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바다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 정순임
  • 승인 2009.02.10 13: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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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딸래미를 데리고 안동으로 돌아온 지 꼬박 십년이 지났다.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릴 때는 밥 먹는 것도 잊었던 큰아이는 미술을 시켰다.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고, 성격도 좋아 말썽 한 번 없이 자라주는 아이에게 늘 감사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보내야 했을 때, 아이는 너무 힘들어 했다.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철저히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는 학교, 두부모 자르듯 성적으로 잘라 진학할 학교를 결정하는 안동은 고교 등급제 사회였던 것이다.

그림을 잘 그려도 그것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일단 어느 학교 교복을 입느냐에 따라 아이들을 보는 시선은 달랐다. 그렇게 마음 아파하는 아이를 ‘괜찮다, 엄마는 우리 딸이 멋진 사람인 줄 안다’고 달래 성창여고에 보내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미묘한 말들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많이 애써야 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등급제가 올바른 선택인지 많이 생각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흘러가고 있는 수월성 교육이라는 강물이 소수의 아이들에게는 바다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아니 바다로 가는 가장 빠른 운하를 놓아주는 일일 것이다.

대다수 아이들이 길을 잃고 떠돌고 있다

그러나 안동에서 소위 명문이라고 하는 학교들이 전국 상황에서 볼 때 어느 수준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안동에 있는 모든 학교를 통틀어서 명문대학이라고 이름붙인 학교에 몇 명의 아이들이 진학하고 있는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행복한지, 과연 그들을 위해서 대다수의 아이들이 바다로 가는 길을 잃고 떠돌게 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

나는 지역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시급하게 바꾸어야 할 교육 문제는 등급제의 폐지라고 생각한다. 등급제는 철저히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제도이다. 자기만 잘 하면 되는 일이라고 밀어붙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은 빈익빈 부익부를 극대화시켰고, 학교가 아닌 장으로 이관된 교육은 과외비를 많이 투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기회를 주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전반의 문제이고 그 속에서 안동 또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 현재 고교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한 한두 도시에 불과하다. 그 정점에 안동이 있다. 안동은 지방 소도시이다. 전국의 도시를 등급으로 매긴다면 중위권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하위권의 도시에서 더 하위권의 아이를 양산하고, 그 아이들의 삶을 바다에서 자꾸만 멀어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큰아이가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작은아이는 대안학교에 보냈다. 언니랑은 달리 예민하고, 일률적인 학교라는 틀에 얽매이지 못하던 작은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멀리 전남에 있는 대안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다니던 학교는 중퇴하고 다시 1학년이 되어야 하는 상황, 일주일 동안 고민하던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

2년을 전남에서 생활하던 아이가 2008년 4월에 중학교 검정고시를 쳤고, 8월에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리고 2008년 10월에 자기가 하고 싶은 디자인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에 수시로 합격했다. 내가 돈이 많아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기에,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믿었기에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정신문화의 수도, 특성교육이어야 가능하다

그러면서 나는 ‘안동에서도 가능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꿈꿔 보았다. 우리는 산업혁명 시대에 나서 그 속에 살고 있지만, 선각자들은 이미 전 세계가 지식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대량생산이 목표였던 시대에는 자동화기계를 보조할 수 있는 획일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다.

그러나 지식혁명은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지금 사회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가진 독창적인 사람을 필요로 한다. 서울로 집중되고, 획일화된 교육이 아니라 교육 지방자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안동만의 특성을 살린 교육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여행을 갔다가 돌아 올 때면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문구가 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타지에 사는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구이다. 그러나 여기저기 남아 있는 전통 마을과 탈춤 축제, 서원과 몇몇 이름난 유학자만을 떠안고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공허한 외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정신문화는 건물만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이어진다. 거기에 합당한 교육이 밑받침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이미 단절되어 버린 옛 정신을 붙잡고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바다로 가는 ‘길’ 사랑하도록 만들자

가장 가까운 시대 선조들의 삶의 근간은 유학이었다. 안동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프리미엄이 유학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가르쳐야 한다. 모든 과정을 옛 방식으로 되돌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문교육을 특성화시켜 더 많이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천자문부터 사서삼경까지 12년의 정규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서 안동에서 학교를 나온 아이라면 누구나 한문에 일정정도 소양을 가지게 한다면 그 아이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지 힘이 되리라 믿는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듣고 감동했던 말이다. 이제 나는 ‘가장 안동적인 것인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순임
바다는 넓고,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 물방울들이 온 길은 다 다르다. 다른 길을 따라 온 물들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에 바다는 아름답다. 특정한 강폭을 넓히고, 다른 물들의 진로를 막고서 먼저 바다에 도착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바다가 아니라 바다로 가는 길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그 속에서 행복하기를 원한다. 정신문화의 수도이고 싶은 도시, 안동에서부터라면 가능한 일이다.

<이 글은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119호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재편집하여 게재한 것입니다.>

[정순임은 1967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옛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있어 민속학과에 진학했고 198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외면하지 못해 기층 민중들의 삶을 고민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내일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결국 선조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서른여섯 살에 한문학 공부를 시작했으며 죽는 날까지 한문과 함께 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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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개구리 2009-02-19 13:55:29
바다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오랜만에 글로 만납니다.
잘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