‘무삼’이라고 하는데 옷감의 양을 늘리기 위해 삼을 째기 전 껍질을 얇게 해야 하는데도 제대로 벗기지 않고 화학섬유도 많이 섞여 질이 안 좋은 옷감이라고 했다.
옆집 사는 동네 막둥이 권정옥(58) 여사가 어물쩍 한 마디 던진다.

“아랫마을 우리 시누가 시조부 돌아가시고 나서 묘를 썼는데 그 후로 자슥들이 잘 안되드라고. 그래서 어른들의 권유로 이장을 했지. 수의는 좋은 걸 했는데 터가 안 좋았던지 시신이 고대로 더라고. (이장)그 후로 문제 없드라고. 중국산 수의를 하면 시신은 썩어도 나중에 보면 중간 중간에 줄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나이론 줄이야”

중국산 삼베의 질이 안 좋다는 것을 설명하기위해 돌아가신 할배를 슬쩍 언급한다. 나도 그렇지만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돌아가신 분의 실 사례가 최고다.


“예전엔 들개방에서 두런히 모여 앉아 북(고무신 크기의 베 짜는 나무틀)안에다(넣을) 꾸리(실타래)를 틀다 뱃가죽이 얇아지면(배가 고프면) 동네로 마실 나가 제사지내는 집 제삿밥 얻어와 멍석, 소쿠리, 영개(이엉)짜던 눈치 없는 남정네들은 빼고 우리들끼리 맛나게 무써요(먹었어요)”

안동댐 까치구멍집에 헛젯밥이 있다면 서미리에는 길쌈 젯밥이 있을 법 하다.

“옷감이 없으이 여름에는 푸세(풀먹임) 잘한 베를 입고 겨울개는 머구(벌레) 먹은 삼베에다 맹베(목화) 덧빵 입힌 옷으로 겨울 났니더”
아! 어렵다. 온통 알아듣기 거시기한 할매들의 전문용어 사용으로 그 단어의 뜻을 물어 확인하는데 솔찮허니 걸린다.
“베 좀 어지간히 짜소. 눈도 안 좋은데”

“할매요, 있니껴. 여 안동에서 베 짜는 거 찍을라꼬 손님왔니더” 마침 마당으로 할아버지 한분이 나오셨다. 구제역 때문인지 낯선 이의 방문에 잔뜩 경계심을 보이셨다.
“없니더. 아까 읍내 나갔니더.” 그런데 바로 이어 방 안에서 “누구이껴” 하는 할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척 민망한 상황. 그러나 할아버지가 이내 총총 마당을 비운 것을 확인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황숙자(73) 어르신은 영주에서 시집왔다. 나이 스물에 이곳으로 와 처음 베 짜는 일을 배웠다.
“내 고향에선 삼은 안 했어. 그치만 일 배우면서 야단은 한 개도 안 맞았지. 근데 그 대신 시어른이 도굴대(「절구대, 절구공이」라는 전라도 방언, 여기선 그냥 짝대기로 해석)로 머리를 막 두둘겨 때리데. 하하하(일동 웃음). 그런 게 있어. 다 커서 배우면 아주 어릴 때부터 보다 눈썰미는 본새 더 있는 법이지”

현재 어르신이 짜고 있는 삼베는 두루마리 두 벌을 만들 수 있는 80가닥의 올로 베틀에 차려(준비)놓으면 잉아에 걸린 날(세로)줄이 앞 뒤 240올로 도합 480올인 6세(細)짜리 원단이 만들어 진다.
“나이 멀수록 할매들은 일에 정신 빠트리고 살아야 돼. 그래야 아픈데도 잊어부고 잡념이 없지”
“그케. 근데 날(-줄)은 있는데 씨(꾸리)가 없어서 올게(올해)는 할라그래도 더는 할 게 없다”
“할매요. 눈도 안 좋은데 베 좀 어지간히 짜소. 그고 안동할매한테는 삼 삼(실을 잇는)을 때 돈을 쪼매 더 받아부래요. 다리(다른 사람)보다 솜씨도 조은데 그래도 되니더”

 

“5분만 참아라. 쪼매 있으면 해는 진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 뒷산 중대바우를 머리에 얹고 있는 마을회관을 찾았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방 안에는 삼 삼기에 여념이 없는 ‘삼 삼기 짱, 50년 내공의 달인’ 예닐곱 할매들이 똬리 틀듯 모여 앉아 있다.
지는 해의 햇살이 짧고 강렬한 탓일까. 창 너머로 굼실굼실 타고 오는 모양새가 퍽 아름답다. 이 때 눈이 부시다며 커튼을 치기위해 일어서는 한 할매가 있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 뒷산 중대바우를 머리에 얹고 있는 마을회관을 찾았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방 안에는 삼 삼기에 여념이 없는 ‘삼 삼기 짱, 50년 내공의 달인’ 예닐곱 할매들이 똬리 틀듯 모여 앉아 있다. 지는 해의 햇살이 짧고 강렬한 탓일까. 창 너머로 굼실굼실 타고 오는 모양새가 퍽 아름답다. 이 때 눈이 부시다며 커튼을 치기위해 일어서는 한 할매가 있었다.

“친정조카 ‘물애댁’이는 5분만 참아봐라. 쪼매 있으면 (해가 져서) 눈 바세는 거 없어질끼다”
“할매는 등지고 있어 글치요. 쪼매만 치시더” 순간 찌릿한 신경전.
“그마(그러면) 방에 불이라도 쓰든지. 사진 찍으면 잘 안나온다 아이가” 이어 친정 조카를 ‘물애댁’ 이라고 부르는 그 할매. 오늘의 명언 한 마디.
“야야, 쫄쫄 빨아라. 비디오(카메라) 갖다 댄다”


삼을 삼기위해 삼을 길게 걸어둔 삼대가리(삼톱, 삼두가리, 삼뚜까치) 앞에서 ‘물애댁’ 할매는 시키는 대로 연신 삼을 입에 물고 무릎에다 열심히 비빈다.

삼을 삼기위해 삼을 길게 걸어둔 삼대가리(삼톱, 삼두가리, 삼뚜까치) 앞에서 ‘물애댁’ 할매는 시키는 대로 연신 삼을 입에 물고 무릎에다 열심히 비빈다.

아낙들의 허벅지는 몸의 어느 부분보다 희고 부드러운 법. 삼 삼기를 많이 한 할머니들은 허벅지에 굳은살이 솟는다. 따라서 삼 삼기에 몸서리 난 할매들은 딸을 길쌈하는 마을로는 시집보내지 않으려 작정했다고 이구동성.
“꽤가 나가지고. 하도 여그 무릎팍하고 신다리(넓적다리)가 아파서 고무다이아(타이어)를 가지고 만들었지. 구(舊) 동장이 어디가서 맨드는 걸 배워왔는데, 어뜨노 할매 다리 이쁘나?”


약속된 시간 5분여가 지나자 해는 서산에 코를 끼고 산그림자가 길게 내려오고 있다. 어쩌면 할매들은 하룻밤 사이 비보(悲報)로 평생 동무 삼던 어느 분의 수의를 짜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해인가 언젠가 금소에 삼 사러 갔는데 탈렌트 일용엄니(김수미 씨)가 왔드라고. 내나 지나 화장 안 하고 수건 하나 덮어 쓰니까 인물 하나도 없드라. 거서 거드구만. 별거 없다”

약속된 시간 5분여가 지나자 해는 서산에 코를 끼고 산그림자가 길게 내려오고 있다. 어쩌면 할매들은 하룻밤 사이 비보(悲報)로 평생 동무 삼던 어느 분의 수의를 짜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의 인물 신경 쓰는 것만 줄여도 내 인물 절반은 건진다고 말하는 ‘송천댁’ 할매. 돌아보니 다른 것은 못해도 삼 짜는 일만은 충분히 건사 했다고 하신다. 한파가 연일 기세를 부리고 있던 날 불편한 허리 때문에 두 팔로 무릎을 지탱하고 마을 이 곳 저 곳을 안내해 주시던 할매가 되려 추위에 감기조심 하라고 당부에 당부를 잊지 않으신다. 마을 풍경은 달라졌지만 사람 사는 곳이 한결 같은 건 그 길 위에서 묻고 답하는 인생의 선상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오던 길, 다시 구제역 검역소를 통과하며 자연과 잠시 열어두었던 창을 닫기에 마음이 심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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