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존중하는 반듯한 정치인 꼭 필요하다’
‘시민을 존중하는 반듯한 정치인 꼭 필요하다’
  • 유경상/김용준 기자
  • 승인 2015.07.0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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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 한 분 모시고 함께 사는 따뜻한 안동 만들겠습니다
[집중기획 인터뷰] - 권택기(51) 제18대 前 국회의원(특임차관 역임)

- 90년대 중반 대기업 회사원에서 정치권으로 들어간 이유가 무엇인가. 정치권 입문 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의 소장파 개혁정치그룹의 주요인사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80년대 초부터 우리사회는 민주화의 열기가 높았고, 그 한가운데 대학생들이 있었다. 나 또한 청년학생으로서 양심적 행동을 하며 대학을 다녔다. 90년에 졸업을 한 후 현대그룹에 입사했지만 94년 7월 사직을 했고, 늘 가슴속에 품었던 정치권으로 들어가게 된다. YS의 문민정부 탄생과 함께 민주화를 제대로 이뤄내는데 참여하고 싶었다. 국민을 위한 따뜻한 보수,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할 수 있는 거듭나는 보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2000년 당시 한나라당 내에는 젊은 개혁그룹인 40대가 없었기에 오세훈, 원희룡, 남경필, 권영진, 김부겸, 정병국, 김영춘, 정태근, 조정식 등 선배들과 함께 ‘미래연대’를 만드는데 참여했다.

미래연대 창립정신은 ‘보수혁신을 통해 합리적인 보수로 거듭나는 정당이 되어야 국민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요점이었다. 한나라당을 새로운 보수로 혁신시켜 내겠다는 결의가 넘쳤다. 미래연대 첫 사무처를 만들었는데 권영진(현재 대구시장) 선배가 초대 사무처장이었고, 그 다음을 내가 맡았다. 그 맥이 17대 국회 땐 ‘새정치수요모임’, 18대 국회에선 ‘민본21’로 이어졌다. 2008년 4월 총선에서 광진구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18대 국회 당시 ‘민본21’을 함께 만들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왜 참여했느냐며 혼을 내더라. 그래서 대통령을 설득했다. 당의 목소리를 대통령에게 똑바로 전달하고, 대통령의 입장도 당으로 전달해야 하니 꼭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19대 국회인 요즘엔 당 외곽에서 볼 때 소장파들의 개혁 목소리가 줄어들었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얼마 전 부터 소장파라 불리던 정치인들이 정치개혁의 불씨를 다시 살려보자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고 있다. 새누리당 내 보수혁신과 당 개혁, 우리사회의 전망 등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다. 이러한 혁신적 노력이 미래의 대한민국 성숙된 민주정치를 만드는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본다.”

-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등장했다. 2008년 4월 서울 광진구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발한 의정활동을 폈다. 2012년 재선을 향한 공천에서 배제됐지만 곧 특임차관을 임명받았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 재직 시절과 맞물리며 정치인으로서의 부침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대선을 치르며 이명박 대통령후보에게 여러 측면에서 인정을 받았다. 내 나름대로는 MB정부가 들어서는 게 시대적 요구였다고 판단했다. 대통령당선인 정무기획2팀장으로 또 여당 국회의원으로 소임을 다하고자했다. 이러한 활동이 이명박대통령의 핵심인사로 보인 측면이 있다. 우리 정치를 돌아보면 개인적 인연과 어느 계파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편가르는 경향이 있어 왔다. 아마 저도 2012 총선 공천과정에서 친이계 핵심인사로 보고 출마를 못하게 되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내가 참여해서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은 이 정부에 대해 무한책임을 가지게 됐을 뿐이다. 대통령에게 쓴 소리도 하고 잘 될 수 있도록 앞장섰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공천배제를 당했지만 대통령께서 대통령선거관리와 차기정부와의 인수인계 과정을 맡아보라며 특임차관으로 다시 중용해 주었다. 불협화음을 줄이고 조정과 소통의 역할을 다 해냈다. 지금도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그 책임을 무한으로 지겠다는 정신에는 변함이 없다. ‘정치란 것은 바르게 하는 것이다’는 정자정야(政者正也) 처럼 반듯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한나라당 시절부터 지금의 새누리당 안팎에서 소위 ‘기획전략통’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에서는 중앙정치권 내에서 상당한 기획, 정무, 정책 역할을 수행해 내며 나름의 인정을 받은 것처럼 보도했었다.

“정치권에 들어갔지만 곧바로 권력의 핵심에 가지는 않았다. 현장정치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늘 현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야 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요구가 뭔가, 시대적 정신이 뭔가를 정치인의 시각이 아니라 시민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며 바라보겠다는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객관화시키기 보다는 늘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에 오래 있었지만 그나마 늘 젊은 층과 만나며 그들의 여론을 반영하는 정치를 하는 게 옳다고 보았다. 전략적 마인드가 뛰어난 게 아니라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자면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시작될 때 미래연대 소장파 그룹과 함께 반대를 했다. 성명서를 발표했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대통령 탄핵은 국민의사 결정권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국민의 정서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오만하게 보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반대를 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다음 총선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저도 그때 총선출마를 권유받았지만 출마를 하지 않았다. 물론 자격도 부족했지만 그때까지 아직은 나의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청시대 맞이한 안동, ‘아고라 광장’식 토론으로 따뜻한 新발전모델 시급

-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으로 4년간 활동하며 성공시켜낸 입법활동은 무엇인가.

“미소금융과 햇살론을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합리적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대표적 법안으로 착안했다. 신용등급 6등급이상의 서민들에게는 은행문턱이 너무 높아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고 이는 고금리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미소금융은 작게나마 다시 출발하려는 서민들의 재활을 위한 지원자금이고, 햇살론은 가계가 갑자기 무너진 사람을 일시적으로나 유지시켜 주기 위한 긴급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제도이었다. 또한 당시 법적 근거 없이 부실 상조업체들이 난립해 피해가 너무 많았다. 평생 어렵게 살아온 분들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서 조차도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려운 입법과정을 거쳐 상조업체들이 부도가 나도 가입자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가장 어려웠던 활동이 광진구 중곡동에 있는 국립서울병원 소위 정신병원의 이전과 리모델링이었다. 20년 이상 지역의 숙원사업이지만 누구도 손을 못 댔던 것이다. 출마당시 먼저 대통령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내 공약으로 내놨지만 당선 후 국무총리나 보건복지부장관이 회피하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할 법이 없었다. 모든 법령을 뒤지다가 대통령령에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을 찾아냈다. 총리를 만나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승낙받고 갈등조정위원회를 주민, 구청, 보건복지부, 시민단체, 외부전문가 30여명으로 구성해 1년동안 60여 차례 회의를 진행시켰다. 파국과 난관이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약 4천억원을 투자해 정신병원 기능은 이전하고, 의료복합단지를 짓는 것으로 주민동의 82%를 받았다. 정부가 하고 싶어도 주민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걸 님비현상이라고 한다. 갈등이 심각해졌을 때 주민들이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고, 이를 챙겨주고 고민을 함께 하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다는 해법을 배운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갈등관리 기본법을 만들었다. 비록 법안 통과는 못했지만 정치권 내부 컨센서스를 만들었고 국립정신병원 사례는 모범적인 공공갈등 해결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외에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과 다문화 여성을 위한 세종한글학교 지원,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의 교육강화 프로그램 등이 기억에 남는다.”

- 서울에서 국회의원을, 중앙정치권에서 차관을 지냈다. 하지만 2008년 총선 당시 안동출마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역민들은 시간이 흐른 2016년에 왜 안동출마를 결정했느냐? 그 계기와 동기에 궁금증을 느끼고 있다. 왜 안동 출마인가?

“2008년 초에 안동에서 출마를 하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아직 고향땅에서 정치를 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고향의 품이 따뜻하겠지만, 아직은 신인에 불과한데다가 서울에서 정치 경험을 쌓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그 후 서울에서 당선되었고, 또 공천배제도 당해보았고, 당의 요청으로 구청장에 출마해 낙선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항심과 단단함을 배우게 됐다.

지난해 출향선배들로부터 이제는 고향 안동을 위한 봉사를 적극 검토하라는 조언이 많았다. 혹시 고향 품으로 도망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합리적 보수정신으로 민주적 정치 경험들을 안동에서 제대로 풀어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어졌다. 안동에 와서 40대, 50대를 선후배들을 만나보니 다들 답답해하고 있었다. 젊은 세대들에게 사회활동 참여공간과 통로가 필요한데 그걸 연결하고 뚫어줄 수 있어야 활력이 생긴다고 보았다. 현장에서 젊은이들의 요구를 해소시켜 줘야 하는데.... 이 역할을 자임하고자 한다. 안동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뒹굴고 토론하는 정치의 하방(下放)운동이 절실하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누구는 세대교체에 앞장서는가 묻는다. 그건 아니다. 선배세대의 경륜은 큰 울타리가 돼 주는 것이고, 그 안에서 젊은세대의 역동성이 맘껏 펼쳐지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징검다리, 또는 사다리의 역할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주로 서울에서 활동했다. 물론 2000년 안동총선 때 권정달 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지역 선배 정치인들과의 유대 관계는 어떤가.

“지역 선배 정치인들의 공로와 역할을 높게 평가한다. 모든 분들이 각자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그때 그때 시대적 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셨다. 권정달 총장님은 80년대에 안동의 지도를 바꾸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저가 안동정치와 인연을 맺게 해준 분이다. 그 과정에 대해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김길홍 전 의원님과도 일을 해보았다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따뜻한 분이시다. 김광림 의원님은 학산회라는 모임도 같이하고 있으며 추진력이 좋은 분이다. 권오을 전 의원은 전국적으로 좋은 평가는 받고 있는 분이셨다. 다 인연이 있다. 우리 정치에 기여하신 분들이다. 하지만 이제 후배정치인으로서 저의 역할도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기존정책으론 도심활성화, 서민 먹고사는 과제 해결 어려워... 전면수정할 때

- 선배정치인들에게 도전하는 입장에서 지금의 안동 정치문화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말해 달라.

“최근 이런 얘기를 종종 듣는다. 안동정치문화가 너무 소수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안동지역이 장유유서 정신이 강한데다가, 안동의 긴급 현안사업이 많다보니 지도자들이 방향을 먼저 던지고 이끌어가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고 본다. 예를 든다면 어떤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 늘 공청회를 열게 된다. 그런데 이 공청회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불만이 높다. 참석한 주민은 동원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 주인의식을 갖지 못하게 된다. 작은 사안 하나에도 공론의 장을 만들어 주민들이 이야기를 하도록 해줘야 한다. 좀 더 성숙된 민주사회로 가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는 것이다. 아고라 광장처럼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정치문화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한 단계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시민참여이다. 결국 시민이 주인되고 시민이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정치권이 그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급정보이든 지역의 할 일 이든 시민에게 화두를 던지고 표현하게 만들고 그것이 쌓이다 보면 참여하는 대중정치가 정착하게 된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는 정착되고 있는데 왜 우리지역은 못하고 있는지를 답답해하시는 것 같다.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분기별로 두 번 정도는 이런 공론장을 열 것이다. 그래야 시민이 주인되는 공동체 안동, 시민이 주인되어 함께 사는 안동이 실현될 수 있다. 안동에서 제가 실현하고자하는 정치가 바로 이것이다.”

- 지금의 안동지역 화두는 ‘신도청을 맞은 지역발전론’, ‘민생경제의 활성화’, ‘미래 안동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등이다. 지역의 활로, 비전에 대해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도청신도시에 대응하는 안동문화권의 상생전략이고, 안동의 긴급한 발전전략 재수립이다. 먼저 안동권의 상생전략을 말해 보자. 도청신도시 건설 로드맵을 보면 2단계인 2020년까지 4만4천명이 살 수 있는 신시가지를 건설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안동․예천이 선도적으로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는 게 보이지 않는다. 전남과 충남의 전례를 밟아선 안 된다. 안동과 예천이 공생 발전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칙을 합의해 내야 한다. 원칙을 갖고 정책협의를 통해 시군통합으로 가는 길이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신도청시대를 맞아 그동안의 대구중심의 행정, 경제, 교통 등 모든 관계망을 안동중심로 재편시켜 나가야 하는데, 그런 절박한 준비가 안 느껴진다. 안동을 중심에 놓고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낙후된 경북북부의 발전을 견인해야 하는데 국가물류산업단지를 만들며 6차산업을 준비해야한다. 경북북부의 중심도시를 넘어서서 경북의 중심에서 서울~대전~대구~부산을 잇는 중추적인 거점도시로의 큰 청사진이 필요하다.

또한 안동의 실상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면이 많다. 지자체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는 경북에서도 22위다. 개인생산성이 너무 낮다. 상대적으로 시민 삶의 질이 떨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안동도심은 읍면단위의 농촌경제를 기반으로 지역경제가 지탱되고 있는데 이제는 한계에 온 것 같다. 안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숙박시설이 부족하여 스쳐 지나가는 관광으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안동문화관광지를 활성화하여 머룰러 가는 관광으로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이제는 도시소득으로, 시민소득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게 할까 하는 철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 그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적정 규모의 사업에 대해 획기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인가.

“2019년에 기차역사가 옮겨지면 철도부지가 5만평 넘게 나오는데 이곳은 원도심활성화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땅이다. 시민들은 무슨 계획이 있는지 잘 모른다. 도심에 살고 있는 상인과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는데 몇몇 학자들이 개발계획을 짜내는 건 곤란하다. 기차역 근처는 오래전부터 슬림화되어 컴컴하다. 이곳에 왜 자꾸 공원 같은 걸 만들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여론이 많다. 십분 쯤 외곽으로 나가면 온 사방이 시골풍광이며 고택이 즐비하다. 도시접근이 용이한 이곳에는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이 뭔가를 직접 들어봐야 한다. 정주인구가 늘어나야 원도심이 활발해지는 것 아닌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공론화할 수 있도록 안동시가 주관하고 정치인들이 뒷받침해 줘야 한다.

요즘 도시재생사업이 거론되는데, 작은 사업을 통해 조금 활성화시킨다는 취지이다. 나는 재생이 아닌 재활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도시발전방향이라는 큰 과제를 놓고 공론화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예를 하나 더 말해 보자. 지금 70보병사단 부지 13만평 정도가 공유지로 남아 있다. 이걸 어떡할거냐? 옥동과 송현을 거쳐 안동도심과 이어주는 공간이 공터로 남아 있다. 개발하는 걸 두려워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정치인은 이런 문제를 공론화시켜 내야 한다. 없다. 수상동 공단단지 이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동을 제대로 재활시키려면 종합적인 도시재활계획을 시민들에게 솔직하게 제안하고 토론하게 만들어야 할 때다.”

- 내년 20대 안동총선에서는 실제 선거보다 새누리당 내의 공천 즉 경선경쟁이 치열해질 듯하다. 조기과열 조짐이 일렁거리고 있다.

“경선 룰에 대해선 누구도 예측이 어렵다. 국민과 당원의 마음이 함께 반영될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을 개혁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여․야가 뼈를 깎는 자기개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 방향은 뭘까? 바로 국민의 마음을 반영하는 공천제도로 나타날 것이다. 당원의 목소리를 반영하되 본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민의 참여를 더 높일 것 같다. 합리적인 경선 룰이 만들어져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으로 본다. 나는 젊은 열정과 경험으로 안동의 새로운 발전동력, 시민참여정치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데 모든 것을 받치겠다는 각오이다. 시민들이 신바람 나게 참여하는 새 정치, 젊은 정치, 도전 정치, 시민과 함께 꿈꾸며 함께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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