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김관용 도지사 취임 후 급물살 탄 도청이전
김 지사, “경북의 대도약 반드시 이뤄낼 것” 기염
2006년 김관용 도지사 취임 후 급물살 탄 도청이전
김 지사, “경북의 대도약 반드시 이뤄낼 것” 기염
  • 유경상 기자
  • 승인 2016.02.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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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이전 효과, 대화합과 교통망, 신산업단지에서 先 기대

경북도청의 안동지역 이전이 시작되면서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국가적으로는 경북 신청사가 정부청사인 세종시와 108km 떨어진 동일 위도 상에 위치하게 되어 동서발전 축을 형성할 수 있게 됐다. 소위 한반도 황금허리 경제권이다.

♦경북도청 신청사 조감도.

경북도는 강력한 허리경제권을 만들고 이를 통해 수도권과 남부권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까지 감당해 국토균형발전에도 기여하겠다는 구상이다.

가장 먼저 교통망을 구축한다. 상주~영덕을 연결하는 동서4축 고속도로는 올해 개통될 예정이다. 세종시와 신도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노선 선정을 위한 사전 조사 중이다.

철도는 중앙선 복선전철이 2018년 개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중부내륙고속철도 사업은 중앙정부와 협의 중에 있다. 여기에 신도청과 포항을 연결하는 국도가 추진되는 등 신도청을 교통의 요충지로 만들어 간다.

자립기반 조성을 위한 대표산업 육성도 서두르고 있다. 경북바이오산업단지를 확대해 국가산업단지로 발전시키고 전남 화순과 함께 백신산업 클러스터도 조성한다.

김관용 도지사는 “경상도 700년의 영광과 자존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신도청시대, 새로운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치게 되었다”며, “대화합으로 경북의 대도약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경북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충숙왕 원년인 1314년에 이른다. 이전까지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8도제가 시행되고 이때부터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 경상도로 확정됐다. 경상도의 명칭과 유래가 모두 경상북도에 있는 셈이다.

경상도는 1407년(태종7년)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로 나눈 이후 합치고 나누기를 거듭하던 끝에 1594년(선조 26년)에 다시 합쳐 성주 팔거현(현 칠곡)에 경상감영을 두게 된다. 1599년 안동으로 이전했던 경상감영은 1601년 지금의 대구로 옮긴 후 계속 머물게 됐다.

경상북도로 부르게 된 것은 1896년(고종33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부터다. 1910년 경상북도 청사로 개칭했고, 대구 중구 포정동(현 경상감영공원)에 청사를 뒀다.

경북도청은 1966년 포정동시대 70년을 마감하고 산격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산격동 청사는 반세기 동안 대구 섬유, 구미 전자, 포항 철강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어오며 대구경북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다했다.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도청이전은 2006년 민선4기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취임으로 대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김 지사는 취임 후 곧바로 도청이전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도의회는 만장일치로 조례를 제정해 도청이전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경북도청 이전 문제는 1981년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돼 경상북도에서 분리되면서 불거져 나왔다. 관할구역 불일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중앙정부의 이전불가 방침에 따라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잠잠하던 목소리는 30년 만인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공론화됐다. 도의회에서 도청이전특위가 구성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995년 민선단체장 시대가 열리고 1997년에는 도청이전실무기획단이 구성되면서 다시 불이 붙는 듯 했으나 도청이전의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난했다. 도청이전은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의 단골공약이 됐고 2000년에는 급기야 시‧도 통합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도청이전은 2006년 민선4기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취임으로 대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김 지사는 취임 후 곧바로 도청이전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도의회는 만장일치로 조례를 제정해 도청이전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후보지 공모에 신청서를 낸 곳은 안동~예천을 포함해 모두 11개 지역이었다. 평가단은 시군 추천 23명과 지역 연고가 없는 전문가 60명으로 구성해 원천적으로 시비를 차단했다. 김 지사도 이전지가 확정될 때까지 15차례의 회의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후보지 확정은 경찰 입회 아래 결정됐으며 2008년 6월 8일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일대가 최고 점수를 받아 최종 결정됐다.

안동에 들어서는 경북 신청사는 지리적으로 명당에 손꼽힌다. 문수지맥의 지기를 품은 검무산, 호민지와 휘돌아나가는 낙동강 등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세이다.

해발 332m의 검무산 자락에 들어선 경북 신청사는 2011년 10월 착공해 2015년 4월 완공했다. 신청사는 전형적인 전통한옥의 모습을 띠고 있다. 65만 장의 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에는 도민 12,896명의 이름이 새겨진 기와도 있다. 회랑, 솟을 대문, 정원 등 건물 배치는 전통 건축 양식에 따랐고 시설물 명칭도 안민관(도청), 여민관(도의회 청사) 등 전통의 의미를 담았다.

도민을 위한 시설물이 신청사 주 건축물 연면적의 1/3이 넘는 점도 자랑이다. ㎡당 건축비도 최근에 지어진 타 시도의 청사에 비해 가장 저렴하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뿐만 아니라 친환경 최우수등급, 에너지효율 1등급, 초고속정보통신 1등급이 말해 주듯이 최첨단기술이 접목되어 국내에서 으뜸가는 녹색 지능형으로 인정받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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