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정치, 세상의 흐름을 읽자
팬덤 정치, 세상의 흐름을 읽자
  • 박정열(문화콘텐츠기획자)
  • 승인 2023.03.22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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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열의 세상읽기 ②]
대한민국 정치는 구태정치와 레거시 미디어 연합 對 초연결정치 연합의 전쟁 양상
한국 정치 미래, 변화하는 세상 속도 얼마나 빨리 따라갈 것인가로 결정난다
박정열(문화콘텐츠기획자)
박정열(문화콘텐츠기획자)

팬덤(Fandome: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 현상은 초연결 시대에서 일어나는 특징적 문화현상이다. 특정 연예인들이 팬들의 인기를 업고 스타로 떠오르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되겠다. 물론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이러한 현상은 존재했지만 오늘날엔 과거와는 달리 양방향 소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소통되고 공유되는 세상에서 팬덤 문화가 연예계에만 존재하리란 법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모든 방향, 모든 세대로 천천히 확산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서도 예외일 순 없다. ‘팬덤 정치’란 단어가 공중파 방송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주로 여당인 국민의힘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할 때 많이 쓰인다. 왜 그럴까?

먼저, 더불어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 선택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과거의 정치인들처럼 3선, 4선을 한 중진 의원들이 아니라, 대중적 인기와 본인들만의 고유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성장한 정치인들이다. 고민정, 장경태, 박찬대, 김남국 등의 의원들이 있고, 최고위원은 아니지만 박주민, 최강욱 의원도 있다.

모두 막강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막강한 팬덤 정치인은 역시 현재 야당 대표인 이재명이다. 이재명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선명하고 강한 행정으로 대중들에게 열렬한 인기를 얻어 사이다란 별명이 생겼다. 지난 대선에선 겨우 0.78% 차이로 대권 도전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대표적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국적으로 많은 지지그룹이 있는데 대부분 자생적으로 생겨난 그룹들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이재명이 있는 반면 여당에선 이준석 정도의 인물이 있겠다. 비교적 평균연령대가 높은 여당의 정치인들 중에서 이준석을 제외하고선 초연결정치가 길러낸 인물은 없는 것 같다. 현재의 대통령과 핵심 관계자들, 여당의 힘 좀 쓰는 정치인들 대부분이 검사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그들만의 폐쇄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이준석은 분명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고, 결국 토사구팽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여당은 이준석의 사라짐으로 인해 그나마 대중들과 소통하던 창구가 사라지게 된 듯한 모습이다.

야당 정치인들이 보유한 막강한 팬덤은 여당 입장에선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민심이 SNS를 통해 직접적이고 강하게 결집되기 때문이다. 언론에 비치는 여야 정치인들 중 비교적 평균연령대가 낮은 쪽은 야당 쪽이며 이들이 SNS 활동도 더 활발한 편이다. 지지그룹의 평균연령대를 보아도 여당을 지지하는 연령대는 주로 60대 이상이 많으며, 야당을 지지하는 연령대는 30~40대가 많은 편이다.

여당의 입장에선 이러한 지지구도가 지속가능성이나 미래지향적 측면에서 취약한 지점이라 인식할 것이다. 따라서 야당을 비판하는 정치논리의 하나로 ‘팬덤 정치’를 ‘일부 강성 팬들의 과격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라는 비판적 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팬덤정치 혹은 초연결정치는 거대한 흐름이다”

과거엔 신문과 방송이 작품을 만들어내듯 일방적 기획을 통해 대중적 인기가 있는 정치인을 '탄생'시켰지만, 오늘날의 정치인은 스스로의 실력과 비전을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검증받아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다. '탄생'이 아닌 '양육'되는 시스템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네트워크의 트래픽을 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유명 정치인이 되느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트래픽이 집중되어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해서 좋은 정치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트래픽은 단순한 병목현상이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도와 집단지성의 산물이자 민심의 방향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해당 인물이 대중들의 마음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대변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팬덤 정치란 단어는 현재의 여당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겨우 남을 헐뜯기 위한 부정적 용법으로 사용될 단어가 아니며 시대를 대변하는 하나의 거대한 현상적 용법으로 사용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팬덤 정치란 단어가 부정적 의미로 먼저 전파되어 대중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었으므로 ‘초연결정치’란 새로운 단어를 고안해 보았다.

“새로운 과도기, 대한민국”

크게 보면 현재 대한민국 정치는 낡은 탱크를 타고 있는 듯한 구태정치와 레거시 미디어들의 연합, 그리고 수많은 드론을 거느린 이재명으로 대변되는 초연결정치의 연합이 전쟁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저녁 뉴스에 나오는 소식들은 이미 온라인을 통해 먼저 전파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하루 종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내용들을 저녁 뉴스에서 정리하여 보도해 주는 식으로 언론 지형이 변화되고 있다. 기존의 신문과 방송은 ‘재탕’ 신세가 된 것이다.

비교적 온라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년층은 뉴스와 신문의 영향력에 종속되어 있고, 이들이 보수세력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어느 정도 사회경험이 있고 정치와 세상에 관심이 좀 있는 30~40대의 경우엔 온라인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대부분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 현상은 구세대와 신세대의 소리 없는 전쟁에 해당되기도 한다.

정리해 보면, 현재 여야 정치 갈등의 이면에는 SNS와 레거시 미디어의 전쟁, 구세대와 신세대의 전쟁이 숨어있다. 거기에 더해 과거부터 있어왔던 지역감정과 이념대결이 서로의 갈등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20~30대의 성향이다. 이들의 성향은 얼핏 보면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한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들 보다 특정한 사회현상과 디테일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짙다. 케케묵은 이념대결에서 자유로운 세대들이다. 딱딱한 논리보다는 감성에 치우친 정치적 선택을 하며 SNS를 통해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행사한다. 지난 대선에서 이준석을 필두로 한 ‘이대남(20대 남자)’들을 그 증거라 볼 수 있으며,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야구잠바를 입고 어울리지도 않는 댄스를 선보이는 등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 역시 그 방증이 된다.

결국 한국 정치의 미래는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얼마나 빨리 따라갈 것인가에 달려있다. 흔히 요즘 한국에선 정치가 가장 퇴보해있다고 한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필연적 진동이 대중이란 들판을 건너고 정치란 강을 건너 사회 시스템의 핵심 코어에 닿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선 안 된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듯이 시대도 거스를 수 없다. 결국 초연결정치가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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