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들빼기 씀바귀에 달래까지... “근데 돌미나리는?”
고들빼기 씀바귀에 달래까지... “근데 돌미나리는?”
  • 임기현
  • 승인 2009.03.13 10:1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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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로 떠난 아내와의 봄나들이 '대왕고들빼기' 만나다

대바구니에 가득 찬 '봄' 해마다 봄볕이 노곤해지는 이 맘 때가 되면 아내는 몸살을 앓습니다. 파릇파릇한 봄나물들의 잔영이 떠올라 못 견디나 봅니다.

“수연 아빠 얼른 일어나. 해가 중천이잖아, 빨리”
“가만, 호미를 어디다 뒀더라...”

평일에 이렇게 늦잠을 자본 지도 오래된 일이라 따끈한 잠자리에 미련이 남아 한 참을 뒹굴거리고 있는 것도 행복입니다만, 그래도 오늘은 아내를 위한 날이니 훌러덩 이불을 걷어차고 기지개를 켭니다. 수연이는 저희 올 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큰 딸입니다. 첫 아이를 낳고부터 저를 ‘수연아빠’라 부릅니다.

해마다 봄볕이 노곤해지는 이 맘 때가 되면 아내는 몸살을 앓습니다. 파릇파릇한 봄나물들의 잔영이 떠올라 못 견디나 봅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벌써 열흘 전부터 노래를 불렀지요. 아내는 주말에 근무를 하고 평일에 하루를 쉬는 직장이라 할 수 없이 제가 하루 연차휴가를 내고 날짜를 맞췄습니다.

호미랑 대바구니를 찾아 챙기고 또 혹시 기대되는 대박(?)을 염두에 두고 여분의 나물 담을 쇼핑백도 챙겨서 어딘가에서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을 봄나물들을 찾아 출발합니다. 아파트 상가에 들러 김밥 두 줄과 음료수 두 개, 조촐한 점심도 챙기고 말입니다.

“어디로 가면 돼?”
“추월 가자”

대답 참 간단합니다. 벌써 어디에 가면 봄나물 무엇과 무엇이 있을 거란 예측이 포함되어 있다는 답변이지요. ‘추월’이란 곳은 여름철이면 가끔 우리 가족이 천렵을 다니는 곳이기도 해서 아마 그 때 눈여겨 봐왔던 것 같습니다. 경상도 땅 안동시 임하면, 반변천 지류가 낙동강으로 흘러들기 직전에 지나는 마을이 추월입니다.

안동시 임하면, 길안강 지류가 낙동강으로 흘러들기 직전에 지나는 마을이 '추월'입니다.

‘돌미나리무침’을 떠올리며 양평 ‘멋쩌리’ 출신 든든한 아내 따라

“오늘 돌미나리 좀 많이 캐자. 고거 초고추장 양념해서 밥 비벼먹으면 끝내 주는데 말이야”
“수연 아빠, 고들빼기 해야 돼. 여름에 보니까 장마로 미나리 있던 자리가 다 쓸린 거 같더라고. 남아 있을라나 몰라”
“그래도 좀 남아 있겠지. 미나리가 거기만 있나 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봄나물이 바로 ‘돌미나리’입니다. 부정적인 아내의 말에 내심 걱정도 되지만 저는 아내의 실력을 믿습니다. 아내는 경기도 양평 출신입니다. 양평에서도 한 참 시골인 지평면 ‘멋쩌리’ 마을 출신의 촌여인네지요.

어려서부터 산으로 들로 물가로 다람쥐마냥 쏘다니며 나물 뜯고 고기 잡고 땔나무도 했다고 합니다. 이건 비밀이지만요, 형님 누님 제 형제들은 제 아내 별명을 ‘빨치산’이라 지었습니다. 제 후배들도 농담으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형수님만 따라가면 산다”곤 하지요. 정말로 여름에는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 반바지 주머니에 대여섯 마리씩 집어넣고 나오기도 하니 ‘빨치산’ 별명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아내를 믿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지요. 분명히 돌미나리 맛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콧노래 부르며 추월로 들어섭니다.

별명이 ‘빨치산’인 아내 ‘대왕고들빼기’를 만나다

“여봐 내가 뭐랬어. 고들빼기 있다”
“어디 어디, 어떤 거야”

바로 이 놈입니다. '대왕고들빼기'지요. 이런 정도 큰 놈으로 너댓 뿌리를 캤습니다.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비닐하우스가 있는 밭둑을 돌아서자마자 아내가 봄을 만났습니다. 봄나물에 눈이 어두운 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는데 당최 구분이 안갑니다. 그 풀이 그 풀입니다. 한참 아내의 실물 비교를 곁들인 설명이 있고 나서야 고들빼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매년 반복하는 저희 부부만의 ‘야외학술세미나’인 셈입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구시렁거리며 아내가 고들빼기 채집에 열중이고 저도 호미를 들고 고수인 아내의 뒤를 따릅니다. 한 참을 찾아 해매니 제법 대바구니 바닥이 가려지고 있는데, 결국 올 것이 왔습니다.

“엄마나 못 살아, 이게 다 뭐야!”
“어머 어머 이게 다 고들빼기잖아. 세상에 빨리 와봐”

아내의 호들갑에 깜짝 놀라 쳐다보고도 저는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합니다. 아내가 비닐하우스 바로 옆에서 무언가를 캐냅니다. 입이 쩍 벌어집니다. 심봤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요? ‘대왕’ 고들빼기 입니다. 꼭 6년근 인삼처럼 생겼는데 한 두 뿌리가 아니라 비닐하우스를 따라 크고 잘고 줄줄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들빼기에 대한 허기는 단 숨에 채워졌습니다. 대바구니로 한 가득 말이지요.

별명이 '빨치산'인 아내가 '대왕고들빼기'를 손에들고 좋아합니다. 아내에게도 이런 큰 놈은 흔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달래 냉이 씀바귀~, 꽃다지는 감상만 하지요

다음은 씀바귀입니다. 아내는 한 가지 너무 많이 캐면 다듬기가 어렵다고 적당량만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고들빼기는 그만 하고 씀바귀를 찾아 나섭니다. 씀바귀는 토질이 좋은 밭이나 밭둑에 많다는 아내의 예언(?)에 길 건너 마을 쪽 밭으로 이동을 합니다. 역시 아내는 예언가가 맞습니다.

“내가 뭐랬어. 일루 와봐, 이게 다 씀바귀야”
“얘들은 뿌리가 길게 파고드니까, 넓고 깊게 파줘야 돼, 이렇게 이렇게”

아내가 시범을 보이며 씀바귀를 캐냅니다. 노릇노릇하고 표면이 오돌토돌한 씀바귀 뿌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온 밭에 씀바귀가 널려 있습니다. 둘이서 신이 났습니다. 채 30여분도 안돼서 한 바구니가 찹니다.

자, 이게 씀바귀입니다. 가늘고 긴 오돌토돌한 노란 뿌리, 이 뿌리를 먹지요.

아내는 씀바귀가 있는 곳도 쉽게 찾아냅니다. 그야말로 씀바귀 밭이었는데 밭주인 할아버지가 "아이고 밭의 잡초를 다 매주시는데 새참도 못내서 어예니껴”하며 농을 하십니다.

아내의 설명에 따르면 경기도 지방은 고들빼기를 잘 먹는데 경상도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경상도는 오히려 이 씀바귀를 즐겨 먹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경기도에서는 씀바귀 종류의 하나인 ‘쇠똥’이라는 나물도 많이 먹었는데 경상도는 안 먹는 것 같다며 중얼거립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냉이를 보고 ‘나세이’라고 한다면서 혼자 낄낄거리면서 냉이도 한 줌 캡니다. 콩가루를 묻혀서 끓이는 경상도식 냉이국은 그래도 괜찮았다며 옆에 있는 경상도 신랑을 배려해 줍니다. 꽃다지는 지천인데 ‘보기만 하자’며 넘어 갑니다. 아내가 노래패 ‘꽃다지’가 생각났는지 흥얼거립니다.

“민들레 꽃처럼 살아야...”
“수연 아빠, 여기 봐. 달래있어 달래”

달래는 많이 캐지 못했습니다. 아직 뿌리가 어려서 계절이 좀 이른 듯 합니다.

달래도 한 웅큼 하고, 냉이도 조금...

이렇게 달래도 제법 캐어 바구니를 채웁니다. 지금까지의 성적만으로도 기대했던 ‘대박’에 가까워 보입니다. 고들빼기, 씀바귀, 냉이 아니 나세이(전 경상도 남자입니다) 그리고 달래까지 봄의 전령 사총사의 항복을 받아 냈습니다. 이제 마지막 저의 간절한 소망만 남았습니다. ‘돌미나리’가 오늘의 숙제입니다. 아내도 눈치를 챘습니다.

지금까지의 전리품을 정리하고 아내와 저는 ‘추월’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서 한 줄에 천삼백원짜리 김밥으로 조촐하지만 꿀맛 같은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음료수는 사이다와 콜라, 아내가 콜라를 선택합니다. 저는 당연히 사이다를 집어 듭니다. 오늘은 아내가 대장입니다. 행복한 졸병입니다. 느티나무 아래로 얕은 강물이 넉넉히 흐릅니다.

'추월' 어귀 느티나무 아래로 얕은 강물이 넉넉히 흐릅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돌미나리와 상봉

“돌미나리 조금은 있을 거야. 가보자”

아내가 강 상류 쪽으로 나섭니다. 강 둑방을 내려가 조그만 샛개울이 흐르던 바닥으로 내려가니, 덤불 아래로 뭔가 파릇한 기운이 보입니다. 돌미나리 입니다. 남자 체면에 큰 소리는 못내고 속으로는 벙글벙글 연방 쾌재를 부릅니다.

돌미나리는 잎사귀는 작아도 하얀 뿌리가 수염처럼 길어서 금새 바구니를 채웁니다. 잎도 향기롭지만 뿌리의 아삭아삭하고 쌉쌀한 맛은 정말 표현이 안됩니다. 여기에 감칠 맛 나는 초고추장 양념 맛까지 더해지면 한 마디로 환상이지요. 돌미나리를 캐면서 벌써 입에는 침이 고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돌미나리를 만났습니다. 잎사귀는 작아도 하얀 뿌리가 수염처럼 길어서 금새 바구니를 채웁니다. 잎도 향기롭지만 뿌리의 아삭아삭하고 쌉쌀한 맛은 정말 표현이 안됩니다. 여기에 감칠 맛 나는 초고추장 양념 맛까지 더해지면 한 마디로 환상이지요.

학수 고대했던 돌미나리로 이내 바구니가 가득해 졌습니다.

“그만하지, 많이 하면 다듬고 손질하기 정말 힘든 거 자기도 알잖아”
“야 그래도 여기 엄청 많은데..., 알았습니다. 마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내와 저는 오늘 새봄과의 만남을 정리합니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 귀퉁이에 봄나물들을 쏟아놓고 고들빼기는 고들빼기대로, 씀바귀는 씀바귀대로 나눠 담습니다. 고들빼기 잎사귀에 따라 붙어 온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에 아내가 비명을 지릅니다. ‘빨치산’ 별명을 가진 아내가 벌레 한 마리에 기겁을 하는 것이 납득이 안가지만 그래도 여자는 여자인가 봅니다.

엉덩이며 팔뚝이며 잔뜩 묻어있는 봄의 흔적들을 툭툭 털어내고는 차에 오릅니다. 다리를 건너 시내로 들어가는 국도 35번. 멀리 ‘추월’ 마을이 멀어져 갑니다. “아이고 밭의 잡초를 다 매주시는데 새참도 못내서 어예니껴”하며 농을 하시던 밭주인 할아버지의 갈갈한 목소리도 멀어집니다.

다리를 건너 시내로 돌어가는 국도 35번. 멀리 '추월' 마을도 멀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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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 2009-03-14 20:31:16
좋은기사입니다.경북in뉴스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네요. 다른뉴스판과는 다르되 향기나 나길 바랍니다

난 누귤까? 2009-03-13 13:01:27
어제 35번 국도에서 추월하다 걸릴뻔 했다. ㅎㅎ 위에 추월은 어디로. ㅋㅋ
남은 거 있으면 좀 주소.. 멀리 살지도 않는데. ... 그거 다 먹으면 설사 하니데이..
빨지산 여사 너무 아름답소.. ㅎㅎㅎ

로사 2009-03-13 11:38:52
수량이 적고 부유물이 많이 떠 있네요. 큰 비가 한번 와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