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마당] ④ 소가 있는 풍경 - 쇠죽
[추억 마당] ④ 소가 있는 풍경 - 쇠죽
  • 김윤한
  • 승인 2009.03.11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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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의 시작

지금은 농사일을 농기계가 대신 하지만 소는 예로부터 밭을 갈고 무거운 것을 옮기는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가축이었다. 소가 없는 농사는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따라서 소를 키우는 일도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의 하나였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사람의 밥을 짓는 것 보다는 쇠죽을 끓이는 일이었다. 어릴 적 곤히 잠들어 있을 새벽녘, 바깥에는 벌써 아버지가 일어나 무쇠로 된 쇠죽솥 뚜껑을 열고 쇠죽을 끓이신다.

쇠죽 끓이기

▲ 쇠죽이 다 익으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김과 함께 쇠죽 냄새가 사랑방까지 스며든다.
밥을 짓는 일이 여자들의 몫이라면 쇠죽은 으레 남자의 몫, 그것도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리고 쇠죽에 함께 들어가는 풀-꼴이라 불렀다-은 으레 아이들의 몫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학교에 갔다 와서는 꼴 한 짐은 베어야 한다.

쇠죽을 끓이려면 먼저 가마솥에 물과 등겨를 넣고 불을 지핀다. 물이 끓으면 여물-작두로 썬 짚들과 들풀이 나는 계절이면 쑥과 같은 풀들도 함께 넣고 다시 끓이면 쇠죽이 완성된다.

쇠죽 아궁이에는 장작이나 농산 부산물인 왕겨 같은 것을 연료로 쓴다. 왕겨를 사용할 때는 주물로 만든 풍구라는 것을 부엌 앞에서 돌려 왕겨가 잘 타도록 돌려야 한다. 그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구수하고도 따뜻한 기억

쇠죽이 다 익으면 비로소 솥뚜껑을 연다. 그 순간 하늘로 솟아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김과 함께 쇠죽 냄새가 사랑방까지 스며든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먹고 싶을 정도로 구수한 쇠죽 냄새.

우리 집 황소가 뒷집 암소와 교미를 하는 날은 그 대가로 암소 주인이 으레 콩을 반 말 정도 보내온다. 그날은 쇠족에 그 귀한 콩도 한 바가지 들어간다. 그러면 쇠죽의 구수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쇠죽을 다 끓이고 나면 아궁이에 고구마나 감자, 땅콩이나 밤 같은 것을 구워먹곤 했는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어머니가 손국수를 밀고 남은 국수 꼬랭이를 불에 구워서 먹었던 기억이다. 과자 이상으로 고소하고 따스한 그 맛.

쇠죽솥과 사랑방

쇠죽을 끓이는 일은 밥을 짓지 않는 사랑방에 군불을 넣는 역할까지 동시에 이루어진다. 아침저녁 쇠죽을 끓이는 탓에 방은 언제나 뜨끈뜨끈했다. 심지어 아랫목은 열기 때문에 거멓게 장판이 탈 정도로 뜨거웠다.

▲ 김윤한 시인
그래서 저녁이면 아이들은 쇠죽솥 방에 모여 추운 몸을 녹이다가 서리를 해서 서느런 무를 깎아 먹던 기억이 선하다. 놀다가 졸리면 내 집 남의 집 가리지 않고 아무 집에서나 자고 가도 흉이 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칼바람이 들판을 쓸고 지나더라도 함께 따끈한 아랫목에 발 넣고 오순도순 정이 넘쳤던 시절. 그 당시 바깥 날씨야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하는 지금보다 훨씬 추웠겠지만 구수한 쇠죽 냄새와 함께 잊혀져가는 그 때의 뜨거운 인정이 사무치게 그립다.

 [김윤한은 현재 안동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시인이자 수필가 등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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