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안동국시(3) '50년 긴 세월 내림음식, 수졸당 안동 건진국수'
기획-안동국시(3) '50년 긴 세월 내림음식, 수졸당 안동 건진국수'
  • 최미연
  • 승인 2023.11.21 14: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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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차사 올린 건진국수, 집 간장으로 육수 만들어

자연환경은 그 지역의 주민 생활 또는 문화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면서 각각의 자연환경에 따라 나름의 문화권을 형성한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한 안동은 예로부터 밭작물을 많이 지었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봉화를 거쳐 안동의 중심을 관통하는 낙동강은 영양에서 흘러 들어 온 반변천과 합수하여 서남쪽으로 흘러간다. 하천이 발달한 지역이지만 큰 평야라고 꼽을 수 있는 곳은 풍산들이 유일하다. 이러한 지형상의 특징 때문에 안동은 대규모 주거 지역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하천 합류 지점이나 강기슭의 소규모 농경지를 중심으로 마을들이 형성되어, 각각의 전통을 만들면서 수백 년을 내려오게 되었다.

동성마을이 많이 형성되고, 그 마을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특성들이 전해 내려오는 것은 이 같은 지형상의 특징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안동국수는 안동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칼국수를 일컫는다. 그렇다 보니 지역의 방언에 따라 '안동국시'라 불리기도 한다.

미국의 원조로 밀가루가 흔해지기 이전에는 밀을 이용한 음식은 반가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불과 60~70년 전만 해도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가 아닌 돈으로 구매해야만 했던 식재료는 귀하게 여겨졌다. 나라는 가난했고, 국민은 검소했던 시절이었다. 19639월에 100g10원의 가격으로 출시된 삼양라면도 당시에는 무척 귀한 음식이었다.

윤은숙 종부가 시집오기 전에도 100년을 내려온 내림 음식인 안동 건진국수를 종부도 어느듯 50년 이상을 직접 국수를 밀어 봉제사와 접빈객을 치러내고 있다. 

거의 사라진 풍습, 안동은 유두(流頭) 의례 지켜와

안동국수의 특징은 반죽에 콩가루를 섞는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국수를 삶은 그대로 따뜻하게 내는 방식과 찬물에 헹궈서 육수에 담아내는 두 가지 조리방식 모두가 안동국수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종가나 큰집에서는 기제사뿐만 아니라 시제와 차사를 지내왔다. 설날과 추석, 정월 대보름에는 명절 차례를 모시는데 이를 차사라고 한다. 예전에는 유두, 백중, 중양절에도 차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습이다.

유두차사는 음력 615일에 새로 나온 곡식을 조상에게 올리는 의례이다. 유두절에는 새로운 과일이 나고 밀 수확을 끝낸 시기이다. 따라서 이날 조상과 농신에게 햇과일과 정갈한 음식을 차려 제를 지냄으로써 자손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이날 국수·여름과일·술 등을 사당에 올리고 차사를 지낸다. 이는 밀을 수확하여 처음으로 자손들이 먹게 되었다고 조상들에게 고하는 제사이다. 이때에는 제사에 밥을 쓰지 않고 국수를 놓는 것이다. 국수를 올리는 것도 특이했지만, 자두 옥수수를 올리는 것도 처음 보는지라 신기했다.

유두(流頭)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동유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에서 나온 말로, 유두날 이렇게 하면 액운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 동쪽의 물가로 가는 것은 동쪽이 해가 뜨는 곳으로 양기가 가장 왕성한 길한 방위이기 때문이다. 설날에 떡국차례를 지내고, 추석에 송편차례를 지내는 것처럼 유두차사에는 국수를 쓴다는 것을 알리고 이러한 제사는 안동에 국한되어서만 지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이는 안동건진국수가 봉제사뿐만 아니라 접빈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고, 불천위에 올린 국수라는 과장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또한 수졸당의 안동 건진국수를 국수가 품은 맛처럼 담백하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먼저 말했듯이 유두차사는 안동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지내왔다.

수졸당은 퇴계 선생의 손자인 동암 이영도가 지은 종택이다. 아들인 이기의 호를 따서 당호를 수졸당이라 하였다. 예안면에 있던 집을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 도산면 하계리로 이건했다.

종손과 종부, 50년을 국수 밀어 정성으로 봉제사 접빈객

그러나 고택문화재의 절반이 경북에 있고, 경북 고택문화재의 절반이 안동에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제 안동에서도 유두차사를 모시는 집은 내가 알기론 수졸당이다. 그러나 수졸당 윤은숙 종부는 진성이씨 문중에 한 집이 더 있다고 말한다.

수졸당은 퇴계 선생의 손자인 동암 이영도가 지은 종택이다. 아들인 이기의 호를 따서 당호를 수졸당이라 하였다. 예안면에 있던 집을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 도산면 하계리로 이건했다. 수졸당에는 진성이씨 입향조로부터 24세손이자 동암의 15대인 이재영 종손과 윤은숙 종부가 종가를 지키며 '봉제사 접빈객'의 예를 다하며 살고 있다.

윤은숙 종부가 시집오기 전에도 100년을 내려온 내림 음식인 안동 건진국수를 종부도 어느듯 50년 이상을 직접 국수를 밀어 봉제사와 접빈객을 치러내고 있다. 수졸당 건진국수는 반죽을 밀가루와 콩가루를 41로 섞어 말랑한 상태에서 2~3시간 숙성시킨다. 겨울에는 따뜻한 곳에 두었다가 밀어야 잘 밀린다고 한다. 숙성된 반죽은 홍두깨로 최대한 얇게 밀어야 한다. 홍두깨로 민 반죽은 접고, 접어서 또 최대한 가늘게 총총 썬다. 가느다랗고 긴 면발이 종부의 솜씨를 보여 준다. 잘 썰어서 줄 세워 둔 면은 뭉치지 않게 손으로 슬쩍슬쩍 흩트리면서 끓는 물에 넣어서 삶아낸다. 찬물에 헹구어 제기에 소복하게 담고 쇠고기고명과 깨를 올려 유두차사에 진설한다.

손님들에게 음복으로 제공하는 국수는 그릇에 담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은 후, 쇠고기고명, 살짝 갈은 흰깨, 호박채볶음, 계란 황·백 지단을 올려 준비한다. 안동 건진국수는 은어로 육수를 내었다고 하나, 윤은숙 종부는 집 간장으로 간을 한 육수를 쓴다고 했다.

음복으로 제공하는 국수는 그릇에 담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은 후, 쇠고기고명, 살짝 갈은 흰깨, 호박채볶음, 계란 황·백 지단을 올려 준비한다. 안동 건진국수는 은어로 육수를 내었다고 하나, 윤은숙 종부는 집 간장으로 간을 한 육수를 쓴다고 했다.

궂은 날에는 뜨끈한 안동국시 한 그릇이 보약

최미연 /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후 독립기념관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사)경북문화유산보존회 사무국장, (주)한국인재개발원 경북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짬을 내어 사진찍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럼 불천위 제사에는 국수를 안 올리는가? 경북의 여러 종가와 제사를 모시는 안동의 일반 가정들에서도 국수를 밥과 같이 올린다. 그러나 이때의 국수는 안동 건진국수 혹은 안동 칼국수와는 형태를 달리한다. 불천위 제사나 기제사 때 올리는 국수는 지역에 따라 소면을 사용하기도 하고, 납작국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소면이나 납작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여러 번 헹군 후 참기름, 깨소금에 무쳐서 제기에 소복하게 담아내던 이 국수를 친정어머니는 멧국수라고 불렀다.

제사상에 진설하는 각각의 음식들은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밥은 라고 하고 국은 이라 칭했고 이외에도 편, , 유밀과, , , 청장, 식혜, 침장, 실과, 채 등이 있다.

멧국수라고 불렀던 면은 밥 대신 올리는 국수라기보다는 밥과 함께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제사에 오신 조상님이 제사음식 남은 것을 싸갈 때 묶어 가라고 올리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냥 우스개 말씀이셨을까?

도토리묵도, 복숭아도, 칼국수도 무른 것이 좋아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머니께 묻고 싶어지고 새롭게 궁금한 게 많아진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 뜨끈한 안동국시는 보약 같은 맛이다.

[위 기사는 기록창고(19호, 2023.가을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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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한양갱 2023-11-24 10:10:49
건진국시도 좋고 손국시도 좋고 안동소주도 좋아요