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의 정치통계와 해설 (3)
김대호의 정치통계와 해설 (3)
  • 김대호
  • 승인 2009.02.12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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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과 그 처지,
의미를 모르고 정치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 일자리 구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선진국에 비해 대략 10% 쯤 낮은 경제활동참가율과 20~25% 쯤 낮은 임금근로자 비중이다. 이는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그 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 현재 한국의 총취업자(2343만3천명) 중에서 임금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8.2%, 비임금근로자(고용주+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가 31.8%이다. 이 중 고용주는 6.7%, 자영업자는 19.1%, 무급가족종사자는 6% 수준이다.

  

선진국의 경우 임금근로자 비중은 이탈리아(73.3%), 스페인(81.7%)을 제외하면 대부분 84.5%(캐나다)~92.5%(미국) 범위에 있다.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90% 내외이다. 고용이 비교적 유연하다고 알려진 영국과 호주는 각각 87%이며,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최고 수준인 92.5%이다. 프랑스와 독일도 각각 89.1%, 87.7%이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임금근로자 비중이 비교적 낮은데도 불구하고 84.8%에 이른다.

많은 선진국들은 고용주와 자영업자를 구분하여 통계를 내지 않는다. 이들이 대체로 임금근로자보다 생활수준이 높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호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은 고용주와 자영업자를 구분해서 통계를 내는데 이 나라들의 고용주 비중은 한국(7.3%)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고용주는 한국의 고용주에 비해 비교적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자영업자 중에는 고소득 전문직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 통계에 입각하여 자영업자와 임금근로자의 전반적인 처지를 비교하면, 자영업자 1인당 평균 소득은 임금근로자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2006년 현재 자영업 종사자(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는 총 취업자의 25.1%로 임금근로자(68.2%)의 37% 수준이다. 하지만 자영업 총 소득은 82.3조원으로 임금근로자 총소득 378조5천억원의 21%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자영업자의 1인당 소득은 임금근로자의 57%(21%/37%)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영업자의 탈루 소득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자영업자가 임금근로자에 비해 전체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자영업자의 대다수는 선진국의 자영업자와 달리 임금근로자가 되기를 갈망하지만 자본의 고용 의지와 능력 부족으로 인해 흡수되지 못한 존재들이다. 단적으로 상용근로자(정규직)가 1995년 36.7%를 정점으로 하여 1999년 30.2%로 감소하는 동안, 자영업자는 1995년 19.8%에서 1999년 21.4%로 소폭 증가하였다. 그 이후 자영업자가 소폭 줄어들었는데, 이는 상용근로자 비중의 증대와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무급가족종사자와 자영업자가 줄어든다. 한국의 경우 무급 가족종사자는 착실히 줄어들어  20년 동안 13.3%에서 6.0%로 절반 이상 줄었다 그러나 자영업자는 1991년 수준(19.8%)에서 멈춰버렸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의 노동 흡수력(통합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는 1987년의 유산이자, 급격한 세계화, 개방화, 지식정보화, 중국 경제발전의 여파 일 것이다.  

자영업은 그 성격 상 내수에 크게 의존하기에 중소기업과 함께 세계화(해외소비 활성화)와 지식정보화(유통 현대화)와 중국의 충격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자영업 내적으로는 뜨는 사업도 있고, 가라앉는 사업도 있었겠지만, 자영업 전체적으로는 지난 6년 동안 소득이 거의 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임금 총소득은 248조에서 378.5조로 무려 53%가 늘어났다. 이로부터 최근 몇 년 간은 자영업자들에게는 형극의 나날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총 GDP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일본의 3배 수준인 것은 높은 자영업자 비율과 이들의 목숨(거의 모든 가계 자산)을 건 투자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제1금융권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저신용자 700만 명과 자영업자들을 주 대상으로 했던 지방신용보증기금의 부실, 화물연대의 투쟁 등은 열악한 자영업자가 질러대는 비명의 한 자락 일 것이다.

한국과 일자리 구조가 비슷한 나라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대만이다. 이들 나라와 한국이 무엇이 같고 무엇인 다른지는 다음에 상세히 다루겠다. 

어느 나라나 임금근로자 비중이 높으면 소득 파악이 쉽기 때문에 세금과 사회보험료(의료보험, 고용보험 등) 징수도 쉽고, 부담과 혜택의 형평성 유지도 쉽다. 복지 수혜 대상자도 명확하다. 사회의 기본 대립구조는 노동과 자본이 되기 십상이다. 기업이라는 보호막이 있는 임금근로자와 스스로 모든 충격을 감내해야 하는 자영업자의 삶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임금근로자의 비중이 높으면 아무래도 국민들의 삶의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마련이다.

반면에 정치적 역동성은 상대적으로 낮기 마련이다. 그러나 임금근로자 비중이 낮으면 이 모든 것이 흔들린다.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맥을 이어받은 (대규모 조직 노동의 이해와 요구를 중심에 놓는) 전통 진보 노선에 대한 지지율도 낮을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임금근로자 간에,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간의 격차가 매우 크고 불합리하면 더 낮을 수 밖에 없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 고용보험에 들어있는 근로자는 854만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50%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나머지는 고용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한국은 대기업 비중이 매우 낮고, 대기업, 공기업, 공공부문의 종사자의 처우는 1인당 GDP를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나마 성과. 직무와 상관없이 연공서열이나 단체협약에 따라 올라가며 고용도 매우 경직되어 있다. 기륭전자 투쟁, KTX여승무원 투쟁, 현대자동차 노사분규 등에서 보듯이 한국 노동의 전투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기업, 공기업,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누리는 높고 안정적인 처우가 그들의 노동의 양과 질에 상응하는 합리적인 보상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 당사자들 외에는 없을 것이다. 자본의 능력(수익성, 안정성, 전후방 가치생산 사슬에서 차지하는 지위)과 노동의 단결력에 따라 처우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조직노동이 부르짖는 고용안정, 비정규직 철폐, 노동내 경쟁배제, 공동결정제(노조의 높은 사회적 지위) 등 사민주의적 가치(?)는 불합리한 기득권의 유지, 온존을 전제로 하기에 반동으로 지탄받기 십상이다. 이는 한국 자본의 수준(기술력, 경영능력, 수익성)과 국제 경쟁 구조 상 ‘임금근로자’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수백만 명을 거리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다루겠다)

자영업자는 한국 정당 구조에서 그 인구 비중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해 왔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공히 약국, 미용실, 식당, 유흥주점, 부동산중개업소 등 자영업자들이 말단 당조직의 중핵이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경우는 토건업자, 사학재단, 대기업, 잘 나가는 전문 직능단체 등 큰 손들과 연계가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민주당의 경우는 이들 전통적 기득권 세력에 밀린 토건업자들과 자영업자 등 작은 손들이 호남향우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당을 떠 받쳐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노무현의 정치개혁 노선 자체가 민주당의 전통적 골간 층과 부적절한 거래(이권 제공)를 단절하는 것인데다가 내수 부진으로 인한 어려움까지 겹쳤으니 이들 골간 층의 노무현에 대한 증오심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들의 정서와 행태는 열린우리당에서 노무현을 축출하는 것 까지야 설명할 수는 있어도, 대선과 총선의 참패로 나타난 엄청난 정치적 역동성까지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김대호 소장
지난 2004년 총선,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과 촛불 사태, 이명박 지지율의 급전직하 등으로 나타난 한국 특유의 정치적 역동성은 거대한 규모의 실업자, 반실업자(불완전 고용인력,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사실상 실업자), 영세자영업자의 존재와 기득권 위주로 짜인 불합리한 격차, 그리고 이를 방치한 진보와 보수 주류 세력들의 정치적 무능의 합작품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과 그 처지, 근원, 의미를 모르고 정치를 논하지 말아야 한다.

김대호는 196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진주고를 거쳐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대학 입학 후 뒤틀린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워보겠다고 떨쳐나선 수십만 386 세대의 일원으로서, 이 세대에게 부과된 고난과 고뇌의 짐을 지는 현장에서 대충 몸을 빼지는 않았다. 1년간의 무기정학, 2차례의 징역, 2년간의 공장생활을 거쳐, 1990년을 전후하여 5년간 구로지역에서 노동 상담/교육/정책연구를 했다. 1995년 초 대우자동차에 입사하여 2004년 초까지 연구/개발/기획 업무에 종사했다. 이후 김대호산업경영연구소를 창업하여 몇몇 기업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경영전략 컨설팅과 정책 연구 용역을 수행했다. 현재는 사회디자인연구소(사) 소장으로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적 부활을 위한 철학, 가치, 이념,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한 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희망한국 프로젝트(공저)](백산서당,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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