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오면 슬퍼지는 이유
눈만 오면 슬퍼지는 이유
  • 이위발(시인,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 승인 2014.01.28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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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오면 요즈음은 겁이 나고 왠지 슬퍼집니다. 함박눈이든 싸락눈이든 진눈깨비든 눈만 오면 두렵습니다. 하지만 별빛 쏟아지듯 눈이 내리면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때도 있었습니다. 흥분을 참지 못해 마당으로 뛰쳐나가 강아지마냥 미친 듯이 온 사방을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다 지치면 눈 위에 벌렁 드러누워 하늘 향해 가슴으로 안아보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추억이 분명 있었습니다.

재작년 아침 출근길이었습니다. 그 전날 밤에 싸락눈이 내려 음지엔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이하리 집에서 출발하여 새로 개통된 영주방향 4차선을 늘 같은 속도로 달렸습니다. 옹천을 지나 녹전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공사구간이어서 속도를 최대한 낮추어 천천히 가고 있었었습니다. 제 차 뒤에는 짚을 실은 5톤 트럭 세대가 연이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녹전면사무소에서 이백 미터 전인 녹내리 내리막길을 다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미터기는 20키로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저는 핸들을 꽉 잡은 채로 다 내려왔다고 안심을 할 때였습니다. 커브길이라 브레이크를 살짝 밟자 차가 갑자기 360도 회전을 한 뒤 우측 가로수 옆 흙더미 쪽으로 박혀버렸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이었습니다. 제 뒤에 따라 오던 트럭이 제 차 우측을 치고 논두렁으로 떨어지고, 중간에 있던 트럭도 회전을 한 뒤 마지막으로 오던 트럭과 추돌 한 후, 한 대는 산 쪽으로 가서 박혔고, 한 대는 반대방향의 과수원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교통사고로 전 3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10일간 치료를 받은 후 지금은 별다른 후유증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차를 들이 받고 논두렁에 박힌 차 운전수는 사고 후 3일 만에 어린 딸 둘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하다 보니 전 공항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죽음과 삶의 의미가 이렇게 간단한가에 대한 의문 또한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십분도 채 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트럭 운전수는 멀쩡하게 나오면서 투덜거리기도 했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사건이 가져다 준 의미에 대해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운이라고 이야길 합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간단하게 넘길 수 없는 그 무엇이 가슴 저 밑바닥에 옹이처럼 박혀 있습니다.

요즈음 읽고 있는 책 가운데 『몸의 역사와 몸의 문화』에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몸은 물질로 만들어져 있고, 마음은 초월적인 존재로서 비물질적인 존재이고 전신(全身)적인 차원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몸과 마음이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지만 우리들은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 하나의 언어와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생각이 몸을 움직이고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이라는 것은 전일적 방식이든 분별적 방식으로 바라보든 관계없이 몸이 살아가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자연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연 질서에 따라서 살 수 있을 때 사는 것이 자연이 준 혜택입니다. 또 죽을 수 있을 때 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자연의 질서에 따르지 않고 살 수 있을 때 살지 않는 것은 자연의 형벌입니다. 죽을 수 있을 때 죽지 못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연 질서에 따라 살만한 때 살고, 죽을 만한 때에 죽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생사란 나 아닌 물건이 그렇게 시

△이위발(시인,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키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의 명령일 뿐 결코 인간의 지혜로는 어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은 아득하고 무한하여 저절로 이루어지며, 아주 막연하고 분명치 않지만 저절로 돌아갑니다. 그 법칙은 천지도 어길 수 없고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으며 귀신도 속일 수 없습니다. 자연은 이렇듯 묵묵히 사물을 형성시키고 제자리에 안정시키고 물러가게 하고 보내주며 맞아들이고 있습니다.

트럭 운전수의 죽음이 불러 온 저의 마음 속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 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눈만 오면 그 눈과 함께 자연이 베푸는 범위 안에서 몸과 마음도 그 안에서 녹아내립니다. 저 또한 그렇게 자연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단지 살아있음으로서의 느낌이 가져다주는 그 무엇을 생각할 뿐 눈은 어김없이 또 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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