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내가 더 미안한 걸까요'
'그런데 왜 내가 더 미안한 걸까요'
  • 배오직
  • 승인 2012.05.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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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나를 미(美)치게 했던 노래(1) - 윤종신의 「오늘」
윤종신의 음악은 삶에 구체적이다. 동시에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들을 기록하는 방관자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면서 오늘을 묵묵히 그려내는 그림과도 같다. 그림으로 치자면 화려한 수채화가 아닌 먹과 종이로 그려진 담채화에 가깝다.

한편, 그의 멜로디는 대중적이지 못하다. 한 두 번 들어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는 솔직히 아니다. 아마 그가 만든 음악 중 유명한 노래가 있다면 대부분 다른 가수가 부른 노래일 경우가 많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볍게 비쳐지는 모습은 어쩜 그의 실생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늘 어둠이 깔리는 도시를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아프다. 해가 지는 도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체는 작고 그림자만 가득하다.

어느 한 시공간, 다가올 외로움에 불안해하며 서로를 걱정하며 이별하는 청춘들이 있다. 서서히 깔리는 암전에서 지극히 단순한 기타 선율하나가 줄지어 늘어선 차들의 소음을 잠재운다.

걷는다. 지하철을 탈까 고민해보지만, 서둘러 약속 장소로 가는 것, 용기가 나질 않는다. 추억이 깃든 라이터로 담배 연기를 피워본다. 아직 담배 피우는 모습이 엉성한 스무 살 청춘은 한 모금 연기 속에 일 년 후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떠올린다.

‘괜찮아 질거야, 널 사랑해. 일년 후 다시 만나’

뚜벅뚜벅 걷는 예정된 기타 선율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소리는 작아지지만 더욱 더 선명해 진다.

사람들이 총총 집으로 향한다. 퇴근시간은 이미 지났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기다려 보기로 한다. 하기야 외출 준비가 길어질 나이니까.
찻집 창 너머 화려한 그림자들이 드리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니 그냥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창 너머 그림자에게 마음이 들켜버린 양 낯설어진 이곳은 사실 하루도 빠짐없이 지나치던 곳이다.

머리를 쓸어 올려 본다. 까만 머리카락 몇 올이 테이블 위로 떨어진다. 오해와 상처들이 교차하던 때 술에 취해 찾아간 그에게 아랫목 한자리를 내주며 밤이 새도록 쓰다듬어 주었던 이별의 망설임을 아침이 다 되어서야 그는 알 수 있었다.

시골에서 이별은 묻힐 수 있지만 도시의 이별은 공간이 없다. 그래서 마음에 담아 둔다. 그를 지탱하고 있던 공간은 생활 속에 여전히 힘이 된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끝나지 않을 그리움도 길게 늘어진 그림자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흐려진다.
자정을 넘길 무렵 붉은 벽돌방들이 고단했던 하루를 마감한다. 가로등 밑에서 올려다본 그녀의 방은 여전히 어둠에 휩싸여 있다. 방에 숨어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와 긴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채 오늘 약속을 잊고 있는 걸까.

일년 전 눈이 시리도록 울게 했던 계절은 아직 미완성이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 그녀의 향내는 없다. 부드러운 가슴이 그립다. 연관 된 숫자들의 조합 끝에 알게 된 음성사서함 비밀번호를 눌러본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녹음 되어있다. 행복해 보인다.

그리움이란 오랫동안 떠나 있어도 처음으로 돌아 갈수 있는 환상 같은 것. 새벽이 되어서야 그녀의 방엔 불이 켜진다. 가야겠다. 언제 끝날지 모를 오늘을 기억하며 되돌이표 치듯 들리는 기타소리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읊조린다.

‘미안해’

그해 그를 미치게 했던 오늘은 지금도 어느 시공간에서 되풀이 될까. 그렇게 그는 어른이 되었고 그런 청춘들도 어른이 되어간다.
퇴근길, 윤종신의 「오늘」을 다시 들어 본다.

윤종신 6집 중「오늘」

나 여기 있어요 우리 약속한 자리
많은 시간 흘렀지만 난 기억해요 바로 오늘 만나기로 했죠
이 자리에서 우린 헤어졌었죠 다가올 외로움에 불안해하며 우린 서로를 걱정하며 이별했죠
그리곤 약속했죠 이맘 때 쯤이면 편한 추억으로 남을거라하며 부담없이 오늘 만나기로...
그대 늦는 군요 그래요 이제 외출 준비가 길어질 나이죠
내겐 그대 수수했던 모습뿐인데
오늘도 전처럼 창가에 있죠 길게 늘어선 차들이 보이네요
천천히 와요 그리 지루하지 않네요
혹시 잊었나요 오늘 이 자리 그렇게 요즘 행복한가요
그 생각에 조금 서러워지네요
자 이제 그만 나 일어날게요 그대 처음으로 약속 어겼네요
그런데 왜 내가 더 미안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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