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실험인 협동조합, 그리고 안동
새 실험인 협동조합, 그리고 안동
  • 유경상
  • 승인 2013.05.1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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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오늘>유경상 (경북인신문 발행인)

2012년 9월3일 한겨레신문 ‘왜냐면’ 섹션에는 매우 흥미로운 기고문 하나가 게재됐다. ‘한겨레신문(주)을 협동조합으로’ 제목이었다. 당시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김성오 연구위원이 쓴 제안글이 시의적절하다고 판단해 가위로 오려 책상 위에 올려놨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나 12월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표됐다. 그동안 한겨레 구성원들이 협동조합으로의 전환가능성 적극 검토했는지는 그들 내부사정인 만큼 모를 일이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한겨레가 주식회사로 존재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지적에 공감이 더 커졌다.

올 초부터 순천지역과 괴산지역에서 언론협동조합이 출발한다는 소식을 한겨레를 통해 듣던 중에, 5월6일 인터넷대안언론을 표방해 온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전격 선언했다는 걸 알게 됐다. 품격 있는 대안언론을 추구해 온 프레시안이 결정적으로 품위 있는 생존모델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고백한 만큼 프레시안의 새 실험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는 이 때, 많은 이들이 협동조합 구성을 서두르며 각종 보조와 혜택에 눈을 뜨고 있다. 자조와 자립의 원칙이라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높아지는 관심도에 우선점수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만큼 성장 중심 일변도로만 달려온 우리사회의 어두운 긴 그림자가 너무 참혹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힘센 짐승만이 살아남고, 어쩌다 겨우 생존한 작은 생명체는 소위 ‘갑과 을의 관계’로만 존재하는 인간세상에서 어떤 도덕과 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지 아득하다면 엄살이 심하다고 할 수 있을까.

깊고도 긴 컴컴한 동굴에서 한줄기 빛이 스며들 때 그걸 발견하고 대뜸 온 광명을 되찾은 듯 들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탈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는 법이다. 이제 막 시작된 협동조합이 새로운 빛이다, 김칫국 먼저 마실 일 없다는 식의 논란에 일희일비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건이 무르익고 새로운 바람이 불면 언제 어느 때라도 생존을 위한 길을 찾아 나서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이었듯이, 다만 소수의 독점자본보다는 일하는 보통사람이 우선되는 세상이 더욱 더 절박해져야만 새로운 흐름이 본격화된다는 법칙을 믿고 있을 뿐이다.

다행이 4월 말 현재 경상북도에서도 약 32개 정도의 협동조합 신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수치는 형편없지만 작은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매월 경북도 차원에서 설명회가 열리고 있고, 구미(5월14일), 안동(6월4일), 포항(7월2일) 권역별 설명회가 열릴 예정이다. 경북도가 주창한 아름다운 협동조합만들기 프로젝트가 그냥 선언에서 벗어나 좀 더 구체화되는 걸 지켜보고 싶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이 2011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협동조합의 해 선포식에서 직접 밝힌 말을 떠 올려본다. “협동조합은 매우 독특하고 가치 있는 기업모델로 빈곤을 낮추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가치 있는 만큼 독특하다는 표현에는 기존 관행대로 진행하면 안착이나 활성화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으로도 읽혀진다. 안동출신으로 농민과 협동조합운동에 평생을 바쳐온 권영근 박사는 “나부터 바꿔 협동해야 협동조합도 살고,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적극 조언하고 있다.

근대초입 일제의 침탈과 조선왕조의 붕괴로 민족이 위태로울 때 유학적 바탕위에서 새로운 문물과 사조를 앞장 서 받아들였던 ‘혁신유림의 길’이 뜬금없이 떠오른 것이 너무 부질없는 상상이 아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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