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악시 꽃가마 속 요강을 한지로 만든 이유
새악시 꽃가마 속 요강을 한지로 만든 이유
  • 배오직 기자
  • 승인 2011.02.05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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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문화 톺아보기>안동(풍산)한지 공장 견학

삼국시대 이미 상당 수준의 한지 만들어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많은 유무형의 자산 중 세계최초라는 명성 못지않게 최고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것들이 참 많다. 일제의 식민 지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이루어냈지만 그 이면엔 안타깝게도 등한시 되어 잃어버린 것도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용케도 전통을 발굴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정신이 있어 속속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안동 지역에 산재해 있는 유교 관련 자산들이 보관상의 어려움과 경제적 물리적 난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되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최고의 반열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지역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던 유학 관련 목판들의 수가 10만 장에 다다르고 있고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실을 보자면 뒤늦었지만 퍽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한편 이러한 유교 관련 유산들은 책으로 엮어 보급하고자 했던 것을 전제로 하는데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한지이다.

종이의 기원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중국의 채륜이라는 사람이 현대적 의미의 종이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언제쯤일까. 아마 고구려 승려 담징이 종이를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기록과 일본 정창원에 보관되어있는 신라장적(가구수, 논밭, 인구 등을 기록), 최고(最古)의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등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 때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인 전통 안동한지
작고 가벼워 새색시들의 필수품

한지의 쓰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책을 만들고 그림을 담고 장판과 벽지, 창호지로 이용하는 것은 기본. 작은 찻상이나 분위기를 내는 데 사용되는 전등갓 정도의 쓰임은 이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지공예다.

과거로 거슬러, 책 「이야기가 있는 종이 박물관, 김경 저, 김영사, 2007」에 따르면 종이를 이용해 요강과 휴대용 세숫대야, 작은 술잔, 실내화로 쓰였을 종이신발, 각종 물건을 담는 함이나 가방, 그리고 운치 있는 우산 등을 만들어 실생활에 이용했다고 하는데 모두 최근에 만들어져 사용되었던 물건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우선 물에 약한 종이가 어떻게 요강이며 세숫대야며 작은 술잔으로 쓰일 수 있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얇은 한지를 여러 장 덧붙여 틀을 잡고 물이 새지 않도록 촘촘히 옻칠을 한다. 그러면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물건들이 만들어 진다.

특히 꽃가마 탄 새색시가 먼 길 가는 동안 소피가 마려울 땐 어떻게 해결할까. 그렇다. 시집가는 딸을 위해 어머니는 가마 속에 전용 요강을 넣어 둔다. 그런데 가마는 방음이 잘 안 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 무겁고 소리나는 놋쇠나 사기요강보다는 작고 가벼우며 은밀한 소리조차 나지 않는 종이 요강이 해결책이다.

휴대용 세숫대야 역시 작게 만들어 사용했는데 길 떠난 선비의 도포자락에 넣고 다니며 필요 할 때 꺼내어 섰다고 한다.

천년가는 한지, 도침(搗砧)과정이 중요

안동한지는 대략 11단계를 거쳐 생산된다. 닥나무 채취와 삶기, 한지뜨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마지막 작업으로 안동한지의 우수성을 인정받게 되는 과정으로 도침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잘 말린 한지를 수백 번 이상 두들겨서 종이의 밀도와 견고성을 높이는 작업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이 현재의 경주박물관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이 두들기는 기술, 즉 담금질에서 비롯되었다고 유홍준(전 문화재청장)교수는 말했다. 용의 허리춤에 끼워져 있는 쇠막대는 지름이 8.5cm이다. 종 고리 지름 또한 9cm 내외인데 현대 기술로는 이 구멍에 끼울 수 있는 쇠막대를 만들지 못한다고 했다.

이것은 쇠를 두들겨 편 후 다시 돌돌 말아가면서 만들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안동한지에도 도침을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치는 데 그 연유로 천 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신비의 종이를 생산해 낼 수 있었다.


은은한 자연의 향기, 할머니의 품을 닮아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세 가지를 말하자면 의식주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가장 앞에 언급되는 것이 옷감일까. 그 것은 아마 가장 만들어 내기 어려운 순서대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종이도 마찬가지다. 흔하디흔한 것이 종이라 그 귀함을 차제로 돌릴 수 있으나 자연의 산물인 한지의 가치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일 게다.

요즘은 종이로 실을 만들어 직물기틀에다 올려 옷감으로도 만들어 사용하는데 멀리서 보면 천상 상질의 옷감이다. 그 옛날에도 종이를 이용해 지갑(紙甲)이라 하는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강도가 높아 화살도 쉽게 뚫지 못했다고 한다.

아토피가 만연하는 지금, 집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아이들의 옷 정도는 만들어 입었으면 좋겠다. 사서 입히는 것에 비하면 비용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한지는 먼지나 냄새를 빨아 들여 공기를 맑게 하고 자외선을 차단해 피부를 보호한다. 빼어난 흡수성과 발산성으로 실내 습도를 조절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것은 물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해 잠자는데도 도움이 된다.

한지는 할머니의 품을 닮았다. 변하지 않는 마음이 그렇고 은은한 자연의 향기 또한 그러하다. 이런 아름다운 한지가 한국을 대표하는 발효음식과 더불어 지역의 축제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만국기로 휘날리는 날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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