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8월, 안동은 자연실경 뮤지컬 도시로 변신한다
다가오는 8월, 안동은 자연실경 뮤지컬 도시로 변신한다
  • 유경상 기자
  • 승인 2011.06.20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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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농업, 新문화의 흐름을 눈여겨 볼 때

처음에는 뮤지컬 ‘노국공주’였는데, 뮤지컬 ‘왕의나라’로 바뀌었다. 그냥 한번 불러 보았다. 어감이 상당히 좋다. ‘왕’ 음절에 조금 힘을 주고 천천히 발음을 하며 읽으면 왕왕거리는 소리로 들린다.

90년 4월 스물다섯살에 뒤늦게 시작한 군복무를 무사히 마칠 때쯤인 91년 5월에 당시 노태우정권의 공안통치에 항거하는 분신정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결국 대학재학 시절 활동이 문제시 되어 군수사 당국에 체포 구금되었고 한참 후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92년 초 제대를 했지만, 전공 민속학과로 복학하기 싫어 예천읍내에서 한겨레신문을 돌리며 놀고 있었다. 그 해 겨울, 대선이 다가왔을 때 몇몇 친구들과 ‘당선가능한 야당후보를 찍자’는 운동을 하며 장명국 선생을 만났다. 이후 그 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내일신문을 창간하자고 다짐했다. 창간을 골몰했지만 언론을 너무 몰랐던 스물여덟살에 불과했다.

하여 93년 봄, 언론 일을 배우기 위해 잠시 안동신문사에 입사했다. 원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위장취업(?)인 셈이다. 다시 복학해 주경야독 하던 시절.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이 궁리 저 골몰을 해봤지만 신통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안동성소병원 기획실에 근무하고 있던 박희곤 기자가 내 고민을 눈치 채고 “어- 유 기자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 왔던 거 알아?” 술자리에서 던져 준 그 한마디에 94년 여름 나의 졸업논문 제목은「공민왕의 몽진에 따른 안동지역의 사회문화적 변화 일 고찰」로 정해 졌다. 2~3주 만에 대충 급하게 썼다. 200자 원고 약60~70매가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논문묶음이 지나온 세월 저 뒤 어디쯤에 처박혀 뒹굴고 있을 것이다.

3년이 지난 후, 학과 후배가 현장답사와 기존논문을 종합해 석사논문으로 발표한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2004년쯤인가? 안동시와 안동대 민속학연구소에서『고려 공민왕과 임시수도 안동』이라는 책자로 출판한 것을 눈 여겨 봤던 기억이 겹쳐지고 있다.

아직도 94년 봄여름 언저리쯤 어느 때 읽었던『안동문화』책 속 김호종 교수의 논문이 생각난다. 그 논문은 왜 공민왕이 안동 땅으로 피난을 왔는가를 시대적, 인맥적 측면에서 분석했던 걸로 기억이 든다.

30대 후반까지 사고방식 저 밑바닥에는 이런 경향성이 강했다. 영웅이든 보통인 이든 왜 시대적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까? 하는 한계성에 많이 집착했었다. 왜? 라는 것에 계속 매달렸던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마흔살이 되던 해,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조사관으로 들어가 약 3년간 굵직한 사건들을 재조사하게 됐다.

대표적으로 ‘실미도(부대)사건’을 한 1년간 집중조사하면서 느낀 소회는 이렇다. “왜? 도 중요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라는 더 높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라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진행됐는가? 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한계(극복)보다는 계승(혁신)이라는 관점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런 개인 경험으로 비춰 보았을 때, 이제 안동지역에서는 ‘조선을 넘어 고려 속으로’ 라는 관점의 시야가 필요해지고 있다. 안동지역의 현재를 넓히되 더 심화시키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최성달 작가에게서 배운 작은 화두 중 하나이다. 잃어버린 뭔가를 소중히 찾아 낸 듯, 내 몸에 붙어 있던 한 오라기 머리카락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또한 안동지역사(史)의 계승과 발전은 외부세력에 의해 그 충격을 받으며 새 동력을 키우고 있다. 음험한 소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중반에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살았고, 이제는 고향으로, 지역으로, 농촌으로 돌아온 중년의 귀농․귀촌․귀환세력에 의해 지역은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신농업, 신문화는 이렇게 그 실타래를 풀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가운데를 친환경농업과 바이오, 탈춤과 뮤지컬, 스토리텔링 등이 제몫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

그 흐름 속에서 마치 푸른 강물 속을 유유자적하며 힘차게 요동치는 은빛 비늘 같은 소중한 번쩍거림. 흘러가는 유속에 적응하고 있지만 어느새 흐름의 중심을 만들어내는 꿈틀거림과 뒤 짚기. 그 한가운데를 휘젓고 다닐 새로운 문화의 탄생. 그 시작에 뮤지컬 왕의나라, 부용지애는 무엇인가를 폭발시켜내는 ‘이후’를 기대하고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2011 왕의나라 포스터

 

 

▲ 2011 부용지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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