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죄인(六月罪人)
유월죄인(六月罪人)
  • 하회탈
  • 승인 2009.06.11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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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의 유월에 서울광장을 보며

 

六月罪人

꽃상여 울며불며 오월이 가고
유월이 후둑후둑 유리창을 때립니다.

스물 두해 전 초여름,
광화문 종각에서 징 소리 울리고
종로통, 동대문 지나 청량리까지
끝도 없이 한도 없이 덩실대던 소매자락
지신(地神) 밟는 그 도도한 함성과 대열

장대비 내리는 유월,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합니다.

차라리 그날처럼
종로3가 양철집 귀퉁이 어디선가
꽃병에 짱돌 들고 나댔으면
마음만이라도 편했을 텐데,
자꾸만 두 갈래 혀로 나불거리는
가증스런 종족(種族)으로의 허물벗기가
내장 속에서 불뚝거립니다.

바퀴벌레처럼 투구 쓴 용병(傭兵)들이
시민들의 출애굽을 막아선
유월의 바다에서
들뛰고 꽃 뿌리고 고함치고
우리는 주인이다 국가다 왕이다
민주주의를 돌려다오, 길을 열어라!
아스팔트 위를 울리던 천둥소리,
그 소리 맞받던 심장들의 전진

호헌철폐! 독재타도!
넥타이부대들의 근엄한 열병(閱兵)과 경례에
무너질 듯 청계고가도 따라 울던 날,
힘내세요
곱게 접은 소녀들의 쪽지에
눈물 비벼 먹던 성당 담벼락의 도시락으로
다시 대열을 향하는 주먹
최루가스 콧물 절은
무명 손수건으로 남은
고장난 유월의 활동사진들


어느 폐륜(廢倫)의 시대 포악한 황제도
범치 못할 것만 같던 신성한 승리
기쁨도 눈물도
술 취한 토기로 치밀던 자만의 구역질조차도
밤새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며 무등 태우던,
덩실덩실 우리 곁을 맴돌던 유월

다시 맞은 유월광장엔
설치류(齧齒類)의 밥을 빌어
화석 속에서 번식한 바퀴들이
떼거리로 떼거리로 몰려듭니다.
주인 잃은 유월은
더 이상 우리의 계절일 수는 없는데
그 많던 주인들이
집으로 집으로 깃듭니다.

아픔으로 몸서리치던 오월이 가고
이제 겨우 유월일 뿐인데
소서(小暑)도 대서(大暑)도 아직 먼 계절인데,
슬금슬금 줄 당겨 깃발 내리는 음습한 밤
이 죽일 놈의 손발
배암의 껍질로 나딩구는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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