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망치는 문화재 사업 이제 그만
문화재 망치는 문화재 사업 이제 그만
  • 김희철
  • 승인 2013.06.04 15:5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북인칼럼> 김희철(개념원리국제수학교육원 안동지역본부장)

하회마을에 처음 갔을 때가 88년 어느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동터미널 건너편에 길게 늘어선 버스

▲김희철(개념원리국제수학교육원 안동지역본부장)
가운데 하회마을 간다는 버스에 올라 찾아간 하회마을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아 감동으로 전해진다. 당시만 해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가들이 간혹 있었지만 직선과 곡선을 거듭하면서 이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담장과 수년을 이었을 두터운 초가지붕, 그리고 저 너머 들리는 ‘이랴 이랴’ 소 몰고 써레질 하는 농부의 음성은 영락없는 조선시대 농촌마을 그대로였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압도적인 충효당, 양진당의 위풍과 서애선생의 정치역량과 학문사상보다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 전체가 주는 고즈넉하고 안정감 있는 풍경이 더 남아있다. 마을을 형성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집과 집들을 구분 짓고 이어주는 담장이다. 특히 하회마을의 담장은 우리나라 전통 담장의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집에 어울리는 재료를 사용해서 집의 규모와 방위에 맞게 다양하게 형성됐기에 하나같지 않다. 기와집은 와편을 이용한 다양한 무늬의 담장, 어떤 집은 흙을 다져서 기와를 얹고 구석진 데는 나지막한 돌담으로 쌓았다. 단지 집을 가리는 목적이 아닌 마을 전체로 보면 조화를 극대화 한 미학을 연출한 것이다.

그러나 몇 해 전 문화재 보수 복원사업을 하면서 일부구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획일적인 담장을 세우고 있어 아쉬움을 준다. 전통 담장은 대부분 눈높이 이상을 올리지 않는다. 지붕과 담장 끝을 이어주는 구조적인 가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세워 올린 철벽같은 담장은 오히려 하회의 옛 모습을 훼손하고 있다. 서편제 촬영지였던 청산도 상서마을의 돌담길, 고성 학동마을만의 납작돌 담장, 신안 사리마을, 낙안읍성의 담장 등 특색과 원형을 간직한 전통담장은 그 자체로 문화재적 가치와 상당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음을 볼 때 반드시 재고가 필요하다.

퇴계종택은 어떠한가. 무리한 성역화사업이 오히려 퇴계선생 본연의 의도와 그 자취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처음 종택에 갈 때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퇴계라는 호를 낳은 개울이었다. 물러나서 개울가에 거처를 정한 <退居溪上> 마흔아홉의 퇴계이황. 450년 전 스스로 원하지 않았던 공직을 버리고 향촌으로 내려와 끝없는 학문의 세계로 들어갈 꿈으로 가득했던 퇴계선생의 눈에 들어온 건 어린 시절부터 보아왔던 산천의 나무와 들판 그리고 소년 이황을 도학의 몰아로 이끌었던 작은 개울이었을 것이다. 돌방울을 비껴 돌돌돌 물소리 내며 땅이 생긴 모양대로 굽어 천년을 흘러내리는 한낱 하천을 닮고 싶어 개울 이름을 호로 삼고 한서암 마당에 광영당이라는 못을 파고 주변에 소나무, 국화, 매화, 대나무, 연을 심고 퇴계 자신까지 벗 삼아 육우원(六友園)이라는 정원을 만들었던 퇴계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자의 본보기가 되었던 하잘것없는 개울을 보며 묘한 감동을 느꼈던 그날의 추억은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돌방울은 깨어지고 물가에는 석축을 쌓아 옛 모습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종택 뒷산 선비문화수련원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공원에 과다하게 투입된 석물은 오히려 원형을 훼손하고 종택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76년 안동댐으로 도산구곡, 원촌, 부포, 부내, 하계, 의인, 외내 등 도산 예안의 많은 역사마을을 수장시키고 유일하게 남은 도산서원마저 진입로를 바꾸고 고박정희대통령이 일본 금송을 담장 안에 심으면서 성역화사업을 단행했다. 퇴계선생이 “천년세월 이끼에 덮여 있으니 가리지 말라”고 했던 열정(冽井)이라는 우물은 석물로 가려지고 선생이 쪽박으로 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던 물은 이제 더 이상 마실 수 없다. 율곡선생이 사흘간 머물렀고 선생의 대표적 저서 「주자서절요」를 탄생시켰던 두 칸짜리 초가집 계상서당은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진정 이것이 퇴계선생의 성품과 학문적 위대함을 알게 하는 것일까.

얼마 전 대웅전을 준공하고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를 화려하게 세운 연미사. 제비원 성역화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원은 오히려 옛 제비원 미륵불의 느낌을 반감시키고 있다. 보물 제115호 제비원 미륵불의 중심은 석불을 덮고 있던 연자루(燕子樓)라는 누각이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3년 명덕스님이 불상을 보호하는 제비가 날아가는 모양의 연자루를 지었는데 연미사는 꼬리부분에 해당했다고 하니 연자루의 위용이 상상이 간다. 1608년 영가지에도 연자루를 “집모양이 하늘을 날개 펴는듯하다. 두 차례에 걸쳐 중창을 하였는데 기둥과 대들보 등의 재목은 다 옛것을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지금도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있다. 성주의 본향으로 일컬어지는 제비원 미륵불은 민속신앙의 성지로 일컬어지고 있는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 2008년 안동시는 25억 원을 들여 유교문화권개발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제비원을 복원한다면 옛사람이 보고 느꼈을 높고 아름다운 누각을 먼저 복원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 엉뚱하게 대웅전의 규모를 확장하고 연자루에 버금가는 크기로 요사채를 먼저 조성함으로 본래 제비원의 모습을 변형시키고 말았다.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유교문화권관련 대규모 사업이 예고되어있고 곳곳에서 문화재 보수 복원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어 오히려 문화재를 망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도 단위로 민관 전문가 10여명으로 구성된 문화재심의위원회가 있지만 각 지역의 문화재 사업을 모두 심의하는데 무리가 있고 공사일정이나 예산상황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지역의 학계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하는 등 설계와 인허가 과정에서의 제도적 보완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골나그네 2013-06-07 16:50:35
옛것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되는데 새로운 것을 새우는 것에 만 관심이 있으니, 말씀이 나왔으니 원이 엄마 동상옆에 아가페 관련 석물이 있는데 원이 어매하고 뭔 관계가 있는동 ....거기에 대해서도 다음 기회에 탁견을 부탁하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