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뿌리는 그림자가 없다
나무뿌리는 그림자가 없다
  • 유응오 불교투데이 편집장
  • 승인 2009.01.22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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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인다르마 - 빔 벤더스의 <소울 오브 맨>

스킵 제임스의 공연 모습.

KKK단과 흑인침례교도의 유일신은 같은가?

종교는 민초 고통 치유하는 약사여래불돼야

'나무뿌리는 그림자가 없다.'

빔 벤더스의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The Soul of A Man)>을 다 보고 나서 읊조린 아프리카 속담이다.

달라이 라마의 삶을 그린 <쿤둔>을 감독해 불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마틴 스코세지가 6명의 감독에게 블루스 음악의 발자취를 좇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제안해 이 영화가 나왔다고 한다.

총 7편의 <더 블루스> 시리즈 중 가장 돋보이는 수작이 바로 <소울 오브 맨>이다. 이미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통해 음악 다큐멘터리가 다다를 수 있는 한 지경을 보여준 빔 벤더스의 영화답게 <소울 오브 맨>은 관객들을 블루스의 끈적끈적한 선율에 빠지게 한다. 영화는 심금을 울리는 블루스의 곡조와 그 곡조만큼이나 곡절(曲折)이 깊은 삶을 산 뮤지션 블라인드 윌리 존슨, 스킵 제임스, J. B 르누아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빔 벤더스 감독은 실제 자료화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극적인 구성에다가 중간 중간 재현 화면과 역사적 사건들을 담고 있는 현장 기록화면을 삽입했다. 그런가하면, 이들 노래를 리메이크해 부르는 후대 뮤지션들의 공연장면을 집어넣어 트리뷰트의 의미도 부각시켰으며, 이들이 살다간 시대의 정황을 상세히 묘사해 이들이 노래한 곡들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명징하게 각인시켜줬다.

영화 속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모습.
< 소울 오브 맨>의 시작은 1977년 나사의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가 지구를 벗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보이저호에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인들에게 인류의 문명을 담았는데, 그 중에는 윌리 존슨의 곡〈Dark was the Night-Cold was the Ground>이 들어 있었던 것. 윌리 존슨의 이름 앞에 붙는 블라인드(Blind)는 바로 장님을 뜻하는 말. 윌리 존슨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계모가 화풀이로 쏟은 양잿물에 눈이 멀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윌리 존슨은 스킵 제임스와 J. B 르누아르의 음악과 삶을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윌리 존슨의 음성은 실제가 아니다. 고인(故人)의 목소리를 담당한 이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 역할을 맡아 유명한 로렌스 피시번.

윌리 존슨은 자신이 눈이 멀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운이 없었다”고 담담히 말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운이 없던 이가 비단 자신뿐만이 아니었다고 덧붙이면서 스킵 제임스를 소개한다. 제임스의 이름 앞에 붙는 스킵(Skip)은 ‘건너뛴다’는 뜻이다. 제임스가 스킵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것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보헤미안적 기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스킵 제임스는 불후의 명곡들을 녹음한 뒤 단돈 40달러를 받고 잠시 종적을 감춘다. 그러다가 60년대 블루스가 붐을 이룰 때 다시 나타나 제 몸을 태워 불을 밝히는 촛불처럼 영혼을 다해 노래를 부르다가 끝내 숨을 거둔다.

부연 설명하자면 스킵 제임스는 1902년 미시시피 벤토니아에서 태어났으며 기타와 피아노에 능통했다. 일명 벤토니아 사운드를 독창적으로 구사했다. 1920년대 멤피스에서의 거리 음악 생활을 지나, 1931년 파라마운트사에서 앨범을 제작했지만 회사의 파산으로 곧 잊혀졌다. 그 뒤 음악계를 떠나 침례교회 목사가 돼 1960년 초까지 목회 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1964년, 존 파헤이가 병원에 있는 그를 찾아냈고, 포크 페스티벌과 블루스 콘서트에 참가하면서 그의 이름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됐다. 그의 대표곡 중 〈Devil Got My Woman>은 로버트 존슨의 〈Hellhound on My Trail>의 기초가 됐고, 〈I'm So Glad>는 에릭 클랩튼이 소속되어 있던 로큰롤 그룹 크림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됐다. 그는 1969년 암으로 사망했다.

스킵 제임스와 함께 중층구조를 이루면서 영화 내내 소개되는 또 하나의 뮤지션. J. B 르누아르이다.

불루스계의 마틴 루터 킹으로 불리는 J.B 르느와르
존 메이올의 노래 〈J. B 르누아르의 죽음>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그는 1929년 미시시피 몬티첼로에서 태어났다. 1954년 〈Mama Talk To Your Daughter>를 발표하면서 블루스계의 명인으로 떠올랐다. 그는 〈Vietnam Blues>처럼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을 많이 발표해 블루스계의 마틴 루터 킹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영화는 그렇게 세 명의 뮤지션의 삶과 그들이 남긴 음악을 소개하면서 막을 내린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영화의 제목에 다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블루스'라는 음악은 '영혼의 소리'라는 것. 영화 속에 나오는 세 명의 뮤지션의 삶과 노래는 구슬프다 못해 처연하다. 마치, 가슴 저 밑바닥의 슬픔마저도 다 토해내고, 퉁퉁 부은 눈으로 웃는 이의 얼굴처럼.

스킵 제임스의 노래는 블루스가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흑인노예들의 노동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생의 비애로 가득 차 있다.
블루스 계의 마틴 루터 킹이라고 불리는 J. B 르누아르의 노래는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가 강하다.

특히 J.B 르누아르의 노래가 흐를 때 감독이 자료화면으로 쓴 것은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 ‘KKK단’의 모습이었다. 하얀 복장을 하고 십자가 형태로 행렬을 지어 걷는 이들의 모습은 강물에 몸을 씻어 죄 사함을 받는 흑인 침례교도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KKK단들이 믿는 유일신과 흑인 침례교도들이 믿는 유일신은 그렇게 너무나 달랐다.

윌리 존슨은 ‘종교를 통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한다. 윌리 존슨에게 삶의 안식을 준 것은 블루스와 신앙심뿐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음악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블루스의 뿌리는 어느 부분 가스펠송이라고 할 수 있다. 고역의 노동을 해야만 하는 흑인노예들에게는 그 지옥 같은 삶을 잊게 해줄 것이 필요했다. 쇠사슬에 발과 팔이 묶인 채 그들은 노예선에서 분비물로 범벅이 돼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헐벗은 가난의 삶 속에서 꿈꾸는 피안세계에 대한 동경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본향(本鄕)에 대한 그리움. 그 간절한 심정이 담긴 게 바로 블루스였던 것이다.

미국 현대사에서의 기독교 역할을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사에서의 불교 역할을 떠올리게 됐다. 불교는 과연 신라와 고려와 조선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신음하는 민초의 아픔을 달래주는 관세음보살을 역할을 다했는가? 그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이 뇌리에 스쳤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입니다.
-<숫타니파타> 142


소동파는 ‘소리가 거문고에 있다 하면, 갑 속에 놓았을 땐 왜 울지 않나, 소리가 손끝에 있다 하면, 그대 손가락에선 왜 소리가 안 들리나’라고 읊은 바 있다.
영혼의 소리는 목청에서 나오는 게 아닐 것이다. 거문고 소리가 슬픈 것은 수많은 누에고치의 순절 때문이라고 했던가.

객혈하듯 쏟아낸 찬란한 슬픔의 노래라는 점에서, 그리고, 세월을 초월해 메아리치는 울림이라는 점에서 흑인들의 블루스도 거문고 소리도 다르지 않았다. 고통의 궁극에 빚어낸 구원 혹은 깨달음의 메시지. 그래서 삶은 계속될 수 있다. 영화는 이를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나무뿌리는 그림자가 없다’. 흑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오면서 가져간 것은 비단 몸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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