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안동과 가마쿠라’
‘역사 속의 안동과 가마쿠라’
  • 김종규(안동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
  • 승인 2015.06.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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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천여 년 전 두 도시엔 ‘역사적 사건’ 있었다
[지역역사 속으로] 김종규 (안동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

안동과 일본의 가마쿠라(鎌倉)가 자매결연 도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좋은 일이다.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일도 중요하고, 이웃 나라와 선린우호의 관계를 맺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교류에 관계된 사람들이 안동과 가마쿠라가 역사 속에서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알고는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 몽고습래회사(蒙古襲来絵詞)의 일부, 1293년경, 竹崎季長 작품
 
칭기스칸의 뒤를 이어 칸이 된 쿠빌라이에게는 두 가지 골치 아픈 현안이 있었다. 일본에게 항복을 하라고 여러 차례 종용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아 칸의 권위가 서지 않는 것이 그 한 가지였다. 또 한 가지는 남송을 정복한 후 남아있는 10만 대군이었다. 해산을 시키자니 도적떼가 되거나 반란군이 될 소지가 있고, 그렇다고 무작정 군대를 묶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일본 원정이었다. 물론 일본 원정에 고려군과 고려의 물자를 투입시켜 고려도 약화시킬 수 있었다. 두 차례의 일본 원정을 통해 쿠빌라이는 일본을 항복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남송의 10만 대군을 2차 원정에서 전멸 당하게 함으로써 남송군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안동과 가마쿠라의 만남은 이 전쟁에서 시작된다.

당시 여몽연합군의 고려군 사령관은 안동김씨(선김 혹은 구김)의 중시조 김방경이었다. 그는 몽골과의 30년 전쟁에서는 몽골과의 전쟁에 앞장섰고, 삼별초를 공격할 때는 고려 왕명에 따라 몽골군과 함께 삼별초 공격을 지휘했으며, 몽골의 강압에 의해 두 차례 일본 원정에 나섰다. 두 번의 원정이 모두 폭풍으로 인해 (2차 원정 때는 일본의 준비도 대단했다.) 실패했지만 김방경은 쿠빌라이로부터 문책을 당하지 않았다. 김방경은 쿠빌라이의 신임이 대단한 장수였다. 1차 원정 때는 김방경은 진격을 주장했고, 몽골군 사령관은 배로 철수할 것을 주장해서 배로 철수해 대기하다가 폭풍을 만나 실패했는데, 김방경의 주장대로 진격했다면 최소한 대군이 수장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당시 일본의 통치를 담당한 막부(幕府)는 가마쿠라에 있었다. 당시 막부의 쇼군(將軍)은 고레야스 친왕(惟康親王)이라는 황족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전쟁을 분에이의 역(文永の役)이라고 부른다. 안동과 가마쿠라의 인연은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두 번의 원정에서 일본은 큰 위기를 겪었지만 두 번 모두 폭풍이 몰려와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바람을 신이 보내준 바람이라 하여 가미카제(神風)라고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을 무렵 일본은 자살특공대를 가미카제라고 불렀다. 신이 바람을 보내 여몽연합군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주었듯이, 신이 또 한 번 일본을 위기로부터 구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당시 안동은 내륙군수기지 역할을 했다. 일본 원정 전에는 고려에 증류주 제조 기술이 없었다. 증류주 제조 기술은 원래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던 기술이었는데 몽골에 정복되면서 이 기술이 몽골에 전해졌다. 그리고 군수품으로 증류주를 조달하기 위해 이 기술이 안동에 전해진 것이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은 안동에 안동소주를 남겼다. 한편 일본에는 이 전쟁을 기록한 그림들이 남아있다. 이 그림들에서 고려군의 복장과 동일한 복장을 예천의 삼거리에 있는 탑의 부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에서 고려군은 활을 쏘고 있고, 몽골군은 도망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가마쿠라로서는 안동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고려군의 사령관이 안동 사람이었고, 안동은 이 전쟁의 육상군수기지였다. 최소한 이 정도의 역사적 사실은 알고 가마쿠라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침략군의 일부로 참가한 전쟁이라는 것을 숨길 필요는 없다. 솔직히 인정하고, 당시 행한 잔인한 행동들을 사과도 하자. 그래야 우리도 근대에 저지른 일본의 만행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 가마쿠라 사람들이 안동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김방경 장군 관련 유적들, 예천 삼거리의 석탑에 새겨진 고려 복장일 수도 있으니 참고하자. 그리고 가미카제가 불 때 고려군이 가져간 술이라고 안동소주 한잔 나누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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