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에 숨겨진 스토리를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
'옛 사진에 숨겨진 스토리를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
  • 유경상 (사)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22.02.08 1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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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진에 담긴 사회적 기능, 생활문화사 연구는 연구자의 몫으로 남아

[기록창고-칼럼], 열한 번째 문을 열면서
유경상(계간 기록창고 발행인)
유경상(계간 기록창고 발행인)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100년을 1세기로 잡아 연대를 세어나간다. 지금은 21세기이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19세기와 20세기가 주요 관심대상이었다. 나는 고려나 조선시대에 대해선 과문한 처지다 보니 주로 듣는 편이다. 하지만 20대 청년학생 시절의 경험과 40대 초반 군(軍)과거사진상규명 조사활동을 계기로 한국사회 근․현대시기의 사건과 역사전반에 더 천착하게 됐다.

2015년 상반기부터 근현대 민간기록물 수집 및 아카이브 연구용역을 착수했고, 2016년 말 실질적 사업으로 추진할 때 주요사업 하나로 ‘옛 사진 수집사업’을 선정했다. 옛 사진이란 용어사용이 적절한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한국사회에서 사진기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이미지로 기록하기 시작한 때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들어서인데 옛날이라니! 입학, 소풍, 졸업, 결혼, 회갑연 등 어느 날 찍어 놓은 보통사람의 일상 사진이 대부분인데 무슨 큰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그간 일상의 기록물에 대해 너무 자존감을 낮추고 있었다. 늦은 밤 사진앨범을 한 장씩 넘겼을 때 잠깐 망각하고 있었던 아스라한 기억을 떠올렸다. 외할버지와 외할머니의 생전 모습은 내 유년시절의 은혜로움으로 간직돼 있었다. 젊었던 아버지 어머니 모습은 지나온 나의 청년 시절과 겹쳐지며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연속성을 안겨 주었다. 그리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딱 한 두 장의 사진에 불과했지만 나를 둘러쌓던 소중한 관계와 응축된 경험이 숨쉬고 있었다. 내 남아있는 생애 전체에 이 체험이 힘찬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누구에게나 소장하고 있는 사진 한 점과 또 다른 한 점은 이어져 선이 되고 있었다. 점과 선은 면적으로 확장될 때 훌륭한 포토생애사로 생산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각자가 소장한 사진 속에는 삶의 여러 단계가 순간으로 포착돼 있다. 한 개인의 인생사와 생활경험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옛 사진들은 생애사를 완성해 줄 중요한 물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옛 사진 수집사업의 한 방법으로 공모전 개최는 시민의 관심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옛 사진을 수집사업을 한다고 할 때 주위 분들은 누구누구를 추천했다. 찾아가보면 말의 성찬은 많지만 실물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보통시민들로부터 사진을 수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사진을 금전과 가격으로 따지는 소수보다는 다수시민으로부터 수집양이 많아지면 그곳에서 보물이 튀어나올 것이라 보았다.

이어 한 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포토자서전 쓰기 사업’를 실시했다. 15여 명이 5주 동안 열 번의 강좌에 참여하며 집중적으로 생애사를 자필로 서술하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머릿속에선 수십 권의 자서전을 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막상 노트나 컴퓨터 화면에서는 몇 줄에 그치고 만다. 스스로의 생애사를 쓰고 싶었던 보통의 수강생들이 옛 사진을 꺼내어 놓고 여러 차례 강의를 들으면 자세가 달라진다. 함께 협동하는 순간, 이들은 예비작가처럼 들뜨게 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강좌를 들으며 글쓰기에 돌입한 지 한 달여 만에 수강생 각자는 50~100페이지에 달하는 단행본 한 권씩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욕심이 큰 탓일까. 옛 사진 수집과 포토자서전 강좌를 거듭할수록 아쉬운 점이 더 또렷하다. 옛 사진 공모전을 통해 접수되거나, 앨범을 통째로 들고 오는 시민은 많아졌다. 초상, 가족과 친족, 주거공간, 학업, 의례와 사건, 의식주생활, 생업과 여가, 종교, 풍속, 역사체험 등이 담겨 있는 사진이다. 수집 사진들은 과거 어느 시기 특정 공간에서 촬영 생산되었다. 옛 사진 1차 소유자는 오래 전 사망한 혈육이나 친지이다. 제공자는 ‘집안어른과 부모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가지고 왔을 뿐, 사진 속 내용을 읽어내는 해석이 불가능한 사례가 너무 많다. 자칫 옛 사진 수집에만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 그 사람과 그 사실기록에는 충실한 물증사진이지만, 이에 대한 메타테이터(콘텐츠의 정보)가 부실한 것이 한계로 다가온다. 기본정보는 소정의 인터뷰를 통해 확보할 수 있지만 사회적 기능과 체계에 대한 이해, 생활문화 연구의 질적 심화 단계까지는 이후 연구자의 몫으로 남겨놓게 된다. 한 세기를 포괄하면서도 특정 생활사 영역의 미시적 연구과제는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는 것이 아쉬워지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 전후 옛 사진자료는 거시사를 담고 있어 제보자의 미시사와의 관계를 더 생생하게 읽어내고 서술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제2회 옛 사진 공모전(2018년) 대상을 거머쥔 <옥동공민학교 성인반 수업, (1952)>은 한국전쟁 시기이던 9월 8일이라고 날짜가 정확히 명시돼 있고, 문맹타파를 위해 취학연령을 넘긴 청년 40여 명이 임시 흙벽교실에서 성인독본 수업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아이젠하워 내한 축한 안동읍민대회 시가행렬, (1952)>은 전쟁으로 파괴된 안동 원도심 거리에서 군중 시가행렬의 선두에 안동여고 학생들이 태극기를 펼쳐들고 행진 중이며 길가엔 구경나온 어린이들로 북적이고 있다. 제3회 옛 사진공모전(2019년) 은상인 <안동시 서후면 천수답 모내기, (1942)>에서는 7월 10일 이개동 382번지 논에서 8명의 농부들이 잡초와 피를 뽑고 있다. 가뭄이 극심한 탓인지 2명의 농부는 양쪽으로 마주본 채 아래쪽 웅덩이에서 새끼줄로 연결한 물통으로 물을 퍼 올리고 있는 동작이다. 사진하단에는 ‘지하수인용공동작업현황’이라 적혀 있다. 논농사와 관련한 농민의 생산활동이 이보다 더 생생하게 포착될 수 있을까 싶다.

지난 7월20일 제5회 옛 사진 공모전을 마무리했다. 2017년 첫 해엔 3백여 매, 그 후엔 1천여 매, 1천7백여 매를 넘기더니 지난해와 올해는 약 9백여 장 안팎에 그쳤다. 코로나19 상황을 생각하면 상당히 선전했다. 이 중 지역문화자산으로 쓰일 소중한 사진이 다수 입선작으로 선정됐다. <경상북도립 안동의원 간호사, (1938)>에는 젊은 여성 간호사 8명이 병원 앞 정원수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서 있다. 출품자의 친정어머니의 생전 모습이 담긴 생애사진 4장 중 하나이다. ‘오양송별기념’이라고 적혀 있는 사진엔 송별을 앞둔 9명의 간호사가 앉거나 서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보니 기모노와 한복, 양장을 차려 입은 여성들의 복장이 눈에 띈다. 흰 가운을 입은 남성 의사와 간호사, 어린이들이 함께 촬영된 이 사진에서 무엇을 읽어내어야 할까, 그리고 어떠한 텍스트로 해석할 수 있을까?

지난 5년 간 옛 사진을 수집․축적하며 포토생애사쓰기 등을 추진한 사업을 1단계로 규정한다면 이제부턴 인문 및 문화정책 연구자들과 융합하는 2단계 사업이 필요하다. 수집, 해석, 기록, 집성, 보존, 활용의 프로세스는 우리지역 인문·문화콘텐츠산업에 새로운 원형콘텐츠를 축적해 낼 것으로 기대한다.

[위 기사는 계간 기록창고 11호(2021년 여름호) 칼럼으로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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