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의 추억
지난 추석의 추억
  • 정순임
  • 승인 2012.09.28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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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임(한문고전 번역가)

잎들을 버리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능금이 빨갛게 익었습니다. 사과 농사를 지으려면 이 조그만 능금이랑 접을 붙여서 심어야 한다지요.

우리 집 과수원의 원조는 이 나무였던 겁니다. 감나무는 고암이라는 조그만 열매 나무와 접을 붙이고 수박은 박하고 접을 붙여야 병충해가 적다잖아요.

혼자서 무엇인가 되고야마는 것은 없습니다. 함께일 때 함께 할 때 자연이 되는 것입니다. 안 마당 정원에 선 한 그루 능금나무가 조곤조곤 말을 붙이는 바람에 생각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조카들을 데리고 가재를 잡으러 나선 길... 집을 나와 뒷 산 쪽으로 길을 잡아 걸어가노라면 우산서원 강당이 보이는 왼쪽으로 도랑이 돌돌돌 흐르고 있습니다.

문화재 보수 공사로 양 옆으로 돌을 쌓아 예전 자연스런 멋을 많이 잃었지만 도랑을 길게 드리운 너른 바위 중간 중간 고여서 물고기며 가재를 키우고 있는 물은 여전합니다.

극심한 가뭄에 물이 마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피래미들이 삶이 고달플까 걱정이 됩니다.
말라가는 물 속 돌 틈을 뒤집으니 가재들의 세상이 한가롭습니다.

어린 시절 멱을 감다가 심심하면 냇가로 흘러드는 도랑물을 거슬러 올라가 가재를 잡곤 했던 기억을 아이들에게도 물려 줄 수 있어 행복한 한나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물반 가재반인 곳에서 우린 여러 마리의 가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다 놓아 주자고 했더니 서울 사는 이질이 "이모, 우리 어항에서 몇 마리만 키우면 안되요?" 합니다.

당첨 되었습니다. 서울로 갈 놈들 몇 마리를 고른 뒤 나머지는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냇가로 내려갔습니다. 그냥 아이들 데리고 잠깐 놀다 들어가야지 단순한 생각으로 내려간 냇물에는 골뱅이가 지천입니다.

예의 없는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플라스틱 그릇들을 하나씩 들고서 바지를 가짓껏 걷어부치고 냇물로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가재잡기에 이어 골뱅이 건지기 놀이가 시작됐습니다.
"근데, 이모. 얘들은 발도 없는데 어떻게 다녀요?"

이제 다섯살난 이질녀는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듣고 있던 큰 딸래미가 "정빈아, 달팽이도 발이 없는데 잘 다니지? 뱀도 그렇고.. 골뱅이도 그렇게 다니는 거야."

자기 딴에는 진지하게 설명을 합니다. 아이들은 골뱅이 잡기 삼매경에 빠져 하나 둘 물 속에다 몸을 담그고 말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데 "너거 추우니까 집에 들어가, 감기 들겠다." 했더니 "이모, 이제 실력이 늘었으니까 조금만 더 잡게 해주시면 안되요" 이질녀의 애교 썩인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 우리들의 골뱅이 잡기 놀이는 계속됐고 아프면서 냇가로 나다닌다는 엄마 걱정을 듣고서야 끝이 났습니다. 집에 와서 빨간 바구니에 비워 무게를 달았더니 거의 1킬로나 됐습니다. 그 골뱅이들은 어떻게 됐냐구요? 저녁에 삶아 까두었다가 아침에 국이 되었습니다. 큰 냄비로 한 가득 끊인 국은 인기 만점이었고 금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산소에 가는 길 가뭄 때문에 보기 힘든 송이를 만났습니다. 소나무 밑 솔잎을 비집고 머리를 드러낸 송이가 풍기는 향기는 어떤 향수보다도 그윽하고 기품이 있습니다. 가을이면 언제나 송이를 품은 산골이 고향인 탓에 아이들도 전부 송이 맛을 알지만 이렇게 뿌리를 내린 송이를 만나니 신기한 가 봅니다.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이들 손에 들려 집으로 돌아온 송이는 간장에 버무려져 저녁상에 올랐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송이장입니다. 한가위 보름달이 흠집 하나 없이 앞산을 넘어 왔습니다.

마치 처음 달을 본 것처럼 식구들을 불러냈습니다.
"그냥 마루에서 보지 야단시럽게 마당까지 나왔냐" 하시는 엄마도 달을 한참 바라보셨습니다. 손을 모으고-그래야만 소원을 들어 줄 것 같아서요-

'이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저 이제 불혹을 넘긴 나이에 맞게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아름다운 어른으로 살겠습니다. 우리 엄마의 딸, 형제들의 동생이고 누나 언니, 우리 딸들의 엄마, 조카, 질녀들의 고모 이모인 내 자리에서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겠습니다' 한참 동안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엄마, 사진 찍자." 디카를 들고 나온 딸래미에게서 카메라를 받아들고 폼을 잡아 보지만 실력이 모자라 검은 천에 흰 원 하나 덩그러니 잡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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