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는 세계를 예언하고 씨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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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경상 기자
  • 승인 2013.10.19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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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제3회 중국연변 이육사문학제에 참가하다

△ 9월12일부터 15일까지 (사)이육사추모사업회와 연변작가협회가 제3회 중국연변이육사문학제를 열었다. 9월12일 연길공항에 도착직 후 한국측 인사들을 환영해 주었다.

육사는 왜 중국으로 갔는가?

지난 9월12일 중국연변에서 열린 제3회 이육사문학제를 따라 나서기도 전에《이육사평전》(김희곤 지음)을 찾는다고 법석을 떨었다. 2011년 봄에 구입한 책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서둘러 단골 서점에 갔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절판이란다. 수소문 끝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 한 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텍스트에 대한 집착은 가히 공포 그 자체다. 일목요연한 전기문 또는 평전이 가져다주는 신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열일곱 들던 해에 안동의 某고등학교에 입학을 한 후, 안동 땅에서 거의 30여 년을 생활하고 있지만  안동출신 이육사의 치열했던 삶과 문학사에 우뚝 솟은 시에 대해서 사실 잘 모른다. 그의 시를 읽고 음미만 해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그만큼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나 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제국의 통치 밑에서 억압과 차별의 식민시대를 살았던 먼저 산 분들이 운명적으로 겪어야 했을 고통과 그들이 선택해 걸어갔을 길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 엄습해 온다. 이 년 전의 이 맘 때가 꼭 그랬다. 시인인 조영일 이육사문학관 관장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육사의 치열했던 독립에의 몰입과 문학세계가 지닌 영원성’이 온몸을 휘감았던 기억이 마치 상처자욱처럼 남아 있었다.

육사의 생애 자체를 지성의 행동성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한다는 그 자체가 가능한 것일까에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지행합일의 삶’이었다는 간결하고도 명료한 개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궁금해지는 것이 왜 이육사는 중국으로 자주 갔고, 왜 중국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는가? 이다. 당장의 나로서는  두루두루 공부를 해 봐야 할 처지라는 것을 고백하는 수밖에 없다.

△ 이육사는 1944년 1월16일 새벽5시 당시 베이징시 네이이구 동창후똥 1호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1944년 1월16일 새벽5시 숨을 거둔 중국의 감옥소?

독립운동을 위한 잦은 중국행 속에서 한창나이인 마흔 살의 육신을 끝끝내 쓰러지게 한 장소는 중국 베이징이었다. 1943년 일제는 육사를 서울에서 체포해 베이징으로 압송해 갔고, 1944년 1월16일 새벽5시 베이징 감옥에서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육사와 함께 갇혔다가 먼저 풀려났고, 육사의 시신을 인수받았던 이병희 할머니의 증언이 보태어져 순국한 베이징 감옥이 ‘베이징시 네이이구(內一區) 동창후똥(東昌胡同) 1호’로 밝혀지기도 했다.

김희곤 교수가 2010년에 쓴《이육사평전》에 따르면 이곳은 현재 동창후똥 1호 맞은편에 비껴 있는 28호로 좁혀졌다. 지금의 1호나 28호 모두 예전의 1호 범위 안에 들어서 있었을 것이라고 서술했다. 그곳의 정체는 일제의 문화특무기관인 동방문화사업위원회가 있던 큰 규모의 건물이었고, 건너편인 28호에는 유치장이나 건물이 있었다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이번 문학제의 일정 중 귀국하는 9월15일 오전에 그 건물을 찾아갈 수 있었다. 육사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을 감옥을 찾아간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북경의 날씨는 흐릿했고 약간은 을씨년스러워져 있었다. 동창 28호 건물은 이층의 옛 형태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몹시 낡은 상태이다. 일층 창문 밖으로는 아직도 쇠창살이 붙어있고, 지하엔 당시 감옥소로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 육사의 유일한 혈육인 딸 이옥비 여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수십 성상을 그리움과 추모의 정을 느끼며 살아왔으리라. 아버지가 순국한 장소를 처음 방문한 이 자리에서 만큼은 마음껏 대성통곡을 한다고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이십 여명이 넘는 행렬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어리둥절해 하는 집거주자에게 통역가이드가 방문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육사의 유일한 혈육인 딸 이옥비 여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바쁘게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그 설움은 렌즈를 통해 고스란히 다가왔다. 수십 성상을 그리움과 추모의 정을 느끼며 살아왔으리라. 아버지가 순국한 장소를 처음 방문한 이 자리에서 만큼은 마음껏 대성통곡을 한다고 누가 말릴 수 있을까.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땅이 아닌 엄연한 낯선 타국, 중국의 심장이었다. 숨죽여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추모의 묵념과 함께 술 한 잔을 올린 후 잠시 건물을 둘러보는 것이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추모행위일 뿐이었다.

△ 육사의 딸 이옥비 여사와 한글작품공모전에 입상한 연변대 학생들.

△ 문학제가 시작되기 직전에 연변대학 조선족 학생들과 참석자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연길공항에서의 해프닝, 자료집 압류되다

9월12일 하루는 비행기 이륙과 도착, 곧바로 행사참석과 만찬까지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새벽 2시에 안동을 출발해, 인천 영종도국제공항~중국 연길공항, 연변대학 문학제 참석이 원스톱 코스로 이어졌다. 연길공항의 모습은 기대와 다르게 시골정류장을 연상시켰다. 간단한 입국절차를 기대했지만 학술제 자료집의 대부분이 반입금지 목록에 걸려 삼십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얇은 행사 자료집조차 공항검열대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는 실랑이 끝에 일부만 챙길 수 있었다.

연변대학에서 열리는 이육사 문학제의 원래 일정은 학술발표, 한글작품공모전 시상식, 시낭송으로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연길작가협회가 주관하는 행사가 뒤죽박죽인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한국측 참석자들의 혼을 쏙 빼놓은 건 예정된 순서를 아예 통째로 빼먹은 것이다. 중국식 사회주의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 모두들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쓰는 모습이었다. 만일 한국에서 공식행사의 절차를 들쭉날쭉으로 진행했다면 실무자들이 크게 경을 칠 일이다. 이것도 국경을 넘으면 발생하는 문화의 차이로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우여곡절 끝에 연단에 선 손병희 안동대 국문학과 교수의 미니 강연이었다. 엉클어진 기분을 바로잡아 주는 동시에 우리가 왜 이곳에 와서 서 있는가를 일깨워 준 격이다. 손 교수는 육사가 걸어갔던 항일 투쟁과 항일 시인이라는 선입견에만 사로잡히지 말자고 말했다. 모든 시편들을 정치적 저항의 차원에서만 해석하려는 강박증은 경계해야 마땅하다고 일갈했다. ‘시인 이육사’가 남긴 시에서 감동을 실감하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내면과 시인이 경험한 시대를 다시 살아 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육사가 시를 통해 보인 “망국민의 일그러진 삶을 치유하는 해방된 조국, 나아가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해방된 세계에 대한 윤리적 소망과 확신”을 느끼자는 것이다. “온 겨레가 정치적 노예의 신분에 있을 때, 절망하지 않고 해방된 세계를 예언하고 씨를 뿌렸다”는 대목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자기완성을 이룩했다고 전했다.

이육사추모사업회, 안동병원, 연변작가협회가 ‘새생명프로젝트’ 가동

연길공항을 통해 베이징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난관이 발생했다. 9월14일 새벽부터 일어나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지만, 안개가 짙어 무려 네 시간을 기다렸다. 무료해지기 시작하자 뭔가 재미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잠시 생각을 해보니 지금은 증과 티켓의 시대이다. 여권과 티켓이 필수품목을 넘어 장소에 따라 생사여탈권을 결정짓고 있었다.


이번 문학행사에 새로운 리더가 등장했다. 사단법인 이육사추모사업회 신임 이사장인 권부옥 여사다. 안동병원 상임이사로 활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다양하고도 뜻있는 공익적 문화사업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문학제 참가와 함께 연변지역의 환자를 초청해 치료를 해주는 생명존중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문학제 행사이후인 9월12일 오후에는 ‘광야에 꽃 피우는 새생명’으로 명명된 의료봉사 프로그램을 위해 중국연변작가협회 사무실에서 새생명프로젝트 양해각서가 체결되었다.

연변작가협회가 추천한 환자와 회원들은 11월 경 안동에 도착해 안동병원에서 의료검진과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연변지역에서 2011년부터 매년 진행되고 있는 육사의 추모사업이 앞으로는 새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안동에서 이육사 로드를 투어하고, 건강검진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은 곧 정신적, 육체적 힐링 프로그램으로 나아갈 수도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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