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자유자재로…
천년을 넘나드는 수상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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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넘나드는 수상뮤지컬
  • 유경상 기자
  • 승인 2011.06.02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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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서호에서 펼쳐진 인상서호(印象西湖)를 가다

 

2,100년 전부터 항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의 6대 고도(古都)이면서도 절강성의 성도(城都)이다. 9세기부터 237년 간 14명의 황제가 항주를 수도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도시산수실경 수상뮤지컬 ‘인상서호’    

 2,100년 전부터 항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중국의 6대 고도(古都)이면서도 절강성의 성도(城都)이다. 9세기부터 237년 간 14명의 황제가 항주를 수도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중국 절강성(浙江省․저장성) 항주(杭州․항조우)의 서쪽에는 서호(西湖)가 자리를 잡고 있다. 중국의 미인 서시(西施)와 견줄 만큼 아름다워서 붙였다는 설이 널리 통용되며 서자호(西子湖)로 불리기도 한다. 서호를 중심으로 한 자연경관은 얼핏 보기에도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호수의 총면적은 60.8㎢이며, 수역의 면적은 5.66㎢로 한눈으로는 전체 전경을 담아내기 힘들 정도이다. 서호 안팎의 유명한 명소 10가지를 서호 10경(西湖 10景)이라 부른다.

2007년부터 이곳 서호에서는 연중 10개월 동안 매일 밤이 오면 산수실경 수상뮤지컬 ‘인상서호(印象西湖)가 공연 중이다. 올해까지 약 5년간 장기 초대형 수상 버라이어티쇼가 펼쳐지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예모(張藝謀 ․ 장이머우)가 2005년부터 3년간 준비기획한 자연실경 뮤지컬이다. 이제 인상서호는 항주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자리를 잡았다.

인상서호를 관람하기 전에 3개의 코스를 계획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장예모 감독이 중국의 방방곡곡에서 멀티플레이 식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자연실경 인상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인상서호의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위해서다. 대낮의 서호 풍경을 둘러보는 것과 인상서호 공연 실무진과의 면담, 실제 공연관람 등이다.

지난 4월 6일 오전 11시. 서호 입구는 서둘러 방문한 중국관광객들로 인해 출입구부터 발 디딜 틈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쌍쌍의 연인들과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 노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단위에서부터 붉은 깃발을 앞세운 단체관광객들의 형형색색 옷차림이 요란스러웠다. 1990년 중반 유홍준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출간된 직후 우리나라 전 국토를 종횡무진 하던 문화재 답사 열풍을 떠올릴 정도이다.

◆낮에는 자연실경 호수, 밤에는 조명과 음향 천국

입구에서부터 약 15분을 걸어 도착한 선착장에서 호수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유람선을 탔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서호와 서호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는 유람선에서 바라본 주변경치는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호수의 운치를 조화시킨 듯 했다. 호수 안에는 풍성하게 우거진 식물원과 연못, 산책로, 정자 등이 관광객의 눈요기를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항주시 서호구 양공에 위치한 ‘항주인상서호문화발전유한공사(杭州印象西湖文化發展有限公司) 의 공무와 홍보 담당자들을 만났다.

인상서호(印象西湖)는 항주시가 주관한 가운데 민간기업의 후원협조로 유한공사를 설립해 장예모, 왕조가, 반약 등 3명의 감독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약 3년간 총괄기획 했다. 제작비용은 약 1억위엔(200억원) 정도가 투입됐다. 총 출연배우는 약 300명 공연스탭진은 1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 각지의 예술학원에서 양성된 20대 초반의 배우를 선발해 ‘인상서호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시킨 뒤 실제 공연에 참가시키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성수기에는 1일 2회, 겨울 비수기에는 1일 1회 공연이 약 10개월 동안 펼쳐지고 있다.

◆ 물위를 걷는 환상의 수상뮤지컬

인상서호는 유일한 도시산수(都市山水) 실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수상뮤지컬이다. 항주의 서호라는 자연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수상(水上-물위)무대를 설치해 놓았다. 서호 호수 안에 물이 발목 높이로 올라오게끔 무대를 설치해 놓고 배우들이 마치 물위를 걸으면서 연기를 하는 모습은 과히 장예모 감독다운 발상 그 자체였다. 동시에 호수 저 끝 멀리 버드나무 실경에서부터 무대 가까운 자연실경까지 아름다운 천연색의 조명 빛이 어두운 밤을 밝혀주고 있다.

즉 낮에는 그대로의 자연경관을 보여주지만 어둠이 밀려들어 수상 뮤지컬이 시작되는 시간이 오면 그 조명 빛을 의도한대로 발산해 주는 은폐식이다. 중국 강남의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천고에 전해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은 야색(夜色)의 기억으로 연결되고 있다. 아름다운 낮의 서호는 그대로 있지만, 밤의 서호는 아름다운 무대와, 빛과 소리로, 스토리와 추억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관중석도 은폐식으로 제작돼 있다. 일명 산수극장(山水劇場)이다. 독특한 수축계단형 관중석으로 설계되어 낮에는 극장의 관중석이 주변환경 속으로 숨겨진다. 서호의 관광지 경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관중석이 펼쳐져 황홀한 산수극장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인상서호 제작팀에서는 이를 ‘유일한 도시산수 실경연출’ 이요, ‘독특한 은폐식관중석’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천고에 전해지는 전설이 기억 속으로


이윽고 공연시간이 다가왔다. 호수에 조명등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바람결에 묻은 빗방울이 살짝 흩뿌려지고 있었다. 500석이 넘는 관중석이 아직은 썰렁했다. 날씨 탓인가? 하는 우려는 공연시작 15분을 남겨두고 깔끔히 씻겨졌다. 유럽인과 미국인 관람객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장예모 감독은 인상서호를 ‘천년을 넘나드는 뮤지컬’로 표현한다. 내 앞에 펼쳐진 장면은 천년역사의 서호이다. 백거이(白居易), 소동파(蘇東坡), 소소소(蘇小小), 악비(岳飛), 임포(林逋 )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 백랑자(白娘子)와 허선(許仙)의 전설이 인간세상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천당에서 선학이 인간세상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새하얀 날개들을 퍼득이면서....

인상서호는 전체 5부로 구성돼 있다. 만남(相見)-사랑(相愛)-이별(離別)-추억(追憶)-인상(印象). 항주의 전통 설화 ‘백사전(白蛇傳)’을 모티브로 잡았다고 한다.

한 마리의 백학이 훨훨 날아와 젊은 서생으로, 또 한 마리의 백학은 아릿따운 여인으로 변한다. 천년의 아름다운 호수 위, 운무가 자욱한 가운데 한눈에 반한 허선과 백량자는 백년가약을 맺는다. 영원하리라 맺은 연분은 천년을 갈 수도, 한 순간일 수도 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나 자유자재로 노닐듯, 천지와 남녀의 사랑은 어수지환(魚水之歡)을 이룬다. 그러나 사랑은 불꽃처럼 한순간이고, 요란한 우레 소리는 두 사람을 갈라 놓는다. 이별은 깃털처럼 결백하고 아픔을 동반한다. 만남은 이별을 동반한다.

첫사랑을 다시 찾아온 서생 백학은 꿈속처럼 아름다웠던 이 절경을 바라본다. 이미 떠나갔지만 두 사람을 위해 내려주는 비를 맞으며 사랑의 맹세를 했던 조각배를 탄다.

서호에서의 사랑은 물을 가볍게 밟으며 먼 곳으로 사라진다. 서호에서의 사랑은 미풍으로, 무리지은 물고기로, 하나의 점으로, 선으로 다시 다가온다.

인상서호의 줄거리는 모호한 환몽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인상(印象)에 남을 뿐이다. 너무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냥 이미지로 나의 인상 속에 남겨두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냥 소리 없는 추억으로, 가벼운 소식으로, 조용히 남겨두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냥 두 눈을 감고 생각해 달라고 말한다. 서호에 비가 오고 있다고 전해줄 뿐이다. 그냥 인상 깊은 한 편의 자연실경 수상뮤지컬을 보았었노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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