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의 딜레마’에 빠진 고담시
수인의 딜레마’에 빠진 고담시
  • 유응오 불교투데이 편집장
  • 승인 2009.01.22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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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인다르마 -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포스터

흑과 백, 선과 악의 두 얼굴  통해 인간존재 탐구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인물들 ‘불매인과(不昧因果)’ 떠올려

수인(囚人)의 딜레마라는 이론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과점(寡占)의 문제, 전략론에서는 핵억지력(核抑止力)에 응용되고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공범 A와 B가 경찰에 붙잡혀 각각 격리된 상황에서 심문을 받다. 두 사람 모두 두 가지 전략밖에 없다. 고백하거나 함구해 고백하지 않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고백하면 각각 10년형을 받게 되고, 만약 A는 고백하고 B는 함구하는 경우 A는 특전을 받아 무죄로 풀려나고 B는 30년형을 받게 되며, 반대로 B가 고백하고 A가 함구하면 B는 무죄, A는 30년형을 받는다. 또 A와 B가 모두 끝까지 함구하면 3일씩 구류를 살고 무죄로 풀려난다고 할 때, A와 B가 각각 자기 개인의 형량만을 생각하면 다 고백하고 10년형을 받는 결과가 된다.

가장 좋은 길은 A와 B 둘 다 함구해 3일씩 구류를 받고 무죄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A와 B가 함구할 확률은 높지 않다. 이 경우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에 두 가지 경우를 다 고려하기 마련이다. B가 고백을 한다면 A는 자기도 고백하면 10년이고, 고백하지 않으면 30년형을 받게 되니 고백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또 B가 함구를 한다면 A는 자기가 고백하면 당장 무죄로 풀리나, 함구하면 3일은 고생해야 한다. 따라서 A가 자기 이득만 생각한다면 B가 함구를 하더라도 고백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B도 같은 이유로 자기 이득만을 위해서는 A가 고백하든 함구하든 고백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결국 A와 B가 자기 이득만을 위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다 같이 고백하게 돼 각기 10년형을 받게 된다.

수인의 딜레마는 개개인이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인의 딜레마는 인간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인간존재의 성악설에 힘을 실어주는 이론이기도 하다.

만약 여러분이 ‘수인의 딜레마’에 빠진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배트맨과 조커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이루며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 화 <다크 나이트>의 출발점은 <배트맨 비긴즈>의 결말이다. 고담시 유일의 청렴한 경찰 고든(게리 올드먼)이 내밀었던 트럼프 카드 한 장.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과 대적하는 조커(히스 레저)의 출현은 이미 예고됐다.

고담시는 여전히 아비규환이다. 음산한 도시 여기저기 범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고담시를 지키는 박쥐 사나이. 낮에는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으도, 밤에는 배트맨으로 맹활약을 펼친다. 

“배트맨이 필요치 않은 날이 오면 당신 곁으로 돌아오겠다”던 레이첼(매기 질렌홀)은 검사다. 그녀는 차기 시장 후보인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와 열애 중이다. 하비 덴트는 배트맨과 협력해 갱스터들을 검거하면서 시민들로부터 인기가 급상승한다. 이때 조커가 나타난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분했던 동화적인 조커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다. 매우 즉흥적이면서 철두철미하게 일을 계획하는 조커. 인간 심연의 악마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조커가 고인이 된 히스 레저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는 조커와 배트맨의 대결구도가 대부분을 이룬다. 둘의 구도는 선과 악의 대립이기도 하다. 둘의 캐릭터는 당장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살아 있다. 둘의 캐릭터에 대해 <롤링스톤>은 이렇게 평한다.

“배트맨 슈트를 입은 복잡미묘한 인간과 광대 미소에 찢어진 얼굴을 한 악당이 인간 조건의 본질에 관해 떠들 수 있다니! ‘나는 카오스를 선택했지.’ 조커의 이 말은 <다크 나이트>의 세계를 한 줄로 요약한다. <메멘토> <인썸니아> <프레스티지>를 만들었던 놀란은 통속적인 도피주의를 거의 불후의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크리스천 베일의 서늘한 연기가 만들어낸 길 잃은 전사 배트맨은 <대부2>의 망상과 고독 속에 갇힌 알 파치노를 연상시키며, 히스 레저가 창조한 조커는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의 무정부주의적 혼돈을 다시 불러낸다.”

배트맨은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조커와 닮았다.

영화 속에서 배트맨과 조커는 다른 듯 닮았다. 조커가 배트맨에게 “네가 나를 완성시켜줘”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배트맨과 조커는 둘 다 유년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다만, 배트맨은 거대한 산업자본가여서 그랬는지 사회적으로 승화가 된 반면, 조커는 그러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조커는 바로 이 점을 노린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한계. 처음 조커는 배트맨에게 자신의 온전한 후계자(자신은 가면을 쓰고 음성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지만, 하비 덴트는 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제도권 내에서 고담시를 보호할 수 있으므로)인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와 자신이 사랑하는 레이첼(메기 질렌홀)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선택권을 준다.

배트맨이 선택한 것은 하비 덴트. 이후 조커는 고담시 시민 전체를 상대로 다시 한 번 주사위 놀이를 한다. 죄수를 실은 배와 시민들을 실은 배에 각각 폭발물을 넣고, 그것을 터뜨릴 수 있는 작동장치를 선사한다. 그리고 수인의 딜레마와 다르지 않은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시민들도 죄수들도 수인의 딜레마의 법칙을 깨고 작동장치를 누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선과 악, 흑과 백은 사고로 화상을 당해 한쪽 면만 일그러진 하비 덴트의 얼굴처럼, 하비 덴트가 곧잘 던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다. 경찰로서의 사명감과 가족들의 생존 앞에서 고민하는 고든(게리 올드만), 배트맨의 지시와 자신의 지켜야 할 신념 앞에서  고뇌하는 폭스(모건 프리만), 브루스 웨인과 하비 덴트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레이첼.
감독은 이런 선악의 구도에서 선의 편을 들어준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 악의 손도 들어준다. 이는 고담시의 정의의 사도였던 하비 덴트가 사고를 입은 후 나중에는 조커와 똑같이 사회에 대한 적의로 불타오르게 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인간관계에 온전한 선이란 있을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 쉽게 내릴 수 없는 답이다. 선(禪)적인 화술로 말하자면, 선하다고 해도, 악하다고 해도, 몽둥이 육십 방이리라.

<다크나이트>는 '불매인과'의 가르침을 일깨워준다.

그 러나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인과의 법칙이다. 무문 혜개선사는 《무문관》에서 백장선사의 일화(백장스님이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있어서 늘 청중들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대중이 물러나면 그 노인도 물러나곤 했는데 어느 날 설법이 끝나고 수좌들이 다 물러났는데도 이 노인만이 버티고 서 있었다. 스님이 이상히 여겨 "면전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섭존자가 있던 시절 이 사찰의 주지였는데 그때 어느 학인이 ‘공부를 많이 했으면 인과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대답했는데 그 때문에 여우의 몸이 되었습니다. 청컨대 스님께서 진리를 설하여 이 여우의 몸을 벗게 해 주십시오.” 이에 스님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대답해줬다. 백장스님은 대중을 데리고 뒷산 바위 밑에 이르러 지팡이로 죽은 여우를 끄집어내고 장례식을 올렸다.)를 예로 들면서 불락인과(不落因果)와 불매인과(不昧因果)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인과의 법칙에 어둡지 않다면, 인과의 법칙을 어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과의 기본은 연기(緣起). 세상이 갈대다발처럼, 인드라의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는 진리를 아는 것이리라.

[유응오 기자는 1972년 충남 부여 출생이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와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불교신문>, 2007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됐다. 2007년 신정아의 박사 학위가 조작됐다는 것을 최초로 보도해 한국불교기자협회 대상인〈선원빈기자상〉을, 2005년 영화를 불교사상으로 해석한〈시네마 서방정토〉기획기사를 연재해 한국불교기자협회〈특별상〉을 수상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10.27 법난을 역사적으로 규명한 [10.27 법난의 진실](화남출판사, 2005)을 펴냈으며, 이 시대 대표 스님 18인의 출가기를 엮은 [이번 생은 망했다](도서출판 샘터, 2007)를 엮었다. 공저로는 외국인 스님들의 출가.수행기를 묶은 [벽안출가](도서출판 샘터, 2008)와 콩트집 [초중딩도 뿔났다](화남출판사, 2008)가 있다. 현재 인터넷신문 <불교투데이>[http://www.bulgyotoday.com ]편집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불교투데이에 연재되고 있는  '시네마인다르마' 를 저자가 경북in뉴스의 뉴스연대 취지에 동의해 2차 게재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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