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안동국시(2) 양반 음식, 누른국시는 서민 음식
기획-안동국시(2) 양반 음식, 누른국시는 서민 음식
  • 유경상 기자
  • 승인 2023.11.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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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음식문화는 어머니를 이어 끊임없이 재생된다

정작 안동에는 안동국시가 없다고 하는데?

이러한 향토음식이 근대적 외식업으로 발전하는 것에 대해 학계나 저널리즘 영역은 1920년대부터 근대적 도시화의 사회문화적 현상이라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1920년대 이후 서울을 비롯한 지방에서 근대적 도시가 형성되며 근대적 외식업으로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안동지역 또한 광역도시에 비해 도심의 규모는 작지만 음식의 외식화가 일정 부분 전개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주세령(1916)을 시행하며 전통가양주가 도태되었고 이후인 1920년대 초기에 안동 사회에서도 여러 형태의 안동소주 회사가 출발한다. 소주 또한 음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소주가 다른 음식과 함께 주요 메뉴로 포함되어 외식업 활성화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하여튼 향토음식 중에서 안동국시의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데에 언론의 매스미디어 역할이 매우 컸다. 방송과 신문이 다양한 콘텐츠를 쏟아내면 독자들은 신문과 방송에 났더라는 식으로 신뢰를 보냈고, 기사는 객관적인 사실로 굳혀진 스토리로 전파되었다. 이처럼 1970년대~1980년대의 이촌향도 현상과 거대 도시 속에서 경제력을 갖춘 출향인들이 향토음식이라는 특정음식을 사회 전반에 새롭게 확산시켜냈을 것이라는 사회문화적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럼 중앙에 대비되는 향토사회인 안동에서의 상황은 어땠을까? 1980년대 전후부터 안동의 4대 향토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헛제사밥’, ‘건진국수’, ‘간고등어’, ‘식혜를 꼽기 시작한다. 당시에 이 음식을 부를때 꼭 안동이라는 지명을 앞에 붙여 말하지 않았다. 안동지역 식혜는 쌀(좁쌀)밥에 엿기름물을 붓고 물, , 생강, 고춧가루 등으로 삭히는 것으로 타지방의 식혜와 확실히 달랐지만 그냥 식혜라고 불렀지 안동식혜라고 부르지 않았다. 안동국수도 마찬가지다. 안동문화권에서 국수국시라고 부르며 즐겨 먹던 음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특별하게 차별성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단지 국수를 만들 때 일정량의 콩가루를 밀가루에 섞었다는 점이 달랐다.

이때부터 음식에 대한 문헌과 구술 스토리를 찾기 시작했다. ‘전통종가를 주목하며 제례음식이 풍부한 종가를 더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종가는 유교문화의 구심적 존재였고 불천위 선조의 학문적 역량을 바탕으로, 건축물과 유물·유적 등 유형적 문화자산이 잘 보존되고 있었다. 이곳의 의례와 음식·문회·가풍 등 무형적 문화자산이 노출되는 과정에서 종가음식은 시선을 먼저 끌어들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배영동 교수는 논문(안동지역 전통음식의 탈맥락화와 상품화, 2004)을 통해 건진국수의 상품화가 1970년대 후반 안동댐 준공(1976)이라고 제시했다. 교통 불편으로 접근성이 힘들었지만 최초 다목적댐이라는 유명세로 안동댐이 관광지로 포함됐고 주변에는 수몰지에서 옮겨온 기와집 등 고가옥들이 이전돼 있었다. 안동민속촌으로 불리며 몇몇 고가옥에서 전통음식 판매를 허용했다. 이때 안동칼국수, 헛제사밥을 팔기 시작한다. 건진국수는 일종의 향토 관광음식으로 거듭나게 되지만 헛제사밥에 비해 외지 관광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건진국수만으로는 호응도가 낮으니 칼국수와 헛제사밥을 함께 파는 형태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유교적 의례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전통생활양식이 한 갈래의 관광음식으로 재등장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엔 출향인의 음식점 개점에 따른 인기도 상승과 이에 역으로 반응한 향토지역의 관광음식 개발정책 등이 상호작용한 것이다. 일종의 한국 전통음식의 진화 과정에서 변질이든 재발견이든 하나의 사회문화사적 맥락의 변화과정으로 볼 수 있다. 서울지역의 국수와 안동지역 국수가 비슷한 듯 다르게, 시대와 지역에 맞게 칼국수 면발처럼 유연하고 탄력 있게 적응하며 발전하고 있다.

건진국시는 양반 음식, 누른국시는 서민 음식

최근에도 안동국시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높은 편이다. 웰빙문화가 확산되며 음식에 관한 콘텐츠는 모든 언론의 주요 관심사로 지속되고 있다. 중앙일간신문에서 안동국시를 검색하면 수많은 기사가 뜨고 있다. 조선일보에 안동국시 검색어를 넣었더니 총 33건 이상의 검색결과가 뜨고 있다. 과거 기사를 우선 순위로 띄우니 먼저 음식 지면에 <명가 맛 기행(10)-안동 김방경 종가>(19971220) 내용이 보인다.

기사를 찬찬히 읽으면 안동의 어느 기와집의 따뜻한 풍경이 마치 삽화처럼 묘사되고 있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종가의 음식이 대문 밖으로 나왔고 이러한 전통음식이 어느 날부터 향토음식으로 수도권에서 자리를 잡게 했다는 기사의 숨은 흐름을 눈치챌 수 있다. 서울권과 안동권을 종횡무진하며 등장하는 안동국시에 관한 스토리는 이제는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대중음식 메뉴로 정착되어 있다.

안동지역에서도 음식에 대한 문헌과 구술 스토리를 찾기 시작했다. ‘전통’과 ‘종가’를 주목하며 음식 레시피를 개발했다. 예미정이 해주상을 이용해 안동누름국수 상차림을 했다. ⓒ대를 이어온 우리맛(매일신문사)
안동지역에서도 음식에 대한 문헌과 구술 스토리를 찾기 시작했다. ‘전통’과 ‘종가’를 주목하며 음식 레시피를 개발했다. 예미정이 해주상을 이용해 안동누름국수 상차림을 했다. ⓒ대를 이어온 우리맛(매일신문사)

언론에서는 안동국수 스토리를 소개하며 레시피까지 곁들이고 있다.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군 다음 건져내육수를 붓고 고명을 얹어 낸다고 해서 건진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동 양반가에서 여름철에 손님 접대를 위해 즐겨 먹던 음식이다. 국수를 삶은 후 건져내지 않고 양념으로 간을 해 먹는 형태를 누름국수’(혹은 제물국수)로 부르는데 우리가 대중식당에서 자주 먹고 있는 칼국수로 보면 된다. 건진국수는 종가집이나 농가민박을 하는 곳에서 맛보는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건진국수 레시피의 특징은 밀가루와 콩가루를 41의 비율로 섞어 반죽하고 홍두깨로 눌러 뒷면이 비칠 정도로 얇게 만든 다음 세 번 접어 썬다. 콩가루가 들어가기 때문에 고소한 맛이 가미된다. 3kg 밀가루 한 포를 반죽하면 30그릇 쯤 나온다고 한다. 전통 방식의 건진국수에는 근처 낙동강에서 잡은 은어를 말려 포를 만들고 그 포를 끓여 육수를 만들고 식혀서 내놨다는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은어는 낙동강 상류에서 잡힌 민물고기인데 비린내가 적고 특유의 수박향으로 최고로 여겨졌다. 은어는 한반도 연안의 바다에서 어느 정도 자란 후 번식을 위해 전국 각지 하천 최상류 지역까지 올라오는 회유성 어종이다. 중요한 점은 하천의 길이에 따라 은어의 크기가 달랐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는 은어를 잡기 위해 전국 곳곳에 어전을 설치했고 진상 등의 명분으로 거둬들였다. 낙동강 최상류에 위치한 예안 일원에서 잡힌 은어는 아래쪽 안동에서 잡은 것보다 더 큰 40~60cm에 가까웠다. 17세기 전반 예안 오천(烏川)에 우거하던 김령이 쓴 <계암일록>에는 예안을 통과하는 낙동강과 그 지류에서 어떻게 언어를 잡고 어떻게 어전을 설치하고, 잡은 은어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이해관계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엿볼 수 있는 기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안동댐에 가로막힌 후 은어 대신 멸치로 육수를 낸다. 국수는 좁쌀로 만든 조밥과 배추쌈을 함께 먹는다. 2021년까지 안동시 삼산동에 위치했던 선미식당’(주인 김옥주)은 칼국수를 주메뉴로 내놓은 초창기 식당이었다. 1974년 문을 열어 48년간 장사를 하다가 2021년 쯤 문을 닫았다. 메뉴는 칼국수조밥으로 국수에 조밥과 반찬이 10여 가지 따라 나왔다. 이 면발과 국물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종가음식 산업화 시리즈로 매일신문이 안동 건진국수와 누름국수’(2009.8.1.)를 다뤘고 이후에 예미정 안동건진국수로 레시피를 개발했다.

향토음식문화는 어머니의 어머니를 이어 끊임없이 재생

두 편의 시와 수필이 떠오른다. 먼저 시인 백석의 <국수>이다.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 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대가리 밭에서

하룻밤 뽀오얀 김 속에서 접시귀 소기름 불이 뿌우연 부엌에서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어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려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어 마을까지 둘렸다는

먼 친척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2018년 10월 유명을 달리한 안동 임하 출신 김서령 작가는 ‘조선 엄마의 레시피’라는 부제가 달린 책『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남겼다. ⓒ푸른역사
2018년 10월 유명을 달리한 안동 임하 출신 김서령 작가는 ‘조선 엄마의 레시피’라는 부제가 달린 책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남겼다. ⓒ푸른역사

또 하나는 201810월 유명을 달리한 안동 임하 출신 김서령 작가이다. 백석의 시 한 편을 읽는 편이 훨씬 국수의 본질에 닿을 수 있다고 고백하며 시 <국수>를 읽을 때 김 작가의 마음은 평안도 어느 마을의 선멍에 같은 국수틀 대신 으레 임하 안방의 안반과 홍두깨 근처에 가서 서성대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전에 조선 엄마의 레시피라는 부제가 달린 책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를 남겼다. 책 첫번째 글로 <어머니의 마술, 콩가루 국수>를 앞에 배치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어린 시절 임하 고향집 고방과, 마루, 부뚜막을 오가며 엄마가 반죽하며 밀어내고 썰어내고 끓여내었던 안동국시의 원래 모습을 마치 동화 속 삽화처럼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어머니의 어머니를 타고 내려온 음식문화는 감성이 탁월한 향토 출신의 칼럼니스트를 통해 전승되고 있다. 그이가 고향 안동에 귀향해 살아줬을 시간이 조금만 더 늘어났다면 우리는 안동의 전통과 생활음식 레시피를 더 맛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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