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살리기"
"지역 살리기"
  • 유경상(계간기록창고 발행인)
  • 승인 2022.03.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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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붕괴와 인구소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계간 기록창고-칼럼] 열세번 째 문을 열면서
유경상(계간 기록창고 발행인)
유경상(계간 기록창고 발행인)

어느 세대든 자신들이 걸어온 시간의 경험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고 또 해석하려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요즘 이런 시각과 발언은 곧바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 때는 말이야, 나 때는 어쩌고’로 말을 시작하면 젊은 세대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다. 제발 ‘라떼’ 얘기는 그만하라고 야단을 맞는다.

산간벽지에 둘러싸인 농산어촌에서 태어나 70~80년대 위로부터 전개된 새마을운동을 경험한 세대 입장에선 90년대 이후부터 ‘지역자치’니 ‘지방분권’ 등을 겨우 학습했을 뿐이다. ‘통제와 관치’, ‘중앙집중’에 길들여져 있는 세대가 단번에 자치와 분권주의를 온몸으로 체화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비돼야 한다. 그렇다보니 다양한 경험이 누적되며 형성된 기성세대의 세계관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방어적일 수 있고, 이들의 사고와 의식은 고정화 되기 마련이다. 경험이 최고라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더구나 최근엔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포함한 전면적 생태 및 환경론의 관점까지 갖추어야 어엿한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 어엿한 글로벌적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종종 타인과 대화하는 중에 늘 반복되는 단어들이 꽤 있다. 이 중에 ‘지역균형발전’, ‘지방소멸’, ‘농촌붕괴’ 등을 자주 언급하게 된다. 이제는 ‘지방’이란 용어는 자제하고 있지만 지역소멸이든 지방소멸이든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는 걸 나타내는 데엔 별 무리가 없는 듯하다.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연이어 치러야 될 지경이다 보니 수많은 공약이 난무할 때다.

경북의 여러 군 단위 오일장을 다녀볼 기회가 종종 생겼다. 평상시 영양읍내 장터는 조용했고, 장날은 어떨까 싶어 기대를 가져보았다. 안동에서 승용차를 몰고 한 시간을 달려가 오전 열시부터 두 시간을 서성거렸지만 한적한 시골장날에 그치고 있었다. 젊은이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60~70년대 인산인해를 이루던 장날 풍경은 기록사진 속에 남아 있는 흘러간 전설일 뿐이다.

영양군 인구 1만6천여 명 중 읍내 인구가 약 7천여 명이면 5개 면에는 9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인접한 청송군 인구는 2만5천여 명인데 읍내 5천여 명과 진보면 6천여 명이다. 나머지 6개 면 인구를 다 합쳐도 1만4천여 명이다. 봉화군도 3만여 명인데, 읍내에 1만여 명이 모여 있고, 2만여 명은 9개 면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오지마을인 봉화·영양·청송을 ‘BYC’로 별칭해서 부르곤 했다. 경북 면적의 15%에 달하는 3개 군(면적 2,918㎢)에 7만1천여 명이라니, 너무 놀랍지 않은가. 간단한 인구 통계로 살펴보면 농촌붕괴, 지방소멸은 실제 목전의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지난 20년간 지역에 인구정책과 지역불균형 극복 대책이 숱하게 쏟아졌지만 현재 농어촌의 붕괴와 소멸 속도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냥 참담하다고 말하는 게 옳은 것 같다.

경북에 산재한 시·군 청사를 가보면 건물은 읍내 외곽으로 옮겨져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고 덩달아 면사무소 규모도 커졌다. 왜 관공서 건물은 높고 화려해지고 외곽으로 이전해 읍내 상권과 멀어져 있을까? 관존민비의 잔존 의식이 건축물에서조차 다시 맹위를 떨치는 건 역설적이게도 자치분권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수백 년간 시·군 단위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혈연, 학연, 지연이 지방선거를 통해 더 단단하게 부활하고 있다. 민부(民富)가 최우선이라는 정상적인 인식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한 상태에서 지방선거는 지방기득권자들의 출세와 이권 창구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지방자치의 요체인 직선제를 정당구조로부터 해방시켜 달라는 요청은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했던가 싶다.

지역과 농어촌을 걱정해 주는 척하는 선거 시기를 맞아 시민과 유권자는 누구를 지지할까를 두고 흑백 행위에 내몰린다. 위정자와 그 세력은 권력 집권에만 관심이 높을 뿐 시민의 정치역량 강화와 지역의 활로에는 무관심이다. 큰 개발공약 몇 개를 던져놓고 사지선다형 답변이 진짜 참여인 것처럼 선동을 일삼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핑계로 온라인과 공중전으로 민심을 움켜쥐고 사고파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다. 제발 현장에 가서 하룻밤이라도 지역주민과 만나서 서민의 삶이 어떤지 물어보고 들어봐야 한다.

대구에 살다가 10여 년 전 고향으로 귀향해 농사를 짓고 있는 후배에게 “지방소멸에 직면한 비슷한 규모의 군 단위 행정구역을 중통합(中統合)하는 건 어떨까” 하니 고개를 저었다. 경북 23개 시군을 5~6개로 통합시키면 사정이 나아질 것인가?

차라리 지역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건 어떨까? 2천 년 전 고대 부족국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주야장창 읊조려지는 향토사를 시민중심의 신향토사로 바꾸면 내가 이 지역과 도시의 진짜 주인인 것을 깨닫게 될까?

인터넷이 괜찮은 소통과 인식 도구라는 걸 느낀다. ‘구글어스’를 통해 위성에서 비춰주는 지구와 한반도를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리와 지형이 한눈에 훤하게 보인다. 항공기에서 3D 영상으로 저 아래 산하와 도시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가 저 아래에서 오밀조밀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구나’ 싶다. 예전에 산꼭대기에서 바라본 시야가 이제는 더 높아졌고 넓어져 있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 지구의 귀퉁이 한반도에서도 이곳 경상북도에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찰나를 채워 나가야 할까.

전례가 없었던 여러 가지 위협이 다가온 가운데, 경상북도와 각 시군은 지역붕괴와 인구소멸이라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지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30년 전부터 대도시 안에 낙후지역을 재생시키고자 하는 활동은 전 세계적인 화두이다. 대도시마저 이럴진대 이 속에 갇혀서 더 심각한 차별과 배제를 당해온 기초 시·군은 저소득과 노령화로 멸망 직전이다. 광역기초자치단체인 경상북도가 먼저 앞장서서 어렵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 기초생활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영세소득에서 벗어나 중산층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연구해주어야 한다. 새로운 인구 유입과 함께 청년이 떠나지 않을 지역사회 건설 정책을 집중적으로 모색해 주길 소망한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면 기존에 사용한 방식과 해법을 거듭 재탕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선거시기와 함께 대전환기를 맞이한 만큼 숨고르기를 해가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그래야만 어느 날 ‘눈 떠보니 진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 기사는 계간 기록창고 13호(2021년 겨울호) 칼럼으로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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