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말의 진정성 소중히 다루겠다"
"몸말의 진정성 소중히 다루겠다"
  • 유경상 기자
  • 승인 2011.06.30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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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출신 이영광 시인 '아픈천국' 지훈문학상 받아
"시에는 내일 있어도 시인엔 내일 없다"

“몸말의 진정성과 힘의 가치, 소중히 다뤘다”
안동출신 이영광 시인 ‘아픈천국’, 지훈문학상 받아

지난 오월엔 봄비가 너무 자주 내렸다. 마치 눈물 흐르듯 주루룩 내린다. 잔인한 오월을 맞아 하늘도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비 내리는 5월 20일 오후, 안상학 시인으로부터 갑자기 전화호출이 터진다. “빨리 와라.” 이 한마디뿐. 식당 문을 들어서니, 어디서 본 듯했지만, 초면의 수수한 주인공과 대작을 하고 있다. “이영광 시인이다.” 아-, 그 가족사에서부터 여동생과 매제까지 줄줄이 꿰고 살아 왔지만 유독 이영광 시인과는 첫 대면이었다.

1984년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거치며 시작활동에 열심이었던 동안 이 시인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1998년『문예중앙』‘빙폭’ 등 시 10편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그해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03년에 첫 시집『직선 위에서 떨다』, 2007년『그늘과 사귀다』를 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시인들과의 첫 대면은 유난히 늘 떨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 번째 시집『아픈천국』지훈문학상 선정

2010년 8월에 출간된 이영광의 시집『아픈 천국』이 제11회 지훈문학상 수상작로 선정돼 5월21일 오전 11시 영양 주실마을에서 수상식이 열렸다. 행사 하루를 앞두고 돌아가신 부친의 여섯 번째 제사가 있는 날이라고 했다. 주거니 받거니 삼자 대작이 시작됐다. 2003년 나온 첫시집『직선 위에서 떨다』는 지금도 내 책꽂이에 놓여 있다는 너스레까지 떨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봄비는 계속 내렸다. 안동에서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로 가는 31번 2차선 국도를 달리는 차량들은 마냥 느려 터졌다. 앞선 차량들 꼬리를 물고 갈 뿐이다.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가자. 마음을 내려놓자, 국도변 야산에 늘어선 아카시아 꽃이 마치 흰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하얀 포도송이 천지였다. 마침 영양읍내는 영양산채나물축제가 한창이었다. 우산을 펼쳐 든 군민들의 인파를 헤치고 일월면으로 들어서니 산세가 높아졌고 차창을 내리니 달려드는 공기마저 달콤해졌다. 산세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을 일컫는 말이 그냥 나왔을 리 없다고 중얼거리는 사이에 주실마을 초입에 들어섰다.

탁 트여진 문학관 앞뜰에는 벌써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조지훈 시인은 1963년 초대 원장을 역임) 관계자와 나남출판사 팀들이 관광버스 2대를 대절해 단체로 참석했다. 수상자들의 가족은 물론이고 영양군 공무원들도 눈에 띤다.

삶과 인간 속에 있는 몸말 계속 묻는다

수상자 선정 심사보고가 있었다. “이영광의 시집『아픈 천국』이 가진 미덕은 도저히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정직하게 받아쓰는 데서 나오는 강렬한 힘이다. 그의 시들은 제 몸을 억압하는 삶의 부조리한 현실과 환경을 조금도 피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몸말은 삶과 인간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굳건하고 확고하고 당연한 듯 보이는 안전한 세상의 정답들을 들쑤셔 불안을 질문을 만들려 한다. …질문이 들어올 틈을 단단하게 막아놓은 정답들에게 균열을 가하려 한다.” 3명 심사위원들의 심사의견은 이영광 시인의 몸말의 진정성과 힘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수상소감에 나선 이영광 시인은 “병고를 의연히 생의 일부로 거두어들이는 지훈의 시「병(病)에게」와 같은 작품에 특별히 끌렸다. 그 시편들에는 몸의 깊은 주름을 비집고 나온 불가피한 정념의 일렁임이 있고, 시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이 한데 겹쳐서 생겨나는 떨림이 있고, 시와 인간이 동시에 간절하고 위태로워지는 어떤 뜨거운 순간들이 들어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지훈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삼아 인간의 결여와 세상의 결핍에 대한 애타는 말들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몸에 새겨온 ‘시에는 내일이 있어도 시인은 내일이 없어야 한다’는 믿음을 견지하며, 시에 몸을 내어주고 의지하며 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인간 수업에도 용맹정진 하겠다고 다짐의 말을 풀어놨다. 아름다운 건 대개 선한 법이고, “언제나 선한 영혼이 삶을 더 깊이 향수한다”며 “나는 과연 살 만한 인간인가,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곳인가 하는 물음을 어떻게 물을까에 대해 더 전전긍긍” 하게 될 이영광 시인의 몸과 마음과 생이 어떻게 인쇄될 지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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