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민간기록물 누가 다 먹었나?
그 많은 민간기록물 누가 다 먹었나?
  • 유경상
  • 승인 2013.04.12 10:5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북의 오늘> 유경상 (본지 발행인)

- 기록자치에 대한 斷想
 

 

며칠째 ‘기록자치’에 대한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지방자치’라는 개념이 현실적으로 성립되듯, 기록자치 또한 지방자치와 자치분권이라는 큰 범주 안에 포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질문을 던졌다. 이런 질문은 우연히 시작됐다. 얼마 전 존경하는 분의 책 한권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2010년 경 지역에서 출판된 책인데,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며칠간 빌려서라도 읽고 싶었지만 오리무중이었다. 다행히 저자가 한 권을 챙겨 줘서 읽을 수 있었지만, 그때 부터 지역의 민간에서 생산되는 기록물의 수집과 보관, 전시와 열람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라는 고민이 시작됐다.

 

비근한 예로 안동이 자랑하는 원이엄마의 한글편지(1586년)를 보자. 콘텐츠 원형으로서 조선시대판 ‘사랑과 영혼’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원이엄마가 ‘편지라는 형식의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과 ‘남편의 관과 함께 무덤 속에 보관을 했다’ 점에 주목을 할 수 있다. 기록과 보관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장치가 없었다면 콘텐츠의 원형은 존재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1999년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후 이 제도를 둘러싼 실제의 적용과정에서 논란과 부실이 없지도 않았지만, 공공기관의 기록물들은 보존과 활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공공기록물 이외의 민간기록물은 각자가 알아서 보존해야 하는가? 이다. 국가차원에서는 국가기록원이 앞장서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민간기록물을 적극 수집하고 있지만, 그 기관이 ‘지역’ 차원의 민간기록물까지 챙길 여유는 없다. 그 의무 또한 없다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또한 광역자치단체이든 기초자치단체이든 공적업무와 관련된 기록물은 ‘기록관’ 또는 ‘문서기록담당제’를 두고 있으나, 그 업무 또한 기관내의 기록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질문은 지역의 공공기록과 민간기록을 함께 관리·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다. 하긴 경상북도 차원에서도 자체 기록관 하나를 설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기초지역 차원에서만이라도 어떤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어려울까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과거 독재자나 독재국가에서는 기록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있는 우리의 경우 ‘현대기록물’에 대한 제도가 아직은 열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官)의 기록물은 물량이 넘쳐나는데 비해 민(民)의 기록물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큰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민간단체나 몇몇기관, 개인이 생산하고 소장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기록물 또한 우리의 현재역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특히나 안동지역이나 안동문화권의 역사 속에서 생산된 기록물은 오늘의 후손들에게 크나큰 자랑거리로 남아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선조들 스스로가 ‘현재기록’에 대해 철저히 보관하고 관리해 왔기에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산이 된 것이다.

사실 나의 입장에서는 수백 년 전의 기록물에 관해선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데다가, 당대를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분들이 ‘전통에 대한 집착’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을 기준으로 과거 10년, 30년, 50년의 민간기록물을 모으고, 쓰다듬을 수 있을 때만이, 과거 찬란했던 기록유산을 향유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다. 현재의 기록물에 충실하기 시작하면 미래의 기록물은 현재에 복속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기록은 투쟁의 산물이다. 뜻있는 시민들이 앞장서야 될 일이지, 계속 누구 탓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작가 2013-04-12 11:49:37
맞아요~ 민간기록물에 대해서도 안동이 선구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